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협착주의

korman 2015. 6. 17. 18:23

 

 

 

협착주의

 

절친한 친구가 카톡으로 뽀빠이 이상용씨가 쓴 글을 보내왔다. 자전적 과거와 사람들에게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간결한 글이었지만 그러나 그 특유의 유모스로운 표현으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애잔하게 감동을 주는 글이었다. 그 글을 읽으면서 나도 오늘은 좀 그런 잔잔한 글을 몇 줄 적어봐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컴퓨터를 열었는데 바탕화면에 떠 있는 메모가 글의 내용을 삼천포로 빠지게 하였다. 아니 그 보다는 애잔하게 감동을 주는 글귀가 내 머리에서는 만들어지기가 어렵다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협착주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 무슨 뜻인지 알고 있을까? 지난 주말 동네 공원에 들렸다가 좀 언덕진 곳 가녘에 놓인 펜스에 붙어있는 이 네 글자를 보고 무슨 뜻인지 몰라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뒤져보고서야 대충 그 의미를 짐작하였던 말이다. 가끔 TV에 나오는 의사들이 사용하는 ‘혈관협착증’이라는 의학용어를 들어본 기억은 있는데 그것도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던 차에 갑자기 ‘협착주의’를 마주하고 보니 언뜻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 단어이기도 하다.

 

70년대 말 처음 입사했던 회사의 복사기, 당시엔 복사기도 회사의 큰 자산이라 아무나 가까이 하지 못하고 총무과의 결재를 받아 담당만이 손 댈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 복사기 위에 ‘촉수금지’라 쓰인 종이가 놓여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처음으로 마주하였던 그 단어가 협착주의를 대하자 순간 생각나 그저 혼자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지금도 가끔 공공시설물에서 발견하는 그 ‘촉수금지’.

같은 한자를 사용하는지 몰랐었지만 ‘촉수’라는 것이 하등 무척주동물들의 감각기관이라는 것만 알았던 나에게는 참 당황스러운 단어였다. 아무튼 사회에 나와서야 처음 알았던 그 촉수금지는 지금 대하여도 나에게는 어색하게 다가온다. 아무리 촉수(觸手)라는 한자어가 ‘사람손이 닿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단어가 붙어있는 시설을 볼 때 마다 그냥 ‘손대지 마시오’라 쓰면 만인이 쉽게 알 것을 굳이 일반적으로 사용하지도 않는 어색한 단어를 쓸까 생각하던 차에 공원 한편에서 처음대한 ‘협착주의’는 이 나이에 또 한 번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스마트폰으로 찾아본 인터넷에 처음 나타난 것은 모두가 손이나 옷자락이 기계에 말려드는 것을 주의하라는 위험경고의 뜻이 대부분이었다. 아마 펜스에 ‘접근금지, 추락주의’라는 또 다른 경고문구가 없었다면 그냥 ‘이 무슨 해괴한 말이야’하고 인터넷을 닫았을지 모르겠다. 추락주의라 써진 공원 한편은 지금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있으며 펜스 건너편 공사장 쪽의 공원 벽면이 깎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그 쪽에 펜스가 놓여 있으며 위험을 알리는 문구가 적혀있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공원에서 “옷이 끼인다, 손가락이 끼인다”라는 의미는 아닐 텐데 이 무슨 경고문이야 라는 생각에 한글사전을 찾았다. 그러나 ‘협착주의’라는 단어는 없었다. 협착을 찾았다. “협착(狹窄) : 좁을 협, 좁을 착 : 장소가 좁거나 사정이 어려운 것”. 따라서 추측하건대 좁아지는 지역이니 접근하면 추락할 수 있다는 위험표지인 모양이었다. 공원을 내려오며 공사장이나 공장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은 이 단어에 익숙할지 모르겠지만 얼마나 많은 일반인들이 ‘협착주의’의 뜻을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 이 글에 “그래서 한자교육이 필요해”라고 댓글을 다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한자교육이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한자교육 이전에 한자를 사용하여 우리말에 앞서 억지로 만들어 내는 한자어는 없는지 한자에 박식한 분들은 우선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더욱이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에는 어린아이들도 쉽게 이해하는 범용적인 단어로 말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유식 뒤에 무식이 올 수 있다.

 

2015년 6월 17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