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과 액자
가끔 TV를 보면 추억 속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이든 사람들이 종종 앨범을 꺼내 그 속에 간직해둔 옛 사진을 보여주곤 한다. 디지털이라는 게 생기기 전에는 모두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고 그걸 인화해서 간직해야 했으니 어느 집이나 앨범 몇 개씩 없는 집이 없었다. 요즈음처럼 팬시점에서 파는 작고 예쁘장한 앨범이 아니라 이런 구식 앨범은 크고 무겁기까지 해서 이사 다닐 때도 불편한 짐이 되기도 한다. 아마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대부분의 사진을 휴대전화나 컴퓨터에 저장하니 앨범하면 사진을 간직하는 것이 아닌 가수들의 노래집 CD, 그 앨범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내 집에도 그런 구식 앨범이 몇 개씩이나 있다. 방송 출연할 일 없으니 꺼내 볼 이유도 없다. 나이 든 사람들이 모두 그렇겠지만 학교를 다니고 결혼을 하고 남매를 기르는 동안의 모든 사진은 인화를 해서 간직해야 했으니 그간 사진의 양도 많지만 그 사진들을 보관할 앨범의 수도 늘어갔다. 예전 책꽂이 하단에 보면 보통 책 높이 보다 더 높고 넓은 칸이 있다. 이건 그런 앨범을 위한 자리라 할 수 있겠다. 내 책상 옆 책꽂이 하단에도 그런 칸이 있어 때로는 추억으로 때로는 흉물처럼 보이기도 하는 앨범들이 꽂혀있다. 세상 떠날 때쯤 되면 들추어 볼까 그저 버릴 수 없으니 간직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모든 사진을 꺼내서 스캔하여 컴퓨터에 간직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앞으로 살날만큼 스캔을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생각을 접었다.
자식들을 결혼 시키고 손주들이 생기니 앨범을 열어볼 일이 생겼었다. 할머니 할아비의 젊은 시절이나 아비 어미의 어린 시절이 궁금한 손주들이 가끔 앨범을 보여 달라고 했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이들은 이제 자신들의 스마트폰으로 자신들을 위한 사진을 찍을 뿐 그런 구식 앨범엔 더 이상 관심이 없다. 휴대전화에 카메라가 달려 나오고 필름 카메라 대신에 디지털 카메라가 나온 이후에는 특별한 경우 아니면 사진을 인화할 이유가 없었으니 내가 자식들을 결혼 시킬 즈음에서 부터의 대부분의 사진들은 컴퓨터 폴더에 파일로 들어있다. 그러니 그 때쯤부터 앨범을 더 만들 일은 없어졌지만.
요즈음은 모임이나 행사에서 찍힌 사진들도 휴대폰을 통하여 혹은 이메일 같은 전자매체를 통하여 본인들에게 전달되니 예전처럼 인화해서 사진 값이 얼마다 하고 민망한 요구를 할 필요도 없으니 좋은 세상이기는 하지만 액자까지 만들어 전달되는 특정한 사진들은 앨범만큼이나 눈총을 받을 때가 있다. 내 집 벽에 걸려있는 크고 작은 액자는 모두 자식들 결혼사진과 손주들 백일 및 돌 사진들이다. 행사를 기획한 업체나 사진관에서 몇몇 특정 사진을 골라 액자에 넣어 제공해 준 것인데 시중에서 파는 사진을 바꾸게끔 되어 있는 액자와는 달리 거의 모두 견고하게 고정된 틀이거나 도자기 같은 것에 인쇄된 것들이다. 그러니 이 액자들은 세월의 흐름 따라 사진을 바꾸고 싶어도 그리 할 수가 없다. 따라서 내 집 벽은 자동적으로 시간이 멈추어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액자에서 사진을 바꾼다 해도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디지털 사진의 매력은 집에서 프린트를 할 수 있고 또 자신이 소유한 액자의 크기에 맞추어 사진의 크기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그러나 업체에서 제공한 액자의 사진들은 그 크기 때문에 비록 떼어낸다 하더라도 보관이 용이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집에서 종이에 프린트한 사진이야 마음에 안 들면 간단히 폐기 할 수도 있지만 고급 인화지에 인화된 사진들이야 보관이 어렵다 한들 어찌 버릴 수 있을까. 어떤 분은 북한의 김정은이는 신문에 실린 사진도 폐기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것과 유사한 것 아니냐 할지 모르겠지만 종이에 프린트했던 자식들과 손주들의 사진도 없애려면 망설여지는 것이 아비로써 혹은 할아비로써의 마음이 아닐까.
그 앨범과 액자를 매일 바라보며 매일 같은 생각을 하지만 아직 해결 방법은 찾지 못하고 있다.
2022년 4월 9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d2EPSJ_-prw 링크
Yiruma, (이루마) - Stay in Memory (기억에 머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