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미(美)

korman 2025. 8. 29. 20:04

미(美)

미(美)는 아름답다는 뜻이다. 누군들 그걸 모를까만 ‘미’로 읽혀지는 한자를 찾으면 같은 음 내에 서로 다른 뜻을 가진 많은 글자가 나온다. 안 되는 것, 작은 것, 맛있는 것, 맨 뒤쪽, 흰쌀 등등 읽히는 건 같지만 글자마다 여러 가지 다른 의미가 있다. 원하는 문장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그 한 글자에 다른 글자를 조합하면 좋고 나쁘고를 가리지 않고 만들어 진다. 한자라는 글자가 뜻글자라 하니 글자의 뜻풀이를 하면 되기 때문이다. “미”의 한자를 인터넷 사전에서 찾으면 같은 음의 그 많은 한자 중에서 ‘아름다울 미(美)’가 제일 처음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같은 음에 여러 가지 다른 뜻이 담겨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원하는 제일 좋은 의미가 ‘아름다움’이 아니겠나 하는 뜻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국민학교(초등학교)시절 미술(美術)시간의 ‘미’는, 지금 생각하면 그저 웃음이 나오는 추억이지만, 별로 아름다운 시간은 아니었다. ‘수우미양가(秀優美良可)’로 성적이 주어지던 시절 내 성적표상 미술 성적은 늘 미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림이나 성적이나 같은 미(美)를 지키고 있었으니 난 참 아름다운 초등학생이었다.

갑자기 ‘미’라는 글자가 떠오른 것은 중학교 다니는 큰손녀가 자기편을 들어달라고 할아비에게 내민 미술 시험의 점수 때문이었다. 미술 점수가 반에서 몇 등이니, 전교에서 몇 등이니 하는 전체 성적평가에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그래도 점수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고 하였다. 몇 점이었냐는 물음에 겨우 85점을 맞았다고 하였다. 언뜻 내 초등학교 미술성적이 늘 ‘미’였다는 생각에 실기평가점수였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래도 할아비보다는 그림을 잘 그리나보다고 좀 추켜세우고는 선생님께 “미술 선생님의 전공이 추상화가 아닌 모양이지”라고 하고는 같이 웃었다. 미술이론 시험은 안 보냐고 하였더니 안 본다고 하였다. 그게 늘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미술시험에 대한 불만이었다. 실지로 난 미술선생님께 “전 피카소 제자입니다. 그러니 그런 쪽으로 그림을 봐 주세요.”라고 이야기 드리고는 친구들 모두 같이 웃은 적이 있다. 나의 미술 시간에도 미술이론 시험은 없었다. 그리고 난 그림 그릴 때마다 ‘미’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게 역설적으로는 미를 벗어나지 않았으니 진정한 미술의 아름다움 속에 머물러 있은 시간이 아니었겠나.

30~40년 전, 내 자식들이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 다닐 때 엄마들에게는 아이들을 모두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에 보내는 것이 유행이었다. 난 그 때나 지금이나 최소한 내 집사람에게는 아이들이 원해서보다는 엄마의 허영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당시 큰길가 빌딩에는, 지금은 많이 없어진 듯하지만, 그런 학원들이 오늘날 길거리의 커피숍만큼이나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원에 다니던 아이들도 엄마의 그런 열정에 동조하였다면 초등학교교육을 받은 대한민국의 중년들은 모두 화가나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 두 아이는 그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직업을 가지고 있다. 얼마나 가르치겠다고 거금을 주고 구입했던 피아노는 지금도 딸네 집에 놓여있다. 그러나 피아노 건반 덮개가 열리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인 외손자 녀석은 내 집사람과는 다르게 엄마로부터 미술이나 피아노를 강요받지는 않고 있다. 대신 이 녀석은 지금 스스로 축구와 놀고 있다. 나도 그게 좋은 일이라고 외손자와는 프로축구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아들네 집에 있던 피아노는 손녀들이 거들떠보지 않으니 중고로 팔겠다고 그 피아노 제작사 대리점에 연락을 했었는데 요새는 그런 큰 피아노를 찾는 사람들이 없어 중고로 팔기는커녕 버리는 돈을 내야 수거해 간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수거비를 지불하고, 그러니까 쓰레기 치우는 비용을 지불하고 버렸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아마도 아파트 생활에서의 소음분쟁에서 오는 영향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 젊은 층의 이름은 그렇지 않지만 60세 정도를 넘어선 우리나라 여성들의 이름에는 ‘미’자가 들어간 이름이 많다. 지금은 한자를 병기하지 않아도 한글이름만으로 출생신고가 되지만 당시에는 한자표기가 꼭 되어야 했으므로 여자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고 아마 ‘미’자를 많이 선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미자를 사용했다고 그 모두가 아름다움을 강조한 건 아닐 테지만 대부분이 ‘아름다울 미(美)’자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틀린 말은 아닐 듯싶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미(味)를 강조하는 식당 간판을 대할 수가 있다. 여기에 더하여 美味도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맛이려나? 그런데 味美는? 그럼 이건 맛의 아름다움? 이래서 한자는 말장난을 하기 좋은 글자다. 이에 더하여 요새는 美자를 써야하는 문구에는 Beauty라는 영어 단어가 합성되기도 한다.

세계의 많은 국가들 중에서 우리가 아름다운나라라고 칭송하는 나라가 딱 한 군데 있다. 미국(美國)이다. 그 이름을 도입한 유래가 어찌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알려지다 보니 그런 한자어가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나라의 뭐가 아름답다는 건지는 모르겠다. 대신 일본에서는 미국이라고는 쓰지만 미국에 아름다울 미를 넣지는 않는다. 쌀(米)을 넣는다. 이건 이해가 간다. 땅덩어리가 크니 쌀이 많이 나지 않겠나. 그러니 ‘쌀이 많이 나는 나라’라는 뜻의 미국(米國)이 아닐까? 이제 우리도 그냥 미국인들이 스스로 부르는 ‘아메리카’라고 표기해 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글의 장점은 대부분 그들이 칭하는 발음 그대로 표기가 가능하다는 데 있으니까. 한글이 아름답다고 한글이라는 이름 대신 미자(美字)라고 불리던지 혹은 요새 유식한척 ** 등에서 외국말과 섞어 쓰기로 우리말을 망가트리고 있는 ‘뷰티풀한글러’ 같은 쓸모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2025년 8월 29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