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도로명주소

korman 2015. 5. 16. 17:44

 

 

 

도로명주소

 

농협에 있다는 집사람이 좀 난처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 집주소를 물어왔다. 쌀을 배달시키려는데 갑자기 주소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말에 도로명주소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집사람은 농협에서 예전주소를 대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담당을 바꿔 이유를 물은즉 쌀 주문을 하는 사람들이 도로명주소를 잘 몰라서 그런다는 대답이었다, 참 대답이 궁하면 다른 핑계를 대야지 생각하며 “그렇다면 나는 도로명주소를 제대로 알고 대 주는 것이니 주소대로 배달해 주세요”한즉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배달하는 쪽에서 편하려고 묻는 것이겠죠?” 하고는 지번주소를 대 주었다. 아직도 농협 같은 큰 기관에서 예전 주소를 묻는 다는 것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으로 무언가를 주문할 때 도로명주소를 입력하면 배달원이 전화를 걸어와 지번주소를 묻는다. 작년까지만 하여도 난 그리 묻으면 잘 알려주었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새 주소로 잘 변환이 되었지만 신속히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은 묻는 것이 도움이 되나보다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그리하지 않는다. 내 스스로 지도를 검색하고 내비게이션에 도로명주소를 입력하며 다녀본 결과 이제는 주소변환을 할 필요도 없이 도로명주소만 가지고도 내비게이션이 잘 데려다 주기 때문이다. 요새도 지번주소를 요청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집 앞에 크게 붙어있는 도로명주소 밖에는 모르니 알아서 찾아오세요.”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에 손가락 몇 번 대면 될 것인데 배달원 자신이 편히 다니려고 묻는 것일 테지만 그들도 이제는 도로명주소에 적응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요새 웬만한 우편물에는 모두 도로명주소가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기업이며 공공기업이라 할 수 있는 삼천*도시가스회사에서 내 집에 보내는 요금고지서는 아직 지번주소가 기재되어 온다. 고쳐지겠지 하고 기다렸으나 1년이 다 되도록 변함이 없다. 전화를 하여 이유를 물은즉 대답 대신에 나더러 도로명주소를 알면 고쳐 줄 테니 대달라고 하였다. 가스회사 같은 큰 공공기업에서 이리 성의 없이 고객에게 주소를 알면 대라고? 참 어이가 없어 “그걸 고객에게 물으면 어찌합니까? 컴퓨터는 뭐에 쓰십니까? 이제는 모두 회사 컴퓨터에서 자동으로 변환되어야 하지 않나요? 알아서 다음 달부터는 바꿔 보내십시오.”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우리나라의 기반산업을 담당하는 회사로써 너무나 무성의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필요한 것은 대부분 이메일로 받으니 우편함에 꽂히는 몇 안 되는 우편물에는 성의 없는 가스회사의 고지서를 제외하고는 도로명주소로 모두 바뀌어져 있지만 대부분의 광고용 전단지나 청첩장 등에는 예전 주소 그대로 적혀온다. 주소를 일러주는 사람이 지번주소를 알려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지번주소는 모든 집에 붙여져 있지도 않거니와 지번이 길거리에 일률적으로 배치되지가 않아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지도를 가지고도 집찾기가 어렵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에 간직한 오래된 지번주소에서 벗어나기가 참 어려운 모양이다. 현재 모든 건물이나 개인집에는 도로를 중심으로 한 도로명주소가 아주 보기 좋은 크기로 붙어있다. 그것도 꽤 긴 세월동안 붙어있다. 그런데도 아직 자기 집의 도로명주소를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왜냐고 물으면 어떤 대답들을 할까 궁금하다. 집에 드나들면서 수도 없이 보았을 자기 집 도로명주소 이제는 모두 기억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며칠 전 인터넷 뉴스페이지에 어떤 매체의 기자가 도로명주소 정착이 아직 요원하다며 정부의 신주소정책이 잘못되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글을 올린 것을 읽으며 사람들이 관심만 가지면 내비게이션 없이 종이지도만 가지고도 집을 잘 찾을 수 있는 좋은 주소에 이리 왜곡된 글을 써야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처음 갔던 서양권 국가들에서 도로명주소와 종이지도만으로도 길을 잘 찾아다니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도로명주소가 지금까지 정착이 되지 못하는 것은 집주소보다는 이메일주소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으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도로명주소에 적응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굳이 정부의 미흡함을 찾아보자면 큰 예산을 들여 주소를 개혁하고도 국민들에게 이를 인식시키는 홍보활동은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동남좌우, 이것이 도로명주소의 숫자 흐름이다. 동쪽과 남쪽으로 갈수록 건물번호 숫자가 커지며 두 방향을 바라보고 섰을 때 왼쪽이 홀수이고 오른쪽이 짝수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 도로명주소로의 개혁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기 보다는 선진화된 정책이라 볼 수 있다. 단지 국민들의 인식이 빨리 변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2015년 5월 16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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