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고려의 종

광주박물관 소장 강진 출토 동종 (강진 출토 기유명 범종 全南 康津 出土 己酉銘 梵鍾)

korman 2007. 3. 26. 21:22

자료발췌일 2007년 3월 26일 현재

 

강진출토 동종

강진 출토 기유명 범종( )

 

 

乙酉(1369년 추정), 청동,

전체높이 24.5cm, 종높이 17.8cm,

입지름 17.5cm, 국립광주박물관


연곽과 연곽사이 네 곳에, 머리에 두건을 쓰고 연꽃 위에 서서 합장하고 있는 승려상이 있어 주목되는 종이다. 승려상은 통견의 옷자락이 팔꿈치 양쪽으로 뻗치고 있으며 발목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등 세부조각 솜씨는 치졸하다. 용뉴도 헤엄치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자세인데 입에는 작은 여의주를 물고 염익은 가늘고 형식적일 뿐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종의 형태는 알맞게 부른 배에 하대로 떨어지는 선이 단정하고 아름답다. 상대와 연곽에는 능화꽃과 당초무늬를 새겼으나 마모가 심한 편이다. 당좌는 연곽 아래에 있으며 6잎의 연꽃무늬를 이중으로 새기고 이파리마다 2줄의 연맥을 새겼다. 명문은 하대 바로 위에 한 줄로 선각하였는데, 을유년乙酉年에 만들어 수국사水國寺에 걸었던 종임을 알 수 있다.

 2007년 3월 26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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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출토 기유명 동종  [ 康津出土己酉銘銅鍾 ]

 

 

 

전남 강진 기유명 동종 - 탁본

 

1. 상대

 

2. 유곽

 

 

3. 비천상

 

4. 당좌

 

5. 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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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 출토 기유명 범종(全南 康津 出土 己酉銘 梵鍾)





전남 강진 출토 기유명 범종(全南 康津 出土 己酉銘 梵鍾)(2-25, 3-20)


소 재 지(所 在 地) : 서울특별시(特別市)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
연 대(年 代) : 1369年(공민왕(恭愍王) 18年, 기유(己酉))
실 측 치(實 測 値) : 총고(總高); 24.2cm 종신고(鍾身高); 18.5cm 용뉴고(龍鈕高); 5.5cm
용통경(甬筒徑); 2.3cm 상대폭(上帶幅); 1.5cm 유곽폭(乳廓幅); 1.5cm
유곽장(乳廓長); 6.5×7.5cm 당좌경(撞座徑); 4.8cm 하대폭(下帶幅); 2.5cm
종구경(鍾口徑); 17.5m 종구후(鍾口厚); 1cm


1963年 『고고미술(考古美術)』 4권(卷) 1호(號)63)에 소개된 바 있는 소종(小鍾)이다.
본(本) 종(鍾)은 1963年 1月에 강진군(康津郡) 대구면(大口面) 당전리(堂前里)에서 출토(出
土)된 것으로 하대(下帶) 주연(周緣)을 따라서 ‘기유구월(己酉九月) 일조대(日造大) 납수국사
(納水國寺) 청신여최씨(靑信女崔氏)□□□ 적공전씨급법계생왕(赤公全氏及法界生王) □거원
천지덕(去徒泉之德)’라는 각명(刻銘)된 명문(銘文)이 있어서 또하나의 신례(新例)를 남기고
있다. 이것에서 나타나는 기유(己酉)는 1369年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18年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되며 지대(至大) 4年銘(1311) 고려종(高麗鍾)64)의 수법(手法), 양식(樣式)에 비
교(比較)하여 보더라도 종신상(鍾身上)에 나타난 비천상(飛天像)이 이것에서는 비천(飛天)이
아닌 승상(僧像)으로 바뀌었고, 각부(各部)의 양식(樣式)과 수법(手法) 등이 조기(祖氣)를 띠
고 있어 고려(高麗) 범종(梵鍾)의 말기(末技)에 속(屬)하는 작품으로 생각된다. 상대(上帶)와
하대에 배치된 유곽(乳廓)과 4구(軀)의 승상(僧像) 또한 4개(個)의 연화(蓮華) 당좌(撞座) 등
의 형식(形式)을 살펴보면 용통(甬筒)에는 6주(珠)의 소주(小珠)를 용통(甬筒) 주연상(周緣
上)에 돌리고 있고 용뉴(龍鈕)의 양식(樣式) 등은 한국종(韓國鍾) 양식(樣式)을 갖추고 있다.
상대(上帶)․하대(下帶) 유곽대(乳廓帶)의 주문대(主紋帶)는 4판화(瓣花) 또는 5판화(瓣花)로
된 보상당초문(寶相唐草紋)으로 되어 있고, 당좌(撞座)는 원형(圓形) 윤곽(輪廓)내(內)에 6판
(瓣) 연화문(蓮華紋)으로 매우 치졸(稚拙)하게 처리하였다. 특히 종신(鍾身) 4개소(個所)에
배치한 승상(僧像) 4구(軀)의 자세와 의습을 보면 모두 합장(合掌)하고 통견(通肩)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상대(上帶)와 접(接)한 계연상(界緣上)에는 3각형(角形)과 유사한 입상대(立狀
帶)를 돌리고 있으나 이는 여의두문(如意頭紋)의 퇴화방식(退化方式)에서 온 것이라 본다.
그러나 전체적(全體的)인 면으로 볼 때 종신(鍾身)의 형태(形態) 및 곡선(曲線)은 매우 규모
있게 짜여져 있으며, 특히 배흘림의 곡선(曲線)은 전형적(典型的)인 고려적(高麗的)인 아름
다움을 지니고 있다.


출처 :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