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바고 (EMBARGO)
내가 처음 중국 베이징에 갔던 때가 1991년 8월로 기억된다.
광동역 앞에 보르네오 가구가 큰 광고판을 세웠다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나던 시절이었다.
두 나라 사이에 정식으로 국교가 맺어지기 전이었지만
중국에서 사업상의 초청장이 오고 방문목적이 뚜렷하면
당국으로부터 허가와 안전교육을 받고 제3국의 중국영사관에서 비자를 받아
큰 제약을 받지 않고 갈 수 있던 시기였다.
국교수립을 위하여 양국이 한창 논의 중이었던 때라고 기억되는데
그래도 우리는 줄곧 “중공”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불러왔으므로
도쿄에서 이틀을 묵으며 비자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곳에서 북한사람을 만나면 어찌하나 행동의 제약을 받으면 어찌하나 등등 …….
많은 걱정과 두려움을 가지고 비행기에 오르기는 하였으나
실제로 그곳에 도착하여서는 조심성은 있어야 했지만
별달리 행동의 제약을 받거나 불편한점은 없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인가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에 국교수립이 성사될 즈음
모 중앙 일간지의 문화면 한쪽 구석에 아주 조그맣게
우리나라의 대형 남자가수의 중국공연예정 기사가 실린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문화적인 교류가 먼저 이루어져 몇몇 문인들이 베이징을 방문하고
그곳의 북한식당에서 평양냉면을 먹고는 뭐가 그리 맛있었는지
북경방문기 신문 칼럼을 쓰면서 꼭 그 예찬을 빠뜨리지 않을 때였으므로
우리나라 가수가 베이징에서 공연을 한다고 하여도 이상할 일은 못되었지만
많은 걱정을 가지고 다녀온 중국에 관한 기사였기에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없나 찾아보았지만 그 신문 그 기사 외에는
어떤 다른 신문이나 방송 혹은 잡지에서도 그와 관련된 기사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가수가 예정대로 베이징에서 공연을 하였는지 못하였는지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와 관련된 기사는 없었다.
후에 들렸던 소문에 의하면 국내의 그 신문이
북한당국을 의식하여 중국에서 요청한 엠바고를 깨뜨린 관계로
공연이 취소되어 결국 그 당시 중국무대에 설 수 없었다고 하는데
소문의 근원이나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었으므로
공연이 어찌되었는지는 모르겠으되
엠바고라는 말이 일반인에게 그리 친숙한 단어는 아니었다.
아주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방송이나 신문의 뉴스에서 혹은 배가 드나드는 항구에서
“엠바고 (Embargo)”라는 단어를 접하게 된다.
그냥 전문분야에 계신 분들이 외래어로 엠바고라 쓴다.
우리말로 배가 엠바고를 당하였다면 “출항정지” 혹은 “억류” 등으로 표현되겠고
보도 분야에서 이런 단어를 사용하였다면 “보도유예” 쯤이 될 것 같다.
항구에서 어떤 정박한 배와 관련이 있는 사건이 있으면
그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해당 선박을 엠바고하고
국민들에게 알리기는 하여야 하겠지만 보충자료가 필요하거나
국익을 위하여 시간이 필요할 때는 당국에서 기자들에게
어떤 사유로 언제까지 엠바고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러면 통상적으로 엠바고를 지키는 것이 예의이며 관례로 되어있다.
선진국에서는 주로 국익과 관련된 사건에 엠바고를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가끔씩 잘난 기자와 잘난 신문, 방송사에서
국민의 알 권리 혹은 독점 운운하면서
모두의 약속인 이 엠바고를 깨는 경우가 생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엠바고를 요청한 측에서는 큰 낭패를 겪고
국익이 관련되었다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입는 경우가 생기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소문이었지만 위에 언급한 그 가수의 경우에도
엠바고를 깬 신문사 덕분에 공연이 취소되었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
중국에서 올림픽 준비가 한창일 때 국내의 모 방송사가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비밀에 부쳐두었어야 할 개막식 연습장면을
국제적인 독점이라고 뉴스에 공개하는 행위로 인하여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중국 당국과 중국 국민들의 원성을 샀고
이는 중국인들의 반한감정에 일조를 하고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어
올림픽 내내 열심히 노력하는 우리 선수들이나
선수들을 응원하는 국민들에게도 좋지 않은 기억을 남겼다.
과연 연습장면 동영상을 촬영한 방송사가
전 세계에서 우리 방송사뿐이었을까?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는다.
각국 언론에서 올림픽개막식 연습장면을 사전에 입수하였다 하더라도
공개리허설 이전에 일반에게 임의로 공개하지 않는 것은
올림픽에 대한 예의이고 또한 무언의 약속이라고 한다.
엠바고를 요청받지는 않았지만 각국의 언론들이
스스로 엠바고를 형성하여 지키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독점에 갈망한 우리나라 방송사라 하더라도
이런 국제적인 규범을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순간의 욕심으로 방송사 자신도 불이익을 당하고
양국국민들에게도 갈등을 심어주었으니
엠바고 파기로 인한 손해가 작은 일은 아니라 하겠다.
엊그제 발표된 탈북자 간첩사건에서
또 한번의 엠바고 파기가 있었다고 한다.
당국에서 공식적인 발표가 있기 전 까지 하루를
엠바고 하여달라고 언론에 부탁을 하였는데
모 석간신문이 그것을 깨고
그날 자신들의 저녁신문에 기사를 실었다고 한다.
다음날이 되면 조간신문에서 먼저 사건을 보도 할 텐데
자신들은 석간이니 저녁에 보도하면 썩은 뉴스 아니겠냐는
간단한 생각으로 그 전날 저녁에 기사화 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엠바고를 요청하는 당국에서는 그 시간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그리 요청하였을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가 물론 중요한 것이고 엠바고가 남용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언급한 사건들은 엠바고를 깨면서까지 국민에게 급하게 알려야 할
사항들은 아닌 것 같다. 그 보다는 엠바고를 지킴으로 인한
이익이 더 큰 일들이 아니었을까!
가정에서나 개인적으로도 많은 엠바고가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살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08년 8월 스무 아흐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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