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혼자 사시게요?

korman 2015. 6. 8. 11:55

 

 

 

혼자 사시게요?

 

지난달 30일, 몇 년 전 안개 때문에 가지 못하였던 섭섭함을 안고 이른 아침 친구들 부부가 인천 연안부두에 다시 모였다. 며칠 전부터 노심초사 날씨를 체크하고 있었는데 토요일 아침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 그저 도로를 조금 적시는 정도의 비였지만 덕분에 온도가 내려가면서 안개에 대한 염려는 접게 하였다. 서해의 각 섬으로 주말여행을 떠나는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여행객들로 북적대는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어묵으로 아침을 대신하며 1박 2일 백령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타고 가는 배는 자동차 70대, 승객 564명을 싣고도 최대속력 45노트(83.34km)의 고속으로 운항하는 쌍동선이라고 소개되었다. 배의 몸이 두 개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몸이 하나였던 세월호와는 안전성이 다르다고 하였다. 마침 승선하는 입구가 차량을 적재하는 곳을 지나야 했으므로 어찌 적재되었나 살펴보았다. 여행에 들뜬 아마추어가 본들 뭘 제대로 살필 수 있을까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뉴스에서 들었던 세월호의 모양새와는 달라보였다.

 

객실은 거의 만석이었으나 휴가에서 복귀하는 해병대원 몇 명 외에 젊은이들은 별로 없었고 거의가 친목단체에서 나들이하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었다. 배가 연안부두를 떠나자 비행기에서처럼 구명조끼 사용 시범을 비롯하여 승객의 안전과 관련한 각종 안내방송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인천대교를 벗어나자 고속으로 항해를 하는 만큼 안전을 위하여 되도록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그 방송이 끝난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뒤이어 나온 방송은 “뒤쪽 통로에 자리 깔고 술자리 벌리고 떠드시는 분들 자리로 돌아가 주십시오. 본선에서는 음주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였다. 그 방송은 한참 동안이나 반복적으로 방송되었다. 아침 8시였다.

 

갑자기 우리가 앉아있는 뒷줄과 옆줄에 앉은 일행에서 고성이 들렸다. 남녀가 어울려 여행을 가니 그 즐거움에 나누는 대화의 목소리가 보통보다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들은 주위에 불쾌감을 줄 정도로 떠들어 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가 승무원에게 이야기를 한 모양인지 곧 민원이 들어왔으니 다른 승객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춰달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갑자기 험한 말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잘못은 지*들이 하면서 승객에게 이래라 저래라 *랄이야.”  검은 안경에 얼굴이 가려져 있다고 생각하였는지 그들 중 한 명이 큰소리로 내뱉는 막말이었다. 말을 안 들으니 보안요원이 직접 왔다. 그 때서야 좀 나아지나 했더니 그가 가자 그 작태는 다시 시작되었다. 그들은 그 이른 아침에 이미 술에 취해있었다. 그들의 고성 속에 4시간 30분여의 항해가 끝나고 배는 백령도에 승객들을 토해내었다.

 

아침과는 다르게 화창해진 날씨 속에 일요일 오전까지 아름다운 풍광을 따라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고 12시 30분 돌아오는 배에 올랐다. 돌아 올 때는 좀 조용하려니 하였을 즈음 귀에 익은 방송이 나왔다. 고속으로 바다를 가르는 고로 승객의 안전을 위하여 항해 중에는 선실 밖으로 승객이 나가지 못하게 되어 있으나 항해시간이 4시간이 넘으니 선실의 공기순환과 흡연자들의 편의 및 신선한 공기가 필요한 승객들을 위하여 승무원 입회하에 두 개의 선실 뒷문을 잠깐씩 개방하고 있었다. 나도 나가 보았다. 그곳에는 20여명 정도가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조심하지 않으면 꺼내든 전화기를 날려버릴 정도로 바람이 세었다. 출입을 통제하던 승무원이 잠시 자리를 비웠음인지 누군가가 그새 술판을 벌린 모양이었다. “왼쪽 출입문 뒤에 자리 깔고 음주하시는 분들 위험하오니 선실 안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본선에서는 음주가 금지되어 있으며 방관시 당사가 제재를 받습니다. 승객 여러분의 협조 바랍니다.” 그러나 이 방송도 한두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술판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함인 것을 그들은 외면하고 있었다.

 

바다가 잔잔하였음인지 배의 움직임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배는 인천 내항으로 들어섰다. 인천대교를 지나자 많은 사람들이 하선을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방송이 나왔다. “지금 서 계시는 분들은 배가 완전히 접안할 때 까지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서 계시면 접안 시 일어날지 모르는 충격에 위험해 질 수 있습니다.” 계속된 방송에도 누구 하나 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없었다. “누구네 개가 짖나?”는 식이었다. 모두가 나이깨나 먹은 사람들로 세상 살만큼 산 사람들이고 사리판단을 못할 만큼 지능지수가 낮아 보이지도 않았다. 이들도 무슨 일이 생기면 선사를 욕할 것이고 정부에는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다고 큰소리 칠 것이다.

 

메르스라는 이상한 병이 돌아다니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정부를 질타하고 있다. 야당에서는 무능한 정부라고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격리를 강제할 수 있는 법은 없는 모양인지 알면서도 스스로 격리를 풀고 직장 동료들과 남의나라에 까지 피해를 준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자신이 격리 대상인지 알고 있는 의사조차도 부인과 함께 해외로 나갔다 돌아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치권에서는 해야 할 일이 연일 정부를 비방하는 일 밖에는 없을까? 그 보다는 격리를 강제할 수 있는 법을 만드는 게 급선무가 아닐까? 알면서도 격리를 벗어나는, 알면서도 즉각 당국에 신고하지 않는, 알면서도 밥그릇싸움만 하는 사람들 그리고 백령도를 오가며 만난 사람들 모두의 도덕성은 어디로 갔을까?

 

백령도를 다녀오며 또 메르스 사태를 바라보며 느껴지는 것은 위급 시 당국의 현명한 대처가 가장 중요하기는 하지만 국민의 자발적인 협조 없이는 위급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국민은 정부에 무언가를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에 반하여 법이 정한 의무가 아니라도 국민으로서의 지켜야 할 의무와 도리가 있음을 일부 사람들은 인지하지 않는 것 같아 씁씁한 생각이 들었다.

 

권리와 의무는 공존하는 것이고 자유 앞에는 자율이 있어야 하며 사회는 모든 국민이 같이 사는 곳이지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5년 6월 8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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