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마지막 밤엔
“어느새 11월”. 매해 이맘때가 되면 꼭 한 번씩은 내뱉는 말이다. 12월이 되어도 같은 말을 하겠지만 11월 첫날에 이런 말을 하게 만든 건 한 사람의 애절한 노래가 떨어지는 낙엽위에 불씨를 당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특히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은, 말은 하지 않아도 늘 바라보는 달력이 그저 한 두어 달 남으면 세월에 대한 한탄처럼 ‘올해도 다 갔구나’마음속 혼잣말을 하곤 하니까.
불씨를 당긴 그것은 1982년에 ‘이용’이라는 가수가 발표한 원명이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제목은 제쳐두고 ‘시월의 마지막 밤’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아마도 노래의 공식제목보다는 자연적으로 탄생한 이 부제가 사람들의 마음을 더 끈 것일 수도 있겠다.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시월의 마지막 밤’이 정식 노래의 곡명으로 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 또한 ‘잊혀진 계절’보다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 더 마음에 든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가을엔 이유를 알 수 없이 좀 울적해 진다고 한다. 아울러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쓸쓸함 마저 느끼게 하는 게 가을이라면 10월은 그 가을의 중심에 있고 특히 마지막 밤은 우울함이나 쓸쓸함에 더하여 애절함까지 심기에 적절한 요소이다. 따라서 ‘10월의 마지막 밤’이라는 한 줄 가사는 원 곡명을 잊게 만드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셈이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이용이는 10월의 마지막 날에 하루를 벌어 1년을 먹고산다”는 말을 한다. 그만큼 10월이 오면 그는 가장 바쁜 사람이 되고 이 노래는 세월이 가면 갈수록 10월엔 모든 라디오나 TV에서 당연히 방송되어야 하는 10월의 캐럴이 되었다. 기록을 찾아보니 가사를 쓴 사람이 9월의 마지막 밤에 사랑을 잃어 처음 가사는 ‘9월의 마지막 밤’이라 썼다고 하는데 9월에 발매하기로 한 앨범작업이 늦어져 10월로 접어들자 9월을 10월로 고쳤다고 한다. 가사 내용으로 볼 때 9월 보다는 10월을 택한 것이 사람들의 호응도나 상업적인 면에서도 훨씬 이득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들의 농담대로 이용이는 올해 10월의 마지막 날에도 1년치를 벌었을까? 저작권료라는 게 있기는 하지만 모든 공연이 막혀있는 이 코로나시기에 다른 상공인들처럼 그도 공연생활이 활성화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수는 그 스스로가 사업체이고 공연장들이 곧 판로이며 유통망이기 때문이다. 한 친구가 친구들의 단톡방에 매년 10월의 마지막이 되면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카톡으로 여기저기서 전해오던 ‘10월의 마지막 밤’ 노래나 동영상이 올해는 한 건도 오지 않았다는 좀 섭섭한 마음을 비쳤다. 그러고 보니 나도 코로나사태 이후 그걸 받아보거나 내가 보내준 기억이 없다. 그만큼 코로나로 인하여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여유나 정서를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니 모르긴 몰라도 이용인들 예년 같은 좋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의 은행나무 가로수 이파리들이 이제 모두 노란색으로 변했다. 며칠 전 까지 녹색으로 남아 있어 아직 때가 안 되었나 생각하였는데 눈을 두지 않은 그 몇 날 사이에 변한 것이다. 계절을 뒤집는 세월의 힘은 그런가 보다. 그래도 아직은 큰 바람 없었으니 한동안은 그 모습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은 바람이 불면 흡사 봄에 벚꽃 급하게 떨어지듯 그렇게 바람에 날려간다. 이 가을 코로나도 은행잎처럼 그리 쉽게 바람에 날려 가면 얼마나 좋을까? 바람에 흔들리며 거리에 뒹구는 은행잎을 보면 10월 마지막 밤에 떠나간 애인처럼 가버리는 세월에 변명도 없이 쓸쓸한 표정을 지어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런 변명 없어도 좋고 쓸쓸한 표정 안 지어도 좋고 뜻 모를 이야기 남길 필요 없이 다시 안 돌아와도 좋으니 11월 마지막 밤엔 코로나가 떠나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야무진 꿈을 꾸어본다.
2021년 11월 1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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