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배낭을 앞으로 메는 사람도 있다.

korman 2015. 3. 11. 16:48

 

 

배낭을 앞으로 메는 사람도 있다.

 

두 여인은 상품진열대 사이 통로 끝의 양쪽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두 손수레는 앞쪽이 통로 안쪽을 향하여 사이를 좀 띄운 채 人자 모양으로 서 있었다. 따라서 손수레가 교행 할 수 있는 넓이의 통로는 그녀들의 그것 때문에 한대만 겨우 지날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들어가는 사람과 나오는 사람들이 서로 교차할 수 없어 양 쪽에 줄이 만들어졌다. 흡사 왕복 2차로 도로에서 차로 하나가 점유되어 양쪽 차들이 밀리는 형태였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각자 알아서 드나들라는 생각이었는지 자신들의 손수레를 움직이지 않았다. 내 앞에 가던 사람이 “실례합니다.”라고 양해를 구했지만 그들은 들은 척 만 척이었다. 뒤따라가던 내 머리칼이 좀 위로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말없이 내 손수레를 옆으로 굴려 그들의 것을 슬그머니 밀었다. 그제야 그들은 통로 끝에서 물러났다. 마트에서 물건을 고를 때, 시식을 할 때, 다른 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 등등의 경우 여러 사람들의 통행을 생각하여 자신의 손수레를 한 쪽으로 붙여 놓으면 좋으련만 불행하게도 그건 나만의 생각일 때가 많다.

 

입구와 출구 그리고 주차구역마다 진행방향이 화살표로 크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안심하고 진행하다가는 다치는 수가 있다. 화살표를 무시하고 역주행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많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역주행 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주행하는 사람이 옆으로 피해주어야 할 만큼 더 당연하고 떳떳이 다가온다. 주차구역이 블록으로 나누어진 마트주차장이나 공항주차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어쩌다 가끔씩 이용하지만, 매년 세계의 공항평가에서 1등을 차지한다는 인천공항 단기지상주차장에 역주행을 하는 사례가 많다. 차량의 흐름을 정리하는 직원들이 주차장 근처에 서 있지만 그런 광경은 몇 년 전 보다 더 심해진 느낌이다. 보다 못해 1년 전쯤 공항에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자 방책을 마련하겠다는 회신이 왔다. 그러나 엊그제 갔던 같은 주차장에 변화는 없었다. 수시로 가는 집근처 대형마트에도 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도 좀 더 신경 쓰겠다는 연락이 왔을 뿐 손님은 왕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주차장에 아무런 안내문조차도 붙여지지 않았다. 그냥 이것도 나만의 생각이었을 뿐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인도마다 개구리주차장이 있다. 가뜩이나 좁은 인도를 반쯤 잘라 주차장을 만들었으니 우산이라도 받아야 하는 날에는 보행이 무척 불편하다. 거기에 더하여 터무니없는 불법주차차량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주차시설이 모자라니 불법주차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법주차를 하더라도 보행자를 조금이나마 배려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뜩이나 좁은 길인데 빌딩 진출입구의 인도에 가로질러 주차하여 보행자를 막음으로써 사람들이 가던 인도로 계속 가지 못하고 차도로 내려서야 갈 수 있게 만드는 운전자들, 건널목을 가로막으며 꼬리를 물고 주차하여 사람들은 물론 유모차나 휠체어는 도저히 건널목 쪽으로 비집고 나갈 수 없게 만드는 운전자들, 짧은 코너에 뒤꽁무니를 길게 내밀고 주차하여 회전하는 차량들이 중앙선을 넘어 상대 차로를 침범하게 만드는 차량들 등등. 또한 개구리 주차장 때문에 가뜩이나 좁아진 인도의 절반을 불법으로 점유하고 자기 가게의 영구시설물을 설치하는 사람들, 지름이 1m도 넘는 불법 풍선막대 광고판을 인도나 차도에 마구 내다 놓아 걷는 것은 물론 차량들도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간다. 배려는 제쳐 두더라도 분명 불법인데 단속이 되고 정리가 되겠지 바라는 마음도 내 마음 뿐인가 날이 갈수록 그렇게 늘어나는 인도와 차도의 불법 점유는 방관되는 느낌이다. 이것도 민주주의 당연한 일부분인 것처럼.

 

전철을 탔다. 내 앞에 먼저 오른 한 젊은 친구가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을 벗더니 가슴 쪽으로 돌려 메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보면 서 있는 사람들이 등에 메고 있는 배낭들로 하여 왕래는 물론 움직임이 어려워질 때가 있다. 순간 그 젊은 친구의 사려 깊은 행동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요새 S모 방송에서 메인뉴스시간에 배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사회풍조를 고쳐보려는 노력이라고 할까. 난 그 프로를 보면서 나의 대학시절 농촌계몽이라 부르던 활동을 떠올렸다. 요새는 농촌봉사라 불리지만 그 당시에는 농촌에 무언가를 가르쳐야 했기 때문에 계몽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금 우리나라는 도시고 농촌이고 간에 세계적으로 학력수준이 제일 높은 국가군에 속해있다. 그러나 그 방송이 수준 낮게 들리는 계몽이라는 표현 대신에 캠페인이라는 좀 산뜻하게 느껴지는 단어를 내세우기는 하였지만 난 그것이 곧 계몽임을 느끼고 있다. 계몽이건 캠페인이건 방송이 힘을 발휘하여 배낭을 앞으로 메는 사람들이 늘어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2015년 3월 10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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