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컴퓨터 앞에 놓고 갑갑해 하던 차에

korman 2017. 2. 22. 15:56




컴퓨터 앞에 놓고 갑갑해 하던 차에


가끔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갑갑하다 혹은 답답하다’라 느낄 때가 언제일까 그리고 평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그런 경우를 만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하여 스스로 갑갑함을 느낄 때도 있겠지만 사회생활에서 누군가와의 대화중 상대방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내 경우는 융통성 없이 매뉴얼대로만 응대하는 고객센터의 대답을 들을 때 그렇고 전화가 이 곳 저 곳으로 돌아가며 친절히 한다고 본질에 대한 대화보다는 매 사람마다 똑 같은 앞뒤 장구한 인사로 전화요금을 축낼 때 그렇고 인력부족으로만 돌리는 관공서의 대답을 들을 때 그렇고 정치인들의 50보 100보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렇다. 갑갑함을 벗어나 짜증이 날 때도 있다.


아이들은 친구들이 어디 다닌다고 하면 친구와 같이 그곳에 다니고 싶어 한다. 내 손주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도 그런 아이들이 많은 모양인지 미술학원, 피아노학원, 태권도학원 같은 곳에서 노란차가 매일 대기 중이다. 내 손주들은 몇몇 친구들과 일주일에 한 번 어린이집이 끝나면 대형마트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에 다닌다. 그러나 문화센터에서는 노란차를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늘 보호자가 같이 다녀야 한다는 게 문제다. 데려다 주고 데려오고 준비물 챙기고 등등.


아이들의 이동이 심해서 그런지 그곳에서도 장기등록이 아닌 2개월에 한 번 인가 수강등록을 갱신하게 하였다. 금요일에 가야하니 부모들이 챙겨주지 못하는 시간에는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이들과 같이 오간다. 최근에 아이들을 재등록해야 하는데 자기가 시간이 안 되니 할머니,할아버지가 좀 챙겨달라는 며느리의 부탁이 있어 내가 동행하게 되었다. 그곳 등록대에는 아주 용모 단정한 여직원이 친절하게 안내를 하고 있었다. 친절이 도를 넘어 사람이 아니라 사물에다 대고 연신 존댓말을 일삼는 그녀의 말투가 거슬려 재등록은 집사람에게 맡겨두고 난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데 뭔가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지 집사람이 나를 불렀다. 작년에 항암 부작용으로 눈 수술까지 한 집사람이 돋보기로 눈을 돋구고 신청서 빈칸을 열심히 채우고 있다가 며느리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그리 갑자기 물으니 나도 얼른 생각이 나질 않아 전화기를 꺼내다가 좀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전화기에서 번호 찾는 것을 그만두고 등록대의 여직원에게 물었다.


“아가씨, 이거 재등록인데 그 컴퓨터에 처음 등록할 때의 필요한 기록이 다 들어 있을 텐데 확인하고 서명이 필요하면 그걸 프린트하여 사용하면 되지 재등록 시에도 처음 등록할 때처럼 모든 걸 또 손으로 다시 쓰라고 하려면 그 앞에 있는 컴퓨터는 뭘 하는 거며 거기 입력된 자료는 뭐에 쓰는 거요?” 내 말에 못이 박혔었는지 그녀는 얼른 말을 받았다. “죄송합니다. 미처 그 생각을 못했습니다.” 하더니 얼른 한 장을 프린트하여 내밀며 “보시고 수정사항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하였다. 어차피 재신청할 때 수강료도 내야하니 재신청서 또다시 쓰고 뭐 해야 할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 쪽에서는 돈 낸 사람만 확인하고 수강증 발부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등록대 여직원에게 갑갑하여 좀 가시 돋친 말을 하기는 하였으나 난 짐작한다. 그게 그녀의 실수가 아니라 문화센터측의 매뉴얼이라는 것을. 그녀의 융통성으로 시간 더 끌지 않고 그 자리에서의 갑갑함은 살아졌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런 필요 없는 매뉴얼을 만든 업체에 대한 답답함이 또 한 차례 지나갔다. 이건 답답함을 지나 좀 고로하다고 해야 하나? 모든 자료가 들어있는 컴퓨터를 앞에 놓고 그 자료들을 다시 손으로 쓰라고 하다니. 나를 상대한 그녀가 등록대를 지키고 있는 동안에는 그녀의 융통성이 지속되리라 짐작하지만 다른 직원이 그녀와 교대하였을 때는 그 갑갑한 매뉴얼이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하는 기우가 생겼다.


손주녀석들은 이번만 다니고 다른 걸 배우겠다고 했다. 큰 녀석은 미술학원에 작은 녀석은 태권도학원에....그렇게 친구 따라 노란 차타고 강남 가겠다고 하였다.


2017년 2월 22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