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에 먹먹해진 가슴
정기적으로 다니는 동네 의원에서 집사람과 같이 AZ백신 주사를 맞았다. 의원 내에서 잠시 쉬었다 가라는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우리보다 먼저 맞은 여자 분이 집사람에게 말을 걸어왔다. 타이레놀을 먹고 왔냐는 질문이었다. 집사람이 그건 주사를 맞은 후 몸에 이상이 나타날 때 먹는 거지 주사도 맞기 전에 무슨 약을 먹느냐고 답하니 그 여자 분은 의원에 오기 30분 전에 먹고 왔다고 하였다.
의원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가 모퉁이를 도는데 모녀(그들의 대화에서 모녀임을 알았다)가 지나는 사람들이 다 알겠금 큰 소리로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중년의 딸이 노년의 어머니에게 약 먹었냐는 물음에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무슨 약을 먹냐는 대답이었다. 어머니는 하루 전 백신을 맞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딸이 준비하여준 타이레놀을 먹지 않은 모양이었다. 딸은 아무렇지 않아도 약을 먹으라고 어머니를 채근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계속 무슨 일이 나면 먹겠다는 대답이 이어졌다. 그들의 대화는 내가 한참을 걸은 후에까지 귀에 들렸다.
그들의 대화를 들은 집사람은 우리도 타이레놀 사가야 하지 않겠냐고 묻기로 난 아무말 없이 단골로 다니는 약국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물론 그 약국 앞에는 ‘타이레놀 품절’아리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약사는 우리가 왜 왔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어느 집에나 타이레놀은 아니지만 평소 상비약으로 준비되어 있는 약이 있다. 내 집에도 집사람이 가끔 복용하는 약이 있기로 약사에게 타이레놀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고 집에 있는 그 약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물론 먹어도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약사에게 이번 코로나로 인한 최대 혜택은 타이레놀회사에 주어진 것 같다고 하였더니 “그냥 약사가 알고 있으니 주는 약 먹으면 된다고 하면 될 일이지 거 왜 특정 이름은 말해가지고...ㅉㅉㅉ”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집에 들어가는 현관에서 아래층에 사시는 노인들을 만났다. 모두 나보다는 7~13년정도 앞선 분들이다. 3층에 사시는 분들은 자식들이 빨리 서둘러 부부가 모두 화이자 2번 접종을 완료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5층에 사시는 분들은 백신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계셨다. 가끔 만나면 해 주시던 이야기에 의하며 가까운데 큰아들과 며느리가 있고 좀 먼 곳에 작은 아들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동네에서는 혼자 거동해야 하는 화이자 대상 노인들은 동사무소 앞에서 일괄 버스로 모시고 보건소를 왕래하고 있었다. 화이자 신청이 시작 되었을 때 할아버지께 이야기 하였더니 모르고 계셨다. 그래서 상황을 전하고 자제분들에게 연락하셔서 예약이 되도록 하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는지라 그동안 모두 맞으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 모르고 계셨다. 할아버지를 동사무소에 안내하고 신청하시도록 이야기 해 드리고는 집에 들어오는데 괜한 서운한 마음이 생겼다. 벌써 접종을 마쳤어야 할 분들인데 자식들도 아직 모르고 있을까?
접종 3일째가 되었다. 집사람이나 나나 아직은 평소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을 때의 상태나 별로 다릉 게 없다. 자식들이 매일 전화를 하였다. 그리고는 길가에서 엄마 걱정을 하던 딸 처럼 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아무 이유 없이 약에 대한 내성을 키울 필요가 있니? 타이레놀이 해열제인데 정상적인 사람이 먹었다가 저체온 되면 어쩌냐?” 난 오늘도 이 대답을 하였다. 부작용이 2주 정도 지나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하니 당분간 조심은 해야겠지만 독감예방주사에도 부작용은 있지 않은가. 손녀들의 전화에 뻐근한 것 같던 기분도 사라졌다.
글을 쓰다 아래층 노인 부부가 생각났다.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한참만에야 받은 할머니의 대답은 할아버지는 신청이 되어 모레 아침에 동사무소로 오면 버스로 모시겠다고 하였고 할머니 당신은 나이가 안 되어 (할머니는 호적 나이가 많이 줄었다고 하였다) 해당이 안 된다고 신청을 못하였다고 하였다. 할아버지하고 같이는 안 돼도 동네 의원에서 따로 맞으시면 되나까 자제분들에게 연락하여 그렇게 하라고 말씀드렸더니 “나는 이야기 할 자식도 없고 같이 병원에 갈 자식도 없으니 안 맞을래. 죽으면 죽는 거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건물로 이사올 당시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온 큰아들내외와 노인들의 소개로 한 번 눈인사를 나눈 적이 있긴 하지만 가족 상황이야 어찌 되는지 내가 파고들 입장이 되지 못하니 마스크 잘 쓰고 다니시라고 말씀 드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자식가진 사람 남의 자식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전화를 끊고 가슴이 왜 이리 먹먹해 지는지......
2021년 6월 10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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