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鐘, Bell)
내가 ‘종’이라는 물건을 처음 대한 건 매우 어렸을 때 살던 시골에서였다. 지금은 시골에 가도 볼 수 없는 ‘상엿집’이라는 게 동네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었고 여기에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상여’가 보관되어 있었다. 지금은 보편화되어있지 않으니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가끔 특별한 행사 때나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동네에 상가가 생기면 마을 사람들 중에서 힘이 좋은 사람들이 나서서 상엿집에 보관하고 있던 자재들을 꺼내어 조립하고 상여를 만들어 어깨에 멜 준비를 하곤 하였다. 이 상여가 상가를 떠날 때 나이가 지긋한 분이 홀로 상여의 틀 위에 올라 상여잡이 (동네에서는 그렇게 불렀는데 지식백과에 의하면 그런 사람을 ‘선소리꾼’이라 하였다. 선소리에 따라 상여꾼들이 후렴을 하였다.) 역할, 상여 지휘관을 하시며 마을을 떠나는 분이 좋은 곳으로 가시도록 구슬픈 소리 가락에 맞추어 종을 흔들곤 하였다. 영화 같은 것을 보면 그런 분이 흔드는 종이 흡사 도시에서 지게를 지고 두부를 팔러 다니던 ‘두부장수 종’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당시 내가 본 상여잡이의 종 모양은 기억에 없다. 두부장수의 종 역시 내가 도시에서 본 첫 번째 종이었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마을에 교회가 생겼다. 동네 인구에 비해서는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의 아이들은 거의 모두 수시로 교회에 드나들었다. 전쟁을 치른 지 얼마 안 지난 때라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당시 교회에는 가끔 미군들을 통하여 종이박스가 들어오고 옷가지를 비롯하여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다양한 물품들이 ‘구호물자’라는 이름하에 교회를 통하여 동네에 공급되었다. 초콜릿이나 캔디 및 학용품들도 아이들에게 조금씩 주어지곤 하였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는 노는 것조차 교회 앞마당이 좋았다. 물론 나도 그 아이들 중 하나였다. 교회에는 교회 본 건물 보다는 훨씬 높은 뾰족한 탑이 있고 그 탑 속에는 종이 놓여 있었다. 내가 본 최초의 서양식 종이었다. 그리고 종에서 아래로 긴 줄이 늘어져 있었고 아래서 그 줄을 잡아당기면 종이 울렸다. 교회의 예배나 다른 일이 있을 때 종이 울렸는데 몇 번이 울렸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종을 치는 사람 마음대로였을 것 같다. 그 때까지 우리나라의 범종을 보지 못하였으니 교회의 그 종모양이 세상의 모든 종모양이려니 하였다.
우리나라 범종의 모습을 본 것은 서울에서 다닌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의 교과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에는 그저 ‘에밀레 종’ 이름 한 가지와 그 종에 얽힌 설화만을 기억하였다. 어렸을 때야 그 설화조차도 믿고 있었고 나중에 정식 이름이 ‘성덕대왕 신종’이라는 것을 알았다. 과학이 발달하며 밝혀진 바에 의하면 설화는 그저 설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도시 개발이 없을 때였으니 조그마한 절은 동네 주위의 야산 속에 있기도 하였고 또한 학교에서 봄가을 이름 있는 절 주변으로 소풍이라는 것도 가곤 하였으니 그곳에서 우리의 범종 실물을 대할 수가 있었다. 처음 교회에서 마주하였던 서양의 종을 세상의 종으로 알고 있었던 나에게는 사뭇 다른 우리의 범종 모습은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교회의 종과는 달리 우리의 종은 높은 곳에 매달려 있지도 않았고 타종하는 방법도 서양의 그것과는 사뭇 다름을 알았다.
사회에 진출하고 다른 나라에 갈 기회가 많았다. 서양의 기념품가게에는 방문지의 특징을 담아 수집용으로 판매하는 작은 종들이 많았다. 따라서 부피도 작고 방문지의 문화적인 기념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종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자연적으로 서양의 종과 우리의 범종 그리고 동양의 다른 나라의 종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각종 자료를 인터넷을 통하여 찾아보면서 각국의 종에 대한 특징도 알게 되었다. 물론 서양의 종들은 대륙이 다르다고 그 형태가 다르지는 않았다. 높은 종탑에 설치되는 것도 같다. 단지 그 크기와 타종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서양의 대부분 큰 종들은 종 밖에서 아래로 늘어뜨린 긴 줄을 잡아당기면 종이 움직이며 종신이 종 안의 추와 부딪히며 소리가 난다. 그리고 좀 작은 종은 종속의 추에 줄을 달아 추를 움직여 종신에 부딪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나마 요새는 종치는 것이 힘드니 기계를 설치한 곳이 많다고 한다. 동남아 국가들의 오래된 종들 중에는 서양식과 중국식이 혼재한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며 또한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서양 국가들의 통치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동양의 종,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의 종은 그 모양이 사뭇 다르다. 우리의 범종은 대게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 모양은 우리의 장독을 엎어 놓은 모양이며 울림을 좋게 하기 위하여 종 아래 원형의 구덩이를 만들어 놓았으며 걸개 쪽에는 파이프로 된 음통이 별도로 있다. 반면 중국의 종은 대개 튤립을 엎어놓은 모양이고 철재로 만들어져 있으며 내가 듣기에 소리도 우리 것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일본의 종은 우리처럼 청동 재질이 많지만 드럼통과 같은 모양으로 아래서 위쪽으로 약간 마름모꼴처럼 생겼다 하겠다. 단지 한중일 공히 서양과는 달리 종 안에 종추가 없으며 밖에 걸려있는 당목이라는 것을 움직여 종신의 겉을 두드리는 게 공통점이라 하겠다. 물론 동남아의 불교국가에는 그들 특유의 종모양이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범종은 국제 종 관련 학회의 분류목록에 ‘Korean Bell'로 단독 분류되어 있다고 한다. 그 모양이나 울림의 형태가 독특하기 때문이라는데 자세한 과학적 근거야 전문가들이 알겠지만 그런 요소들이 내가 종 관련 블로그를 만들고 우리의 범종뿐만이 아니라 동서양의 역사적인 종들의 스크랩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 할 수 있겠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고구려나 백제에도 종은 있었을 테지만 현존하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일본으로 많은 종이 불법 반출되었음에도 회수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일본에서 밝혀진 종들 외에 공개되지 않은 많은 종들이 있을 텐데 더 이상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국내의 범종 또한 그 숫자에 한계가 있어 문화재급 범종은 더 이상 스크랩을 할 수 없음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따라서 기존 자료가 변경되었다는 소식이나 업데이트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 내 블로그에 스크랩된 자료도 업데이트 되겠지만 전혀 새로운 자료를 올리는 것은 한계에 달한 것 같다. 앞으로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새로운 범종이 발견되어 내 블로그에 계속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3년 8월 5일
하늘빛
타종소리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8v39KSxLY0g 링크
성덕대왕신종 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