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를 남기게 한 한밤의 더블 카운슬링
1월이 시작되던 주에 신년이 되었다고 조카형제가 외숙부와 한 잔 하자며 내가 사는 동네로 건너왔다. 큰조카가 올해 사위를 보니 그도 나와 같은 모습에서 별반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내 속알머리 대부분이 없어지고 주변머리만 있기는 하지만 흰머리는 없는지라 절반정도를 흰머리갈로 채우고 있는 조카형제의 머리만 봐서는 세월의 차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근처에 사는 아들까지 오라해서 몇 잔을 기울이고 자리를 파하려는데 큰조카가 자기 주량에 못 미쳐 무언가 좀 아쉬웠는지 길가에서 두리번거리더니 새로 생긴 순댓국집을 발견하고는 시간도 늦지 않았으니 입가심 하자고 하면서 앞장서 들어갔다. 그곳은 내가 2,3일에 한 번씩 지나다니는 길가에 있는데 신기하게도 난 그곳에 새로 생긴 순댓국집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근자에 들어 경기가 나빠져서 그런지 식당이나 주점들이 모여 있는 길거리에는 떠난 자리에 내부공사 하는 가게들이 많아졌다. 아마도 그 곳에 내부공사를 하는 것은 보았을 테지만 간판이 새로 걸렸는지 신경 쓰지 않았으니 그냥 무심코 지나다닌 모양이었다.
새로 생긴 곳이라 그런지 손님이 없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살펴보니 그저 조그마한 분식집 크기였는데 손님이라고는 이미 빈병이 3개나 올라있는 테이블에서 홀로 잔을 채우고 있는 한 젊은 친구뿐이었다. 우리가 주문한 술과 안주접시가 테이블에 오르는 순간 자작 잔을 채우고 있던 그 젊은 친구가 얼른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이든 사람이 아들들을 데리고 한 잔 하는 모양이라 생각하였는지 그의 첫 마디는 “아버지가 사귀던 여자하고 결혼을 반대하여 헤어졌어요.”였다. 아직 취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서 혼자 세 병째를 비우고 있는 것인지 그러나 그의 첫 마디가 참 당황스러웠다.
그의 나이가 내 아들과 10여년 차이가 났다. 작년에 결혼 하려고 하였는데 그래서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그 중 중요한 것은 아버지로서 아들이 며느릿감을 데려왔을 때 결혼에 대하여 무슨 말을 했냐는 것이었다. 난 아무 말 안 하고 그저 누구나 다 하는 의례적인 호구조사만 하고 상견례 날자와 언제 결혼식 할 건지 좋은 날 둘이 알아서 정해 알려달라고 했다고 했다. 그 친구는 그렇게 아무 말 안 했냐고 되물었다. “내가 아들의 인생을 살아 줄 것도 아니고 아들의 인생은 아들의 것이며 아들이 자기가 일생을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을 골라서 데려왔는데 거기에 따르는 책임은 아들의 몫이 아니겠나? 이미 살아 온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짧은 애비가 아들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으니까.” 라고 답하여 주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왜 반대를 하시는 거야” 하고는 다시 한 잔을 따라 마셨다.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결혼에 대하여 그리 말을 꺼낸 그 친구가 좀 안쓰러워보였으나 내가 무슨 말을 해 줄 수가 있었을까? 자신이 해결해야할 인생의 무게인 것을.
그 친구의 말수가 줄어들자 우리 테이블에 상차림을 해 준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그녀도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다. 손님은 그 친구와 우리뿐이었고 손님상차람 담당은 그녀 혼자뿐이었다. “나쁜 자식 외아들로 키워 장가보내니까 에미는 모르고 처가만 알아요.” 그녀의 첫 마디였다. 난 잠시 고민에 빠졌다. 우스갯소리로 떠도는 ‘아줌마의 착각’ 시리즈 중에 ‘결혼한 아들을 아직도 자기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한 구절이 있다. 웃자고 만든 소리기는 한데 이게 그냥 웃음이 아니라 쓴웃음으로 다가오는 아줌마들도 있다는 게 문제가 된다. ‘마누라가 좋으면 처갓집 말뚝에다가도 절을 한다.’는 옛말이 있으니 요즈음 떠도는 그 우스갯소리가 근본 없이 흘러 다니는, 무턱대고 지어진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딸이 둘이면 부모는(여행다니다) 비행기 안에서 죽고 아들이 둘이면 길거리에서 죽는다.’라는 말도 있다. 모두가 웃자고 지어냈다고는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반영된 소리일 테니 그 소리가 우스갯소리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딸도 그렇지만 아들은 ‘장가(丈家)간다’ 혹은 ‘장가보낸다’라고 한다. 한자의 의미를 보자면 장가는 처가이니 즉 처가로 아들을 보내는 것이 된다. 사위나 며느리를 맏는 집에서는 ‘사위, 며느리를 들인다’라고 표현한다. 내 집으로 오게 한다는 것이다. 다 일맥상통해지는 말들이다. 장가 간지 오래되기는 하였지만 아들과 조카와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에서 내가 그 아주머니에게 무슨 말로 응대를 하여야 했을까? 그 우스갯소리들로 응대를 할 수 없으니 그저 “갓 결혼했으니 그럴 테지 결혼생활 익숙해지면 엄마 많이 위해 드릴 겁니다. 아들에게 시간을 주세요”하고는 좀 남은 술병과 안주를 놔둔 채로 그곳을 나왔다. 조카와 아들을 돌려보내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며 외아들에게 얼마나 실망하고 속상했으면 생면부지의 남자손님에게 그리 말을 걸었을까하는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그들에게는 술집에서 처음 잠시잠깐 만난 내 얼굴이 무슨 인생카운슬러처럼 느껴졌을까? 영화를 먼저 보고 아직 책은 읽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카운슬링을 위하여 이 달엔 몇 년 전 베스트 셸러였던 ‘꾸뻬씨의 행복여행’이라는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9년 1월 13일 하늘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