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계란이 왔어요, 수입계란이 왔어요.

korman 2017. 2. 2. 17:58




계란이 왔어요, 수입계란이 왔어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항암 후유증도 어느 정도 견딜만하니 올해부터는 못했던 차례 지내야겠다고 음식을 준비하면서 수입달걀이 판매된다는 뉴스를 보더니

“이제는 제사상에 계란까지 수입품이 올라야 되네.“

라고 중얼거리는 마누라의 혼잣말을 듣다 갑자기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 그 구절이 떠올라 혼자 실없이 웃었다. 매년 설 때만 되면 제사음식을 가지고 방송에서 단골로 내보내던 뉴스가 조상에 올리는 수입식품 이야기였는데 계란까지 남의나라 것을 사용하고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하여가'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온 산야에도 남의나라 식물과 동물이 들어와 우리의 드렁칡과 얽혀있는 판에

”이 나라 것 먹은들 어떠하리 저 나라 것 먹은들 어떠하리...“


국산 계란이 아무리 비싸도 자기는 수입계란은 안 먹겠다고 마누라가 다시 중얼거렸다. 난 또 피식 웃었다.

“해외여행 가서는 남의나라 계란 잘도 먹었으면서...”.

그러더니만 한 수 더 떴다.

“국산도 하얀 게 있던데 수입산은 모두 하얀 거네. 난 흰 달걀 안 먹어.”

어릴 때는 하얀 달걀만 먹고 자란 환갑이 넘은 세대가 이건 또 무슨 소리? 호텔에서 주던 삶은 계란 모두 하얀 거였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잘도 먹더니. 정육점 가면 미국산 초이스 등급의 소고기 사오고 감자탕집에 가면 스페인산 등뼈해장국 잘도 먹으면서 어찌 계란은 그리 따지노?”


수입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는 어느새 나이든 세대까지도 하얀 달걀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도록 갈색에 너무 익숙해져있다. 아이들이야 하얀 달걀을 대해본 경험이 별로 없으니 당연히 거부감이 일겠지만 학창시절에도 줄곧 하얀 것을 대하고 자라온 나도 이제는 마트에서, 설사 갈색이 좀 더 비싸다고 하여도, 자동으로 갈색 달걀을 집어 드는 모양새가 되었다. 예전에 우리가 먹던 보편적인 달걀은 모두 흰색이었다. 그리고 볏짚으로 싼 10개들이 흰 달걀꾸러미가 귀한 선물의 대명사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어느새 갈색이 좋은 달걀처럼 느끼게 훈련이 되어 있는 것이다.


모두 모여 있는 자리에서 달걀의 색에 대하여 논쟁이 벌어졌다. 사료에 따라 다르다느니, 닭 종류에 따라 다르다느니 등등. 나이 먹은 마누라까지도 나를 쳐다봤다. 난 자신 있게 대답했다. 흰 닭은 흰 달걀, 갈색 닭은 갈색. 내 기억으로 예전 하얀 달걀이 대세이던 시절에는 양계장에서 모두 흰 닭을 길렀는데 요즈음 TV에 비쳐지는 모습은 모두 갈색 닭 일색이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흰 달걀을 수입한다고 했을 때 인터넷을 뒤져 궁금증을 미리 해결하였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못 믿겠다는 표정이어서 부가설명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갈색 달걀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라고 한다. 그 이전에는 거의 모든 농장에서 하얀 닭을 길러 흰 달걀이 많았다고 하는데 달걀이 갈색이 된 이유는 우선 우리나라 토종닭(갈색과 진갈색 얼룩)에서 난 달걀로 보이게 하기 위한 것, 그리고 세척환경이 지금 같지 않던 시절 흰색에 오물이 묻으면 선명하지만 갈색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갈색 달걀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믿거나 말거나)고 하니 이게 사실이면 소비자를 우롱한 처사가 흰색으로 돌이키기 어려운 처지까지 온 것이 아니겠는가?


수입달걀이 시중에 풀리고 나자 달걀부족에 대한 이야기가 살아졌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어디에 쌓아놓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설이 지나자 더 늘어난 것 같다. 오늘 길거리를 걷다 지나친 마트 앞에도 운송차량에서 갓 내려놓은 30개들이 달걀꾸러미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런데 수급이 원활하면 내리겠다고 올라간 달걀 값은 언제 내려올까? 내 생각에 쉽게 내려오지 않을 것도 같다. 이런 일 생기면 올려놓은 값들이 언제 제대로 내려온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매점매석하고 값 올리는 사람들도 나라를 탓하겠지.


휴일에 계란 파는 행상 트럭이 지나가면서 방송을 한다.

“계란이 왔어요. 00계란이 왔어요.”

그게 좀 있으면

“계란이 왔어요. 수입계란이 왔어요. 스페인산 계란이 왔어요.”

이리 될 날도 있겠다.


계란 '하여가(何如歌)’에 신토불이 '단심가(丹心歌)'로 답할까 하노라.


2017년 2월 2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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