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국의 열기 속에서
국제공항 치고는 많이 작다고 느끼면서 입국 심사대를 나왔다. 심야시간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시간대에 도착한 여러 비행기들은 모두 한국에서 출발한 국적기였고 들리는 사람 소리 또한 모두 한국말이었다. 그 시간에 입국심사를 받는 사람도 역시 거의 한국 사람이었다. 국내에서 퍼지고 있는 ‘인천광역시 다낭구(區)’ 혹은 ‘경기도 다낭시’라는 신 행정구역이 공연한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현지 한국인 가이드가 기다린다는 공항 밖으로 나갔다. 정해진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시차를 두고 도착하는 다른 비행기를 타고 온 분들과 합류를 해야 한다고 하여 오랜 시간을 화단 시멘트 옹벽에 앉아 심야의 남국 열기를 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버스가 도착한 호텔은 해변이 잘 보이는, 드넓은 해수욕장 바로 길 건너에 있는 큰 호텔이었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는 내내 가이드는 호텔의 욕실에 대한 위험도와 바닥으로 물이 넘쳐 실내에 깔아놓은 카펫이 젖었을 때의 보상 문제에 대하여 과거의 예를 들어가며 과하다 할 정도로 설명을 이어갔다. 부상을 조심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과함이라 할 수 없겠지만 욕실의 물이 넘칠 경우 방 안의 카펫이 젖는 경우는 없을 것 같은데 그리 강조를 하고 있었다. 실제 사용해본 욕실에서 욕조를 드나드는 문제는 심각하다 할 정도로 위험도가 있었고 물이 넘치는 문제도 그리 보였다. 특히 나이든 사람들이 드나드는 데는 욕조의 높이나 욕실을 절반쯤 막아 놓은 투명유리벽 그리고 욕실 바닥의 미끄러움이 매우 위험하게 느껴져 나와 집사람은 특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디자인에서 오는 결함인 듯싶었다. 다행이 내 일행에서 곤란을 겪은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호텔에 도착하자 버스에 타고 있던 우리 일행 전부는 가이드에게 여권을 압수(?)당했다. 여러 나라를 여행 했지만, 호텔 같은 곳에서 여권을 확인하고 복사하고 당사자에게 돌려주는 곳들은 있었으나 법으로 가이드나 호텔에서 여권을 강제 보관하는 나라는 경험하지 못한지라 의아하게 생각되었지만 사전에 그런 걸 조사하지 못하였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이 안 계시니 베트남이 처음인 나로서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가이드에게 여권을 넘겨주었다. 하지만 여행하는 내내 여권에 대한 의구심은 버릴 수 없었다. 다행이 모두 무사히 여권을 돌려받아 귀국하긴 하였지만 돌아오자마자 그 의구심을 해결하기 위하여 인터넷을 검색하여 보았다. 빚이 있는 가이드가 고객들의 여권을 술집에 잡히고 돈을 구하려고 모두 가지고 도망갔다가 붙잡혀 잃었던 여권을 다시 찾은 사연, 가이드가 여권을 분실하여 베트남 당국이 쓰레기 매립장에 벼려진 여권을 찾아 돌아올 수 있었다는 사연 등을 접할 수가 있었다. 누군가가 여권을 회수하는 이런 가이드의 행위가 베트남 법에 의하여 정당한 것인지를 외무부에 질의하였는데 외무부의 답변이 베트남에 그런 법은 없으며 여권은 본인이 꼭 휴대하여야 하고 필요하면 사본을 사용하며 가이드가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회신이 왔다고도 전했다. 그럼 우리의 가이드는 무엇을 위해 모두의 여권을 걷어 보관하였을까? 내가 이용한 여행사 본사에 문의한 결과 예전에는 호텔에서 여권을 맡기라고 하였는데 요새는 그렇지 않으나 개인적인 여권 분실을 강조하였다. 개인적으로 분실할 우려도 있지만 단체로 분실하면 어쩌나?
단체 여행에는, 특히 동남아 여행에는, 여행사에서 소개한 일정과 결제액 외에 옵션이라는 게 따라 다닌다. 여행객 각자가 원하는 대로 옵션을 택하고 그에 해당되는 금액을 추가로 지불하면 되는 것이다. 강제성은 전혀 없다고 광고한다. 옵션을 하지 않을 사람들은 그 시간에 각자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면 된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그건 광고일 뿐 그대로 지켜지는 여행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의 가이드는 아침을 먹자마자 모두를 버스에 태워 처음 정차한 곳이 어느 마사지샵 앞이었다. 한 시간 동안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일정이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었지만 마사지라는 것이 여기 저기 돌아본 후에 피곤을 풀기 위하여 받는 것이지 첫날 호텔에서 잠자고 아침을 먹은 것뿐인데 받으라 하니 사람들은 모두 의아스럽게 웅성거렸다. 그것도 기본적인 것이 아닌 옵션으로 돈을 더 내고 받는 긴 시간의 마사지였다.
관광을 다녀야 할 시간에 우리가 탄 버스는 아침 마사지샵 앞에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가이드는 긴 시간동안 자신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프로그램을 소화하면서 옵션을 다 넣어 모두가 좋아할 현지 프로그램을 자신이 짜겠노라며 그 프로그램을 소화하기 위해서 1인당 $200을 요구하였다. 옵션을 할 사람 안 할 사람을 가리는 것이 아니었다. 할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경비를 지불해야겠지만 안 할 사람은 그럴 필요가 없는 게 본사에서의 상품 광고였다. 이건 옵션이 아니라 완전 강요였다. 차 안의 일행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될까 생각하여 혹은 버스가 움직이지를 않으니 침묵 속에 모두 그 돈을 걷어 가이드에게 주었다. 그제서야 가이드는 얼굴에 화색을 띠며 우선 90분 마사지부터 받으라 하였다. 고객을 흠뻑 생각하는 양 마사지 팁은 $5이상 주지 말라는 강조와 함께.
이 여행을 다녀와 난 ‘강요된 견강교실’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또 다른 옵션에 대하여. 조그마한 방에 일행을 모두 가두어 놓고 의학적으로 괜찮은 제품인지 위생적으로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고가의 의약품 구매를 장시간에 걸쳐 독려하였으며 유명하다는 위즐커피집에도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어쩌랴. 여권도 돌아오는 비행기표도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을. 그는 고객들의 다양한 쇼핑을 위하여 각자의 시간으로 가까운 혹은 이미 다녀온 사람들이 추천하는 쇼핑센터에 갈 수 있는 시간조차 배려하지 않았다.
베트남은 사회주의국가다. 겉으로는 매우 자유롭지만 느끼지 못하는 사회적 통제가 뒤따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통제가 아니라 가이드에 의하여 강제되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이런 패키지여행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이용하였던 여행사를 다시 이용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해도 어지간해야지. 거리에서 보이는 노란색조차 싫어지지는 않기를 바라면서.
2023년 11월 20일
하늘빛
음악 : https://www.youtube.com/watch?v=4r-TMRXQacU 링크
Sinnò Me Moro (Fingerstyle gui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