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통로
가끔 나는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자격이 얼마만큼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싱가포르 같은 곳을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들 중에는 그곳 길거리의 깨끗함과 잘 가꾸어진 녹색공간 및 거리질서 등에 대하여 부럽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 중에 하나이다. 누군가는 그 나라의 엄격한 벌금 및 처벌제도가 그리 만들었다고 하지만, 물론 그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난 그리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생활환경을 그렇게 만들겠다는 국민들의 의지와 행동이 우선이었다고 생각한다.
10여년이 흐르기는 하였지만 싱가포르 출장에서 인천공항에 돌아와 짐을 찾을 때의 기억이다. 손수레가 쌓여있는 곳에서 하나를 꺼내고 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밀치더니 내가 잡았던 수레를 낚아챘다.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바닥에 침을 한 번 뱉더니 부리나케 가방 나오는 곳으로 그 수레를 밀고 갔다. 어이가 없었지만 다른 것를 가지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옆으로 다가가 보니 싱가포르에서의 자투리시간에 몇 곳을 돌아봤는데 앞서가던 단체관광팀이 마침 한국팀이었던지라 공짜설명도 들을 겸 잠시 어울려 다녔던 일행 중의 한 분이었다. 그녀에게 다가서며 “또 만났네요”라고 인사를 건네고는 “싱가포르에서는 가이드가 하라는 대로 그리 질서를 잘 지키시더니 귀국하여 마음이 급하셨나보죠? 그리고 거기서는 길바닥에 흘린 손톱만한 휴지도 주워 핸드백에 넣으시더니 자기나라 공항에서는 바닥이 이리 깨끗한데 침을 뱉으시네요?.”라는 말로 언짢은 심정을 내 비쳤다. 그녀의 겸연쩍은 표정이 얼굴에 그려졌다.
내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 언덕에는 운동시설을 설치한 작은 공원이 있다. 최근 공원 아래쪽에 재개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차도와 인도가 새로 생기고 언덕의 기존공원이 확장되어 좀 더 좋은 공원 환경이 조성되었다. 확장된 공원에는 인도와 나란히 폭 2미터 정도의 녹지공간과 그 옆으로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그 녹지공간에는 제법 큰 소나무들과 꽃을 피우는 나무들 및 잡목이 무리로 심어져 있고 사이사이에는 잔디가 잘 깔려있다. 그리고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클로버풀밭도 있어 가끔 네잎클로버를 찾는지 허리를 굽히고 열심히 풀밭을 쳐다보는 사람도 보인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나무들이 쓰러지지 말라고 서로 묶어놓은 대나무 버팀목도 있다.
길이 있다. 인도 따라 그리고 녹지를 따라 흙으로 잘 다져진 산책로가 있다.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인도와의 연결이 필요한 곳에는 녹지 중간에 인도로 나가는 몇 개의 통로도 마련되어 있다. 누가 봐도 인도와 산책로 사이에 더 이상의 통로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무수히 많은 다른 통로들이 잔디밭을 밟고 만들어져있다. 녹지공간 내내 나무나 잡목이 막아서지 않는 2~3미터 간격으로, 그것도 모자라 길모퉁이 꽃밭도 삼각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제통로하고 할까? 공원을 이용하는 일반인들이 사적으로 만든 통로이니 사제통로라 하여도 좋겠다. 그곳을 통하여 인도 쪽으로 나간다고 하여도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한 차도를 건너는 건널목도 없다. 길 건너에는 아파트가 있어도 공원에 접한 인도 쪽에는 아무런 건물이 없으니 건물에 빨리 가기위한 것도 아니다. 건널목과 버스정류소가 있는 인도지점에는 이미 포장된 연결통로가 만들어져있다. 그러니 잘 가꾸어진 잔디밭을 훼손하면서 사제 통행로를 마구잡이로 만들어야 할 어떤 명분도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묻는다면 “그곳에 길이 나 있어 갔다”라는 이유를 댈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잔디밭에 모두 금줄이 매어 있었다. 그리고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적힌 팻말이 금줄에 매달려 있거나 잔디밭 가장자리에 꽂혀 있었다. 그러나 요새는 사용자들의 인격을 믿는지 그런 팻말들은 많이 없어졌다. 그런 믿음에도 불구하고 만든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녹지에 수많은 사제통행로가 생겨났다. 이 모습에서 나는 수레를 뺏어가던 모습은 둘째 치고 그리 깨끗한 바닥에 침을 뱉던 그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아울러 우리가 얼마나 더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그러니 법이 엄격하건 강제가 되었건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건 간에 싱가포르의 녹지환경이 부러워지는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너네 집이면 이런 좋은 잔디밭을 밟아 길을 내겠니?”라는 팻말을 꽂아 놓고 싶다.
2017년 2월 16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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