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이다. 내가 사는 곳의 날씨가 아침부처 잔뜩 찌푸리더니 아직 펴지지 않고 있다. 태극기를 걸며 문득 이게 세종대왕님의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한글날 기념식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이루어졌다. 그 분이야 늘 그곳에 웃는 모습으로 계셨지만 그게 그 분의 속마음이었을까? 온갖 미사여구로 한글과 그 분을 칭송하는 각종 연설문을 들으시며 웃음 뒤 그 분의 기분은 오늘 하늘을 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로 관광정보를 보다 우연히 마주한 어느 지방자치단체의 홈페이지에 우선 '옐로우 시티 (Yellow City) 땡땡‘라는 게, 이런 걸 뭐라고 불러야 하나? 별명이라고 해야 하나? 홈페이지 도입부에 씌어있다. "노란색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자연친화적 도시"라는 의미라 한다. 또한 옐로우는 ’Best, Center, Renaissance, Wealth‘를 의미한다고 영어단어로 적어 놓았다.(http://www.jangseong.go.kr/home/www/healing/healing_07/healing_07_08참조). 군민들이 잘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 보다는 영어표기의 멋을 강조한 것 같았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왜냐하면 그곳의 관광정보에는 ’놀GO, 보GO, 먹GO, 자GO, 사GO, 나누GO‘ 라는 이름으로 정보를 나누어 놓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전을 찾아도 Yellow는 노랗다는 의미 외에는 모두 안 좋은 표현들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Yellow의 구어적 속어도 있다. 이걸 ’있다GO요‘라 알려 주어야 하나?
내가 사는 도시의 홈페이지의 전면 중앙에는 'ALL WAYS 땡땡' 이라는 영어 글귀가 놓여있다. 한참을 뒤져 그 의미를 보니 '모든 길은 땡땡으로 통한다'라 되어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화려한 설명에는 역시나 First Ever, Brand Identity, Global, Open, Convergence, Dynamic과 같은 영어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다. 몇 번을 읽어야 이 단어들과 그 설명을 이해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냥 화려한 수식어들만 나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http://www.incheon.go.kr/posts/1465/13200참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꽤나 부러웠나보다. 이걸 읽으면 듣는 사람은 ‘모든 길은 땡땡으로 통한다’가 아니라 ‘늘, 항상 땡땡‘이 더 가깝게 들리지 않을까? 좀 심하게 표현하면 억지로 꿰맞추었다는 생각이 든다. 행정적 표현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방송은 한 발 더 나아가는 것 같다. 되지도 않는 말에 GO를 섞어 쓰는 것은 물론이요 ‘땡땡에 가다’ 에는 에를 한자 愛로 표기하여 한글과 그 본 뜻을을 망가트리고 있다. 재미로 한두 번 하는 게 아니다. ‘사실’이라는 말도 요새는 방송까지 모두 나서서 ‘팩트’라 쓴다. 우리 한글에 F를 표기하는 모음은 없다. 그런데도 사실이라고 하면 될 일을 굳이 팩트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조하려고? 다들 멋져 보이려고? 적어도 방송이나 신문은 사실을 사실로 표기하여야 하는 거 아닌가? 팩트도 영어라고 서양인에게 말을 하면 어찌 이해할까? Fact가 아니라 그 뜻이 다른 Pact로 말로 알아들을 것이다. 국어를 사용한다면 사실은 팩트가 아니라 사실이어야 한다. Fact는 외국어일뿐 외래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방송 오락프로그램을 보면 더욱 우스꽝스럽다. 여기저기서 ‘리스펙트’가 수시로 나온다. 우리말 뒤에 ler을 붙여 이상한 명사를 만든다. 낚시꾼을 ‘낚시ler’, 등산객은 '등산ler'하는 식이다. 도대체 이건 어느 나라 말인가? 아무리 외래어 없이는 국어의 표현이 안 되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이런 식 표현은 이 방송 저 방송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도 ‘작가’라는 사람들이 대본을 쓰고 자막을 쓰고 있다. 난 그들이 작가의 자존심은 어디다 두고 어디서 이런 표현들을 얻어다 쓰는지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또한 예전에 남의 프로그램을 베끼던 행위가 살아지는가 싶었는데 이제는 말도 되지 않는 표현과 표기를 베끼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방송심의위원회라는 기구는 왜 존재하며 그 많은 한글학자들은 어디서 무얼 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내년에는 한글날 기념식에 ‘한글데이 셀레브레이션’이라는 간판이 붙을 것 같은 기우가 앞선다.
아직 하늘이 회색이다. 세종대왕님 가슴만 회색이 아니라 이제는 한글이라는 글 자체가 회색이 되어가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잘 쓰고 있을까? 우리의 한글 망가트림이 그들에게는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