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보종찰인 양산통도사에서 날마다 장엄한 소리를 내던 통도사 동종(보물 11호)이 마침내 현역에서 은퇴하게 됐다. 조선 숙종 12년인 1686년, 범종 장인인 사인 비구승에 의해 제작돼 햇수로 321년을 묵묵히 제 사명을 다했던 동종이 올 연말 제 모습대로 다시 태어날 복제품에 자리를 옮겨주고 편히 쉬게 된 것이다.
키가 1.59m, 가슴둘레가 1m인 이 종은 현존하는 동종 가운데 유일하게 몸통에 8괘 문양이 새겨진 데다 보살입상과 꽃무늬 등이 균형적으로 어우러져 조형미가 빼어나다는 찬사을 받아왔었다.
통도사 경내 범종각에 들어앉아 통도사의 새벽을 열고 저녁예불 전이나 각종 의식 때마다 그윽한 소리를 울리다 지난 2000년 보물로 지정됐다.
이제는 쉴 때도 되었으리
그런데 이 동종의 고리부분인 용뉴(鐘紐)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고 한다. 하긴 321년의 세월이 좀 긴 세월인가, 흐른 세월만큼 피로가 쌓이고 쌓였으리라. 때마침 통도사와 문화재청은 지난달 28일 이 종을 올해 말께 통도사성보박물관 실내전시실로 옮겨 영구 보존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말인즉슨 갑작스러운 화재 등 재난으로 인한 동종 훼손을 막기 위함이라지만 안 그래도 이제는 쉴 때도 되었겠다 싶다.
지난해 4월 대형산불 발생으로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에 있던 보물 제479호 동종이 소실되는 등 동종에 대한 보존책이 제기되어 왔던 것도 통도사 동종을 은퇴시킨 한 요인일 것이다.
문화재청은 목조사찰에 불이 나면 동종의 경우 통상 2톤이 넘는 무게 때문에 신속히 옮길 수 없는 점을 감안해 통도사 동종과 전북 부안군 내소사 고려동종(보물 제277호) 등 2개에 대해 시범적으로 보존대책을 수립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통도사는 문화재청의 지원금 7천만원으로 빠른 시일 내 복제품을 제작해 늦어도 올해 말까지는 복제품 동종을 진품 동종과 임무교대 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제 머잖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통도사 동종. 그래도 성보박물관의 전시실에서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할 터이지만, 이 범종이 범종각에 턱하니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양이면 지금이라도 한번 찾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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