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09-221019
청산에 살리라 - 김정빈 - 현대문학
이 책의 청산은 푸를靑메(뫼)山을 쓴다. 누구에게나 신선하게 들리는 단어다.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은 ‘청산’ 소리만 들으면 청~~~산~~~하고 두 자를 시조조로 한 번씩은 읊조린다. 특히 술 한 잔 걸치면 더욱 그러하 다. 젓가락으로 혹은 손바닥으로 술상 끝을 한 번 살짝 두드린 후에 그리 하면 더욱 맛깔스럽다. 그리고 그 다음은 잘 모르니 대신 술잔을 든다.
요즈음은 청산이라는 단어가 어느 나이까지 익숙한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청산에 살겠다는 말에 앞서 전원, 전원주택이라는 단어가 많이 유통되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은 이 청산이라는 단어가 그저 문학에서나 사용하는 단어로 인식되어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혹 청산이 전원의 고어가 아닌가 생각하는 젊은 층도 있을지 모르겠다.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이 단어가 익숙한 이유는 가곡 ‘청산에 살리라’, 옛 선시 ‘청산은 나를 보고’, 청산별곡 ‘청산에 살어리랏다’ 등 모두 학창시절에 배우고 익숙하게 대했던 작품들에서 자연적으로 기억에 남은 단어가 ‘청산’이기 때문이 것으로 생각된다. 혹자는 황진이의 ‘청산리 벽계수’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은 작가가 집필실을 안성에 있는 전원마을에 마련하고 수필형식으로 쓴 글을 모아 만들어낸 책이다. ‘청산에 살리라’라는 책 제목에 걸맞게 작가는 작가가 마련한 전원 집필실 주위의 산과 들이 속한 자연을 여러 가지 요소를 섞어 묘사하고 청산에 어울릴만한 많은 일상적인 글들을 모아 놨다. 청산은 아니라도 그 근처에라도 지어진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싶은 것은 모든 도시인들의 꿈이다. 특히 문학이나 예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시에서의 작업실도 중요하겠지만 전원에 마련한 작업실은 창작을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정적인 요소를 제공하므로 해서 도시의 소음 속 보다는 한결 월등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집필을 위한 전원주택을 마련 하고나서 전원생활은 ‘9-9-9’라고 표현하였다. 내용을 읽고 나서 난 금방 이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도시인의 90%가 전원주택에 살기를 동경하지만 그 중의 90%는 꿈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설사 꿈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 꿈을 이룬 사람들의 90%는 전원에 적응 못하고 다시 도시로 회귀한다는 것이다. 아마 시골에 사시던 부모님들이 자식들이 생활하는 도시에 왔다가 적응 못하시고 다시 시골로 돌아가는 것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요즈음은 전원에 산다고 하여도 도시에서 누리던 모든 IT생활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도시에서 갖고 있던 대인관계는 접어두어야 하는 게 전원생활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복권이 맞지 않는 한 남은 인생에서 앞의 99에만 속할 것이므로 뒤의 9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을 테니 작가처럼 생각을 깊게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물론 복권에 대한 미련을 너무 일찍 포기하는 것도 또 다른 9에 속할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며 문득 이어령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재미없는 대목은 읽지 말고 건너뛰라고 하신 말씀이. 이 책을 읽으며 종종 그런 충동을 받았지만 읽긴 다 읽었다. 충동을 받은 이유는 내가 청산을 상상하며 읽기에는 좀 글이 가볍고 말장난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총 6부로 나누어 소제를 달고 그 속에 개개의 제목으로 기술된 이 책은 모든 글이 그렇지는 않지만 나의 글 읽는 수준에는 전문 작가의 글치고는 좀 지루한 글, 너무 가벼운 글,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글, 내용파악이 어려운 글 등등이 섞여있어 전체적으로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게 하였다. 물론 다른 독자들에게는 즐겨 읽을 만한 요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렇다 하더라도 역시 전문작가답게 많은 것을 알고 거기에 비유하여 글을 쓴 대목이 많았다. 물론 글의 주제에 따라 다양한 소재에 비추어 적절한 지식을 미리 습득한 것도 있겠지만.
어떤 책을 읽었던 간에 한 권을 모두 읽고 또 다른 책을 고를 때는 머리 속에 많은 것들이 채워짐을 느낀다. 비록 겉장을 닫을 때 읽은 책속의 내용들이 금방 저 멀리 살아질지라도. 한편 이 글을 쓰다 문득 가곡 ‘청산에 살리라’가 듣고 싶어 유튜브를 찾았다. 그런데 우리 제목에 영어제목을 곁들인 것이 청산을 흐렸다.
I‘ll live on the green hill, I'll live among the green hill, I live in the green hill, I will live in the green mountains, 심지어는 그저 Blue Mountain이라고만 붙인 이름도 있었다. 우리의 이 유명한 가곡이 공식적인 영문 이름도 없을까 하는 마음에 우리의 청산에 세계는 아득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 10월 19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8K0ibHWtaNA 링크
Kim: I'll live among the green hill (Arr. Mai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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