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종(梵鍾)의 기원(起源)
범종(梵鍾)의 기원은 지금까지 일반적인 통설로 된 것은 두 개의 설(說)이 있는 바, 그
중 일설(一說)은 중국(中國)의 은대(殷代)이후 예기중(禮器中) 악기(樂器)의 일종(一種)인
고동기(古銅器)의 박(鎛)․종(鍾)․정(鉦) 중에서 종(鍾)을 모방하여 오늘날의 범종(梵鍾)
의 조형(造形)이 비롯되었다고 하는 설(設)1) 이며, 또 다른 일설(一說)의 주장(主張)은 고
대(古代) 중국(中國)의 종(鍾)이나 탁(鐸)을 혼합(混合)한 형식(形式)에서 발전(發展)되었다
고 하는 설(說)이다.2)
그러나 근간에는 인도(印度)에서부터 불교(佛敎)와 더불어 들어왔다는 설(說)과 자체(自
體)에서 발생․발전하였다는 설 등이 있으나, 이와 같은 설(說)은 신빙성이 희박하여 문제
되지 않는다고 본다.
특히 위의 두 가지 설(說)이 가장 유력시되는 학설(學說)인 바, 이 두 가지 설(說)중에서
공통(共通)되는 점은 모두가 고대동기(古代銅器)의 악기종류(樂器種類)의 일종(一種)인 종
(鍾)이라는 것에서부터 발전(發展)하여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에서 지적하는 악기종류(樂
器種類)의 종(鍾)이라는 것이 용종(甬鍾)은 주시대(周時代)에 제작되어 성행(盛行)되었던
것이 주말(周末) 전국시대(戰國時代) 이후부터 다른 예기(禮器)와 더불어 그 자취를 감춘
하나의 악기(樂器)의 일종(一種)인 것이다. 이와 같은 용종(甬鍾)의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이
8세기경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한국종(韓國鍾)의 각부분(各部分)에서 특색(特色)과 양식(樣
式)을 가장 많이 구비하고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하며 그리고 용종(甬鍾)의 ‘용(用)’부분(部
分)이 한국종(韓國鍾)의 용뉴부분(龍鈕部分)에 해당되며, 용종(甬鍾)의 ‘헌(軒)’ 부분(部分)
인 수두문(獸頭紋)이 발달(發達)하여 용두(龍頭)로 변화(變化)하였고, 종신(鍾身)에 해당되
는 뉴부(鈕部)에 36개(個)의 돌기(突起)를 나타낸 ‘매(枚)’가 한국종(韓國鍾)의 유두(乳頭)
로 표현(表現)되고, 용종(甬鍾)의 ‘대(隊)’에 해당되는 곳이 한국종(韓國鍾)의 당좌(撞座)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는 주장(主張)이 첫째 주장설(主張說)의 대략(大略)인 것이다.3)
그리고 여기서 이야기하는 용종(甬鍾)의 각부내용(各部內容)을 보면 손잡이 부분(部分)
에 ‘용(甬)’이 있고, 이 용(甬)에는 ‘형(衡)’․ ‘선(旋)’․‘간(幹)’이라는 세부적(細部的)인 각
칭(各稱)이 붙어 있는 구조(構造)로 되어 있는데 용(甬)의 밑으로는 ‘무(舞)’라고 칭하는 곳
이 있는데 종신(鍾身)에 해당된다. 그 양면(兩面)에는 ‘전(篆)’이라는 것으로 구획(區劃)하
여 ‘매(枚)’라고 칭하는 돌기물들이 일면(一面)에 18個, 양면(兩面) 합해서 36個의 돌기(突
起)가 있고, 이 부분(部分)은 「뉴(鈕)」라고 칭하는 곳에 배치(配置)되어 있다.
종신(鍾身) 양쪽의 뾰족한 하단(下端)의 첨단부분(尖端部分)을 ‘선(銑)’이라고 칭하고, 그
양선간(兩銑間)의 내만(內彎)된 굴곡진 부분(部分)의 선(線)을 ‘간(干)’이라고 하여, 이 간
(干)의 중앙상부(中央上部)에 ‘대(隊)’라고 칭하는 당좌(撞座)와 유사한 것이 있다.
이상에서 본 바에 의하여 여러 가지 점을 감안하여 볼 때, 용(甬)․종(鍾)의 여러 가지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이 한국(韓國) 범종(梵鍾)이다. 또한 중국종(中國鍾)이나 일본(日本)의
화종(和鍾)에 비하여 가장 고대(古代)의 양식(樣式)을 갖고 있으며, 특수(特殊)한 양식(樣
式)과 구조(構造)를 구비한 것이 한국 범종(韓國梵鍾)의 본연(本然)의 형태라고 본다.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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