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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추잡성은 어디까지일까 (내 친구의 시간을 생각하며 2)

korman 2010. 12. 26. 21:55

 

 
  

사람의 추잡성은 어디까지일까

(내 친구의 시간을 생각하며 2)

 

여름이 한창 플라타너스의 넓은 잎으로 덮여가던 7월에

내 친구는 이메일 주소라는 가느다란 연결고리만 남긴 채

자신만의 남은 시간을 정리하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고리를 끊은 채 어디로 가 버렸다.

그간 한 친구는 뉴질랜드에서 또 나는 여기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그 가느다란 연결고리를 이용하여 그를 가족의 품으로 보내려고

많은 사연을 보냈지만 그 사라진 친구는

메일을 보았다는 자국만을 남긴 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7월초

그리고 어찌어찌 수소문하여 딸과 누님의 연락처를 알아

친구에게 남아있는 짧은 시간을 전했지만

결혼도 안한 딸만이 아빠를 위하여 흐느낄 뿐이었다.

난 친구가 가족들과 고리를 끊은 이유를 모른다.

그래서 그저 팔이 안으로 굽듯이 친구의 잘못 이라기보다는

그의 남은 시간을 방치하는 가족에 대한 야속함이 더 하였다.

 

내가 다시 그의 소식을 다시 접한 것은

10월이 하순으로 들어가던 첫 날이었다.

대구의 병원에 왔다가 통영으로 가는 길이라는 말만 남기고

이제 생을 빨리 마감하여야 한다는 듯이 3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나에게는 몇 마디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공중전화카드의 요금 떨어지는 소리를 뒤로하고

서둘러 전화 수화기를 내렸다.

7월의 그는 통영의 어느 섬으로 가겠다고 하였었는데

 

그 후 보름여의 시간이 지난 후 이제 많은 것을 정리한 듯

아니면 뉴질랜드 친구의 애타는 이메일에

생의 남은 한 줄이라도 전해야겠다는 마음이었는지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이메일을 남겼다.

그리고 그 메일 속에는 누님에 대한 고마움과 죄송함

딸에 대한 애비의 미안함이 애절하게 녹아 있었다.

난 그것이 친구를 통하여 그가 가족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라 느꼈다.

그래서 그의 누님과 딸의 휴대전화에 그가 전하고 싶은 마음을 남겼다.

그리하면 그 가족들이 친구의 근황을 나에게 묻지 않겠나 하는 바람으로.

 

다음날 낯선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의 큰형이라 하였다.

누님께서 사라진 동생에게 돈을 좀 보내라 하였는지

내가 알고 있는 동생의 근황에는 관심이 없는 듯

누님에게 내가 7월에 전달하였던

동생 통장의 계좌번호만을 묻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으려 하였다.

난 안타까운 마음에 대꾸도 없는 전화통에다 대고

내가 알고 있는 친구의 근황을 속사포처럼 쏘아댔다.

그리고 그는 내 말 중간에 잘 알았다는 말을 남기고는

일고의 미련도 없다는 듯 냉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의 전화는 나에게 가족이라는 게 무슨 의미일까 하는 여운을 남겼다.

“동생이 형에게 아무리 큰 잘못을 하였기로서니 죽어간다는데......”

 

그 다음날 또 다른 낯선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번에는 친구의 작은형이라 하였다.

큰형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나에게 연락해 보라 하였다고 했다.

그 전화를 받고난즉 참 기가 막혔다.

내가 무슨 자신들의 콜센터인가 아니면 춘향이와 몽룡간의 방자인가.

그는 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려 하였음인지 동생의 근황을 묻기 전에

형제들 간의 불화에 대하여 그리고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의 자신이 행한 행동에 대하여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일면식도 없는 동생 친구에게.

난 내가 들을 필요도 없는 그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그의 형에게 전하였던 내가 알고 있는 동생의 근황을

은행계좌번호와 함께 또다시 앵무새처럼 지껄여댔다.

목구멍 밖으로 나오려는 육두문자를 참아가며.

 

그 다음날 저녁 작은형이라는 사람이 통영에 있다며

내가 전해준 정보를 토대로 친구가 머물던 여인숙을 찾았는데

친구는 이미 보름 전쯤에 그곳을 떠났다고 하였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정황상 대구로 갔을 것 같아

다음날 대구의 병원을 찾아보겠다고 하였다.

그런 그의 말에 난 그래도 작은형은 좀 다르구나 생각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소식을 전하던 그는 통영에서 비용이 많이 들어

대구로 가는데 가진 돈이 부족하고

자신의 집사람과 휴대전화 연락이 잘 안 닿는다며

나에게 긴급히 30만원만 빌려주면 다음날 아침까지 돌려주겠노라 하였다.

 

그런 그의 주문에 난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였다.

요새 대한민국 도시에서 휴대전화 안 되는 곳이 어디 있으며

한밤중이라도 송금 안 되는 곳이 어디 있을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오죽 급하면 일면식도 없는 친구 동생과의 처음 통화에

그런 부탁을 할까 생각되어 그 돈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 후 나와의 연락을 끊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으며 문자에 답도 없었다.

내가 죽어가는 친구를 위하여 썼다고 생각할 액수이지만

친구를 위하여 쓰는 것과

그의 형에게 빌려준 것과는 다르지 않는가.

 

설마 그럴 리가 하고 생각하며 흘린 시간이 한달여 지났다.

그동안 며칠에 한 번씩 그에게 전화며 문자를 보냈지만

결과는 모두 같았다. 참 화가 났다.

그래서 난 오늘 그의 형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황당한 이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그의 형은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안함과 창피한 마음을 섞어

저녁까지 자신이 대신 갚아 주겠다고 하였다.

은행 현급지급기에 통장을 밀어 넣고 입금을 확인하고는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당신이 갚아야 할 거 당신 형이 대신 갚았습니다.

형이 되어가지고 죽어가는 동생을 팔아 일면식도 없는 동생 친구에게

그런 험한 일을 하시다니 내가 다 눈물이 납니다.“

이 문자를 받은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2010년을 보내며 난 지금 생이 끝나가는 내 친구 생각보다는

그 동생을 필아 몇 푼의 돈을 챙기고 있는 형이라는 사람에

인간이 어디까지 추잡스러워 질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2010년 12월 크리스마스에

60의 인생을 다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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