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조선의 종

김천 (전 금릉군) 청암사 범종

korman 2008. 8. 1. 14:49

 

 

 

유적명 청암사 강희 26년명 범종 종별분류 범종
소재지 경상북도 금릉군 송라면 중산리 시대분류 조선 1687년
조사년도 국가분류 한국
부서명 미술공예연구실 사업분류 공예조사
보고서명 지정사항 비지정 /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康熙 二十五年

  (조선 肅宗 13년 1687년)
  총 높이 177.0cm,

  종신 높이 140.0cm,
  용뉴 폭 46.0cm,

  용뉴 높이 22.0cm,
  천판 지름 85.0cm,

  범자 지름 12.5cm
  유곽대 폭 4.5cm,

  유곽크기 30.0 x 30.0cm,
  종입 지름 122.0cm,

  종입 두께 9.0cm
  경북 김천 증산면 평촌리

  불령산 청암사 正法樓

 

 

 

 

 

 

 

 

 

 종정은 원호형에 일체쌍두형 용뉴를 구비하고 있는데 용두 높이가 짧은 것이 특징이다.

종견부분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천판과 종신의 경계는 한줄의 굵은 선으로 돌리고, 줄에서 80cm 떨어져서 지름 12.5cm정도의 원좌에 범자를 가진 문양 7개를 배치하였다.

이들 문양 밑으로 원향 두광을 갖춘 보살입상 3구와 29cm정도의 위패 1개, 그리고 정방형에 가까운 유곽 4좌를 교대로 배치하였다.
유곽대는 당초무늬로 장식하고 11개의 화판으로 둘러쌓인 화좌에 반원융기형의 자방이 돌출된 9유를 갖고 있다.

종복에는 2.6cm 폭으로 3줄의 굵은 太線을 돌려 종신을 상하로 양분하듯 하였고, 종의 양식과 형태상으로도 심하게 간략화되어 전통양식은 구비하지 않았다.
口緣에는 하단에서 28cm 위에 굵은 선을 한줄 돌리고, 줄에서 6.2cm 하단에 높이 6.0cm의 8괘를 30cm간격으로 배치하여 하대를 구성하였다.
팔괘문양은 이 종을 비롯하여 중국종 형식을 한 개성 연복사 종(1346년), 해인사 홍치4년명 종(1491년)이나 조선 후기 종 가운데 능가사 종(1698년)과 양산 통도사 대종(1686년), 해인사 종루 종(1864년)에서만 사용되었다.

종신에 음각된 명문에서 大靑 康熙二十六年丁卯十月」 .........」龍頭改造大施主韓仲景 孫鳳鶴」라고 되어 있어 조선 肅宗 13년(1687) 정묘년에 개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암사종의 용두는 조선조종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종체와 별도로 용두를 만들어, 종체를 주조할 때 이것을 함께 융착시키는 방식을 채택하여 제조한 종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용두가 사용중에 분리되어 떨어졌든가, 또는 파손되어 종을 종가에 懸架할 수 없게되어 용두를 새로 만들어 부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내용을 뒷받침하는 사실이 종체에 음각된 용두개조 대시주라는 문구로부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다음과 같은 음각명문의 書頭가 있다.
有明朝鮮國慶尙道星州」 牧四佛靈山雙溪寺鑄銘倂序」 雙溪寺者」 郡之七十里餘有峻嶺」 口古曰修道有口口盤空故因」 改號佛靈地原天寺基」
즉 명나라시대에 조선국 경상도 성주목(지방) 사불령산에 있는 쌍계사에서 주조하고 아울러 며운을 쓴 것이다. 쌍계사는 군에서 70리 정도 떨어진 험한 준령에 있고, 옛부터 수도하는 口口반공이 있어서 호칭을 불령지라고 고처부른 원천사터이다.
내용으로 보아 청암사종은 쌍계사종으로 주조하고 명문을 음각한 것이 명백한데, 어떤 경로로 청암사에 이전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자료출처 ;
한국의 범종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종 염영하 지음
www.nohht.com.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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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사(靑巖寺) 강희이십육년명(康熙二十六年銘) 범종(梵鍾)

(2-79)


소재지(所在地) : 경상북도(慶尙北道) 금릉군(金陵郡) 증산면(甑山面) 수도리(修道里)

연 대(年 代) : 1687年(숙종(肅宗) 13年, 강희(康熙) 26年)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측치(實測値) : 총고(總高); 170cm, 용통고(甬筒高); cm, 

상대폭(上帶幅); cm, 유곽장(乳廓長); 30×30cm, 

구경(口徑); 124cm, 종신고(鍾身高); 150cm, 용통경(甬筒徑); cm, 하대폭(下帶幅); cm 종구후(鍾口厚); 7cm, 용뉴고(龍鈕高); 20cm, 천판경(天板徑); 85cm, 유곽폭(乳廓幅); 4.5cm, 

당좌경(撞座徑); cm

 

 



종정(鍾頂)은 반구형(半球形)에 일체쌍두형(一體雙頭형)의 용뉴(龍鈕)를 구비하고 있다.

 상대(上帶)인 견대(肩帶) 부분(部分)에는 아무런 문양(紋樣)장식이 없고 경(徑) 11.5cm 정도

의 원좌에 범자(梵字)를 갖춘 원형 문양 7개(個)를 배치하였다. 이들 문양 밑으로 원형 두광을 

갖춘 보살입상 3구(軀)와 29cm 정도의 위패(位牌) 1개(個), 그리고 정방형(長方形)에 가까운 

유곽 4개(個)를 교대로 배치 장식하고 있다. 유곽의 문양은 당초문(唐草紋)으로 장식하고 화좌

에 자방이 돌출된 9유두를 갖추고 있다.

 종신부(鍾身部)에는 2.6cm 폭(幅)으로 3조(條)의 융기 태선(太線) 돌려 상하(上下)로 종신(鍾

身)을 양분(兩分)하듯 하였다.

 하대(下帶)인 구연대(口緣帶)에 이르러서는 일조(一條)의 태선대(太線帶)를 돌리고 폭 

28.5cm 정도의 간지(間地) 내(內)에 30cm 간격으로 팔괘(八卦)를 배치 장식하여 구연대(口緣

帶)를 이루고 있다.

 종신에 양주(陽鑄)된 명문(銘文)에서는 대청(大淸) 강희(康熙)二十六年十月에 쌍계사범종(雙

溪寺梵鍾)으로 주조(鑄造)된 것인데 어떤 경로로 청암사(靑巖寺)에 이전되었는지는 알 수 없

다. 강희(康熙) 26年은 숙종(肅宗) 13年(1687) 정묘(丁卯)에 해당되며, 양식과 형태상으로도 심

하게 약식화(略式化)된 동종이다.


출처 :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