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를 생각하며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라는 가사를 담고 있는 오래된 노래가 있다. 여기에 짚어지는 ‘북풍(北風)’이라는 바람의 기상학적 풀이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부는 바람‘을 말한다. 또 ’~~남촌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데나~~‘라는 노래 가사도 있다. 남풍(南風)은 북풍과는 반대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부는 바람을 말한다. 문학적으로나 구설적 표현에는 다른 이름들도 있다고 하는데 그와 관계없이 일반인들이 쉽게 이야기 하고 알아듣는 기상학적 용어는 간단하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불면 ’북풍‘, 그 반대면 ’남풍‘, 서쪽에서 동쪽으로 불면 ’서풍‘, 그 반대면 ’동풍‘으로 어디서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시작점의 방향을 표기하면 된다. 화살표로 말하면 북풍은 북→남, 남풍은 남→북 등으로 그려지겠다. 학문적 용어로 기상학적이라고는 하지만 단순 방향성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그 나이까지 줄곧 들어온 단어가 있다. 특히 한국전쟁이 벌어진 6.25가 되면 더욱 강조되곤 하는 단어이면서도 근래에 들어서 그 표현을 가지고, 자신의 자존감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맞느니 안 맞느니 왈가왈부를 하시는 분들이 생겨나도록 애매하게 만들어진 단어이다. ‘남침(南侵)’이 그것이다. 국어사전은 ‘남침(南侵)은 북쪽에서 남쪽을 침범 (북→남), 북침(北侵)은 남쪽에서 북쪽 (남→북)을 침범‘한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한국전쟁은 남침에 의한 것이라고 배웠고 그게 역사적 사실이다. 북한의 정권이나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북침이라 주장할 이 없으며 남침을 부정할리 없다. 그런데 왜 남침과 북침이 설왕설래 되었을까?
남풍(南風), 북풍(北風), 남침(南侵), 북침(北侵)은 모두 한자 조합형 단어이다. 한자의 조합은 그 단어를 만들 당시에 ‘이러이러하니 이 단어는 이런 뜻이다’라고 정의하면 평생 그 뜻이 된다. 남풍과 북풍은 6.25이전에 이미 기상학적으로는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바람의 진행 방향으로 정의되어 기 사용되던 단어이고 남침은 전쟁이 발발하고 난 후 그 행위를 일으킨 집단을 가리키고자 사용되어 지금까지 이어진 단어이다. 이 한자의 조합이 바람의 방향성을 가지고 정해진 북풍처럼 침범의 방향성으로 ‘북쪽이(에서) 남쪽을(으로) 침범하였으니 북침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면 그런 것 같고 ‘남쪽이 북쪽으로부터 침범을 당하였으니 남침이라고 정의한 것이다’라고 한다면 또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후자 쪽을 택하여 남침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자의 조합이라는 게 기존에 정해진 단어 없이 새로이 조합해야 한다면 말 그대로 해석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남풍이나 북풍처럼 바람에 붙여진 단순한 방향성으로만 생각하면 나도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또한 선거 때만 되면 남침이라는 역사적 용어와 상관없이 정치적 용도로 북풍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시던 분들 때문에 많은 국민들에게 혼돈이 있었다고도 생각된다. 그러나 이 남침이라는 단어는 방향성이나 기상학성을 떠나 역사적으로 만들어져 이미 굳어진 단어이다. 따라서 모든 공식적인 기록에는 물론이고 국어사전에도 ‘남침’으로 명기되어 있으며 각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에 와서 왈가왈부한다고 해서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없으며 또 달라지게 해서도 안 되는 단어라 생각된다.
이제 6월도 모두 지나갔다. 올해의 6.25에는 몇 해 동안 등장하던 남침, 북침에 대한 시비가 없었는지 아무런 뉴스를 접하지 못하였다. 단지 지나온 시비를 생각하면서 내가 아쉬웠던 것은 처음 이 단어를 만들 때 애매하게 방향성으로 해석될 수 있는 단순 한자조합을 떠나 다른 한자를 추가하거나 혹은 조금은 긴 표현이라도 ‘북한의 남침’ 등 듣고 배우는 국민들이 좀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을 만들어 보급하였다면 오늘날 자기만의 해석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없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바뀔 수 없는 역사적 사실에 붙여지고 가르치고 기억하는, 기 굳어진 단어를 가지고, 알고 있는 역사를 반대로 생각하지 않는 한,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분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봐야 국민들에게 혼돈만 줄 뿐이다. 기 배운 대로, 평생을 들어온 대로, 사전에 기술된 대로, ‘남침’이라고 다시 외워본다.
2025년 6월 29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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