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원고지의 로맨스
해가 바뀌고 나면 늘 올해는 무슨 주제로 첫 글을 시작하나 하는 생각으로 며칠을 보낸다. 첫날 어머니께 드리는 안부편지를 쓰고 나서 뭔가 희망찬 일을 주제로 물 흐르듯이 컴퓨터 자판이 두들겨 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만 새해 첫 날부터 그저 워드 프로그램만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첫 주말을 넘겼다. 커피로 대신하긴 하였지만 이럴 땐 늘 30년도 더 전에 끊은 담배 생각이 난다. 옛 노래처럼 내 뿜는 담배 연기 속에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었는데.
머리에서 생각나는 게 없으니 지구력도 없어 몇 자 두들기다가 커피잔 들고 추출기에 물 붓고 그러기를 반복하다 컴퓨터 꺼 버리고는 TV 앞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그러면서 생각났던 게 내 어린 시절 흑백영화에 자주 등장하였던 문인들의 모습이었다. 나라 자체가 어려운 때이기는 하였지만 영화 속의 문인은 한결같이 가난하였고 그 배경은 거의 겨울이었으며 엄지와 검지가 반쯤 잘린 털실장갑을 끼고 지금은 어디서 찾아보기도 힘든 잉크를 묻혀 쓰는 펜을 들고는 입김으로 손을 불어가며 원고지에 무언가를 몇 자 긁적거리다가는 이내 그것을 구겨 방구석으로 팽개치던 모습이었다.
그 때는 제대로 된 공책 한권이 아쉬운 때였고 뒤가 온전한 종이를 발견하면 그것을 매어 공책으로 쓸 때라 그런 장면을 보면서 저리 가난한 사람이 종이 아까운줄 모르고 몇 자 적지도 않고는 뒷장이 멀쩡한 종이를 구겨버리면 뭐 좋은 글귀가 나올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 그런데 그걸 지금의 모습으로 바꾸니 원고지를 구겨 던지는 일만 없을 뿐이지 워드프로그램을 열었다 닫았다, 컴퓨터를 켰다 껐다 하는 것과 매 한가지 아닌가. 세월이 좋아 손가락 시리지 않은 방에서 편한 의자에 앉아 잉크 찍는 펜촉 대신에 자판을 두들기고는 있지만 영화 속의 문인이나 그저 블로그나 카페에 잡기나 긁적거리는 아마추어에도 끼지 못할 나나 첫 구절이 잘 생각나지 않는 것은 같은 모양이다.
종이가 아깝다고 생각한 것은 어릴 때 기억이지만 지금 그 생각을 하며 몇 자 적으려니 또 한편 생각나는 것이 그런 문인 옆에는 왜 꼭 여자가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것도 부인은 아니고 부인보다는 신식 여성으로 열심히 돈을 모아 만년필을 선물하는 여성. 그 장면은 어찌 생각하면 감격스러울 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비판 받아야 할 불륜을 글을 쓰는 문인을 통하여 낭만적인 로맨스로 미화시켜 뭇 남성들에게 불륜을 동경케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삐뚤어진 로맨스를 폐결핵에 의한 죽음으로 묘사하여 결핵조차도 문학적이고 낭만적인 병으로 생각게 하였지만 어렸을 때는 그저 버려지는 원고지에 대한 아까움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되돌아보면 컴퓨터가 대중화 되지 못하였을 때 까지만 하여도 신문이나 잡지사에서 글을 모집할 때에 꼭 “200자 원고지 몇 장”이라는 문구가 따라다녔다. 그게 요새는 “A4지 몇 장”이라고 바뀌어졌다. 잡지나 신문의 지면관계상 글자 수를 제한하여야 함이지만 원고지를 대신하는 A4에는 글꼴이나 편집에 따라 글이 들어가는 넓이가 달라져 200자는 물론이려니와 그 몇 배도 들어가는데 글자 수 규정이 어찌 되는지 모르겠다. 물론 워드프로그램에는 아직 원고지 양식이 들어있어 200자도 쓸 수 있지만 종이도 귀하던 시절에 어째서 원고지에는 200자 밖에는 칸을 만들지 않았는지, 왜 원고지 뒤는 쓰지 않았는지, 또 그것이 모든 물자가 모자라던 시절에 가난한 지식인들의 건방은 아니었는지 참 궁금하다.
나도 잉크를 발라 쓰던 펜촉의 끝세대이기는 하나 지금은 점점 무디어가는 손글씨에 대한 향수 보다는 자판을 두드리는 편리함이 더 익숙하지만 프린트조차 하지 않고 내가 쓴 글을 보내고 싶은 곳으로 보낼 수 있는 지금, 원고지가 아깝다고 느끼던 어린 시절과 더불어 잉크병이 새어 책가방을 적시고 하얀 교복 저고리에 파란 점이 생기던 그 때를 생각한 것이 올해의 첫 글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졸업 전에 잊어버렸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는 나에게도 만년필이 있었는데.......입학선물로 받아 귀하게 간직했던 파카 만년필. 숫자가 기억이 안 나네.
2015년 1월 5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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