그들은 아직도 그러할까?

100원으로 하루를 버티던 시절이 있었다. 짜장면 한 그릇에 30~40원 하던 학창시절이었다. 백조담배 20원, 버스비가 18원이었나 25원이었나 가물가물하다. 100원을 가진 친구가 몇이 모이면 짜장면 먹고 백조담배 나눠 피우며 당구도 한게임 즐길 수 있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40여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버리기는 하였지만 그게 미군들 따라 다니며 "쬬꼬레뜨 기브미" 하던 아득한 세월도 아니건만 지금의 짜장면 값을 생각하면 100배가 넘는 숫자에 새삼 아득함을 느낀다.

그 시절 물건 값도 요즈음처럼 오르락내리락 하였겠고 경제 논리도 뭐 특별히 변한 건 없겠지만 그러나 요즈음 물가가 오르고 내리는 것에 대한 요소는 그 때 그 시절 보다는 매우 복잡해 졌으리라 생각된다. 식량조차도 자급이 안 되는 나라이고 보니 경제구조가 매우 복잡한 요즈음은 국제시장의 원자재 값과 환율에 따라 국내 물가도 동반하여 올랐다 내렸다 하니 이에 대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국민뿐만이 아니라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관장하는 관리들에게 더한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국민 모두가 같은 경제적 위치에서 생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수립한다고 해도 국민들에게 생필품을 생산, 공급 및 유통하는 업체들의 협조 없이는 모든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물가의 등락폭은 늘 어려운 문제이이기는 하지만 시장논리를 앞세운 업체들의 결정에 내리는 것 별로 없이 물가는 계속 오르기만 한다. 늘 그래왔듯이 자사의 상품가격을 올리는 업체들의 핑계 첫 순위에는 국제가와 환율이 올라있다. 그렇다 하면 국제가와 환율이 떨어진다면 올렸던 가격이 환원되어야 할 텐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시기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정책시스템도 한 원인이라 하겠다. 올릴 때는 잽싸게 그리고 모두 소비자 부담으로 하고 내릴 때는 찔끔 생색만 내는 업체들을 강제 할 수 있는 정책은 없는 것일까?

생산자 가격이 오를 기미가 보이면 다량의 상품을 매입하여 쌓아 놓았다가 오른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파는 것이 돈 버는 지름길 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이런 유통 시스템이 기본적인 시장논리라면 알면서도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반 국민들을 위한 다부진 정책은 만들 수 없는 것일까? 엊그제 정부에서는 국제가가 내렸음에도 국내가격을 내리지 않는 업체들에 대항하여 외국에서 상품을 직수입, 유통하겠다고 하였으나 과연 그런다고 그들이 그들의 제품 값을 내리겠다고 할까 의심스럽다. 이런 기사를 볼 때 마다 공장에서 출고가를 올렸다고 모든 유통업체들이 잽싸게 오르기 전에 기 확보, 진열하고 있던 많은 제품들의 판매 가격을 일시에 올리는 것을 보면서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출장 시 영국 런던의 한 슈퍼마켓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 나 참 씁쓸하기만 하다.

어찌하다 출장을 가서 한 달간이나 혼자 있게 되다 보니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몇 가지를 챙기려 들른 슈퍼마켓에서 발견한 것이 같은 상품에 좀 비싸고 싼 다른 가격이 붙어있는 것이었다. 하나쯤 잘 못 붙인 것인가 아니면 모양은 같고 조금 기능이 다른 것인가 아무리 살펴보아도 다른 점은 보이지 않고 하나에만 다른 가격이 붙어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개가 그러하여 한 참을 서서 살펴보다가 결국 두 가지를 들고 계산대로 가서 같은 제품인가를 물었다. 계산대 직원은 주저함 없이 같은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왜 가격이 다른가 또 물었다. 그녀는 값이 싼 것은 오르기 전 가격에 들어온 물건이고 비싼 것은 오른 후에 들어온 것이니 싼 것을 가져가라 하였다. 위에 거론한 돈 버는 방법이 오르기 전과 오른 후의 차액을 잽싸게 챙기는 것이라 생각하였던 내 머리가 무엇에 맞은 듯 띵하였다. 호텔로 돌아오는 지하철역에서 한 달용 패스를 달라고 하였다. 그게 좀 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무원은 그러지 말고 일주일용 먼저 사서 쓰고 한 달용 사라 하였다. 이유를 물은즉 일주일 내에 한 달용 패스 요금을 내릴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였다. 호텔로 돌아오는 내 머리는 새로운 경험으로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세월이 20여년 지났다. 그 후에도 런던에는 여러 번 갔지만 같은 경험을 한 적은 없다. 하지만 공장 출고가가 오르면 일시에 쌓아 놓은 제품 값도 오르는 것을 볼 때마다 런던에서의 그 색다른 경험이 늘 생각난다. 그들은 아직도 그러할까?
2012년 삼일절 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