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달력
아마 어제 받은 우편물이 올해 마지막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늘이 2013년의 마지막 날이니 뭐 더 올게 있을까. 밖에 나갔다 올 때면 늘 버릇처럼 열어보는 우편함에는 항공사가 보내준 내년도 탁상 달력이 들어있었다. 아파트 1층에 들어서자마자 무의식적으로 눈이 가는 것이 우편함이지만 예전 집사람과 연애편지를 주고받을 때만큼 반가운 우편물은 배달이 끊긴지 오래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겠지만 2013년 내가 1년 내내 받은 우편물이라고는 매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자필로 카드를 보내주는 조카의 정성을 빼고는 돈 내라는 고지서와 돈 빌려가라는 광고지 그리고 경조사 안내가 전부였다. 그나마 경조사용 인쇄물은 받는 사람이 아날로그세대인 경우도 있고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도 곁들여 있어서 예의를 갖추느라 우편을 이용 할 뿐이지 모든 것이 이메일고지화 되는 이때에 굳이 이 조차 우편을 이용해아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아직 군에 간 아들이 군사우편으로 부쳐오는 안부편지가 있는 집이라면 모를까.
달력을 집어 들고 생각하니 해를 보내는 아쉬움 보다는 매년 마지막 우편물은 다음해를 위한 이 탁상달력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방에 들어와 책상 위에 놓인 2013년 것과 바꾸어 놓는데 새것의 크기가 헌것의 그것과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1/3은 줄어든 느낌이다. 작다고 사용하는데 하등 불편함이야 있을까만 이 조차도 현재의 불경기를 보여주는 것 같아 받는 기쁨에 무거운 마음이 겹친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달력인심도 사나워진 느낌이다. 예전에는 연말이면 넘쳐나던 게 달력이었는데 요새는 문만 들어서면 나누어주던 그 흔하던 은행달력도 주요고객이나 손을 내미는 고객 외에는 애써 주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이런 탁상달력은 필요하면 사던가 돈 안들이려면 애써 구해야만 손에 들어오는 것이 되었다. 요새는 달력도 디지털화 되어서 늘 들고 다니는 핸드폰에서 조차도 날짜와 시간 등, 세월 가는 것에 필요한 것은 모두 확인이 되니 달력을 만들어 주어도 필요 없는 세대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인쇄된 달력을 보는 게 편하기는 하다. 물론 달력이 흔할 때는 한 가정에서 몇 개씩은 쓰지도 않고 버리는 경우가 많아 잘 살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그것도 낭비의 일종이긴 하였지만 달력이 귀하게 된 원인이 불경기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한다면, 여자의 치마 길이가 불경기일수록 짧아진다는데, 달력용 종이가 줄어드는 것이 치마용 천이 줄어드는 것과 상통하는 것일까?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새 달력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새해 12달을 모두 살핀다. 학생이 아니거나 직장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빨간 날을 헤아린다. 내년은 참 많다. 특히 연휴가 많다. 토일요일 연휴는 기본이고 국경일에 대체휴일까지 겹쳐 기본 3일에서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내면 일주일까지 장기 휴가가 가능한 연휴일이 많다. 빨간 날을 헤아리며 월급 받는 사람들이야 좋겠지만 (물론 주어지는 휴일도 모두 즐기지 못하는 직장인도 많을 테지만) 경기도 나쁜데 사업하는 사람들은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질 텐데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엊그제 모 경제신문에 “1월1일 하루만 쉬고 허겁지겁 출근하는 나라는 한국 뿐” 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힘든 환경을 기사화 한 것을 읽어보았다. 그런데 1월1일 하루만 쉬는 나라가 우리뿐일까? 설사 그게 우리나라뿐이라 하더라도 설날이나 추석 연휴 등 다른 나라들에는 없는 휴일들도 우리에게는 많다. 휴일이 표기된 빨간 날들을 보며 이제는 우리도 휴일이 많은 나라들 중에 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직장에서 주어지는 법정 휴일과 휴가들을 한꺼번에 몰아서 쓸 수 있는 환경이 선진국들 보다는 못하지만 그 반면에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근로시간의 효율성이 다른 나라에 비하면 어떨까 하는 문제도 신문기사는 거론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직장인들의 근로시간을 줄이는 문제와 휴가도 중요하지만 사업주 입장에서는 그에 맞는 생산성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새해 말에는 모두가 공감하는 달력이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3년 12월 31일 하늘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