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프로인가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러하듯이 나도 TV에서 가장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뉴스와 스포츠관련 프로그램이다. 특히 9시 뉴스가 끝나고 별도로 그날의 국내외 주요 스포츠를 요약하여 소개하는 스포츠 뉴스는 짜증나는 소식으로 가득한 9시 뉴스보다 훨씬 큰 비중으로 다가온다. 우선 보여주는 화면이 모두 시원하고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늘 하든대로 30일 밤에도 MBC 스포츠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견 아나운서의 억양이나 발음 및 진행이 평소와는 매우 다르게 느껴졌다. 꼬부라진 발음, 앞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를 잇는 진행, 너무 오버한다 싶은 표현 등등. 늘 보고 들어왔던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어젯밤의 평소와 다른 진행을 보며 요새 많은 아나운서들이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일반 연예인 흉내를 내고 있는데 저 친구도 그 흉내를 내고 있는게 아닌가, 방송 참 이상하게 변해 가는구나 생각하였다. 그런데 오늘아침 신문을 펼쳤더니 그 아나운서가 술에 취한 채 방송을 하였다고 한다. 방송인들의 말로 프라임타임이라 일컫는 시간에 비중 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견 아나운서가 술에 취한 채로 방송을 하리라고 누가 상상 하였겠는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것을 알아차리고 방송국에 항의를 하였다고 한다. 이 나이에도 아직 나는 순진한 것인가. 그저 “저 친구 오늘은 왜 저래. 아나운서가 연예인 흉내 내는 거야?” 뭐 이런 정도로만 보아 주었으니.
아나운서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방송의 꽃이라 칭한다. 또한 시청자들은 방송국에서 가장 지적인 사람은 아나운서라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 어느 프로그램에서건 모든 방송에는 진행자가 있어야 하고 그들은 늘 그 중심에 서 있다. 물론 일반 연예인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많이 있다. 그러나 모든 방송국들에서 중요하고 비중 있는 프로그램들은 늘 아나운서들의 몫이다. 따라서 그들의 말이 아니라도 아나운서들은 방송의 꽃이며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늘 방송을 통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노출된다. 그러므로 모든 아나운서들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절제된 행동으로 시청자들이 그리는 아나운서 본연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방송에 나오는 순간부터 공인중의 공인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아나운서들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사생활이 있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실수라는 것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은 비록 사생활이라 하더라도 지신이 뉴스거리가 되어서는 아니 되며 사전 준비 없는 미숙한 진행으로 시청자들을 짜증나게 하여서도 아니 된다. 그런데 흡사 음주운전 하듯 술에 취해서 카메라 앞에 섰다니 그는 시청자들을 어찌 생각 하여 그런 행동을 하였을까. 얼마 전에는 모 여자 아나운서가 태안 기름유출의 아픈 사연을 전하면서 말미에 피식 웃었다가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고 뉴스에서 하차한 경우도 있다. 이는 단순 실수였다고 이해하더라도 술이라는 것은 의도적으로 마시는 것 아닌가. 참 대단한 아나운서에 대단한 방송국이다.
비단 이번 사태가 아니라 하더라도 요즈음의 방송을 보면 많은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를 의식하고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출연자들이 자기들끼리 놀고 즐기자고 만드는 것인지 모를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으며 출연 전에 사전 교육이 되는지 아니면 제작 전 상호 검토가 이루어지는지도 모를 프로그램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모든 프로그램에는 대본이라는 것이 있고 진행자 및 출연자들은 그 대본을 기본으로 하여 미리 연습도 하고 제작회의도 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간다. 개중에 경험이 풍부하고 노련한 출연자들은 대본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애드립이라는 것을 하여 조미료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나 일반 연예인 MC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모두 그 특성에 맞게 만들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모든 시청자들이 방송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스나 스포츠 중계 혹은 특집방송 등을 제외하면 요즈음 방송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은 사전에 녹화되고 편집되어 방송에 내보내진다. 따라서 제작이 잘못된 점들은 방송 전에 충분히 검토되고 수정될 수 있다. 그럼에도 무수한 프로그램들에서 잘못이 나타난다.
오락프로그램들에서는 출연자들이 반말, 속어, 비어가 난무하고 상대방 호칭에 대한 것도 시청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출연자 당사자들 간의 호칭이 사용된다. 000선생님, 000선배님...나이도 얼마 되니 않은 그들이 시청자들의 선생님이 되고 선배님이 되는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 하단에 마구잡이로 들어가는 자막들. 자막이 아니라도 시청자들은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고 어떤 말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 해당 장애인을 위한 거라면 제대로 된 자막처리를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요약한 내용을 내 보내려면 맞춤법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맞춤법에 대한 책임은 전혀 없는지 늘 틀리는 같은 단어들이 그 프로의 수준을 말해준다.
공개방송이라고 주부 몇 사람 앞에 놓고 녹음으로 틀어 놓는 같은 웃음소리와 같은 감탄사들. 웃을 일도 아니고 감탄할만한 일도 아닌 장면에 마구잡이로 매번 녹음된 웃음과 감탄사를 내보낸다. 웃음과 감탄은 자연스럽고 자발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본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리포터. 아버지 가방에 들어간다는 식으로 대본을 읽으며 “한국”인지 “항국”인지 “전기”인지 “정기”인지 ㄴ과 ㅇ을 제대로 구분 못하고 “의”와 “으”를 가리지 못하는 리포터들이 방송을 진행하고 듣는 사람에게 대사 전달도 제대로 못하는 탈렌트들과 노래를 못하여 생방송에도 녹음을 틀어놓고 립싱크를 하는 가수들이 얼굴이 반반하다는 이유로 많은 프로에 겹치기로 출연한다.
방송의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진행하는 방송은 보통 사람들이 하는 사투리나 지나가는 인터뷰와는 다르다. 모두가 맡은 분야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자질과 실력을 갖추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철저한 훈련을 거친 후에 방송에 투입 되어야 한다. 물론 각 프로그램의 특성에 따라 그에 걸맞는 진행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장난하듯, 친구들과 놀듯, 연습하듯 마구잡이 언행이나 행동을 일삼아서는 않된다. 며칠 전 나훈아가 기자회견에서 “펜으로 사람을 죽인다” 하였다. 마찬가지로 방송의 사회적 영향이 지대하고 책임이 막중한 까닭이다.
이 무자년에 수준 이하 방송인들의 자질 향상과 프로그램의 내용이 충실해지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들은 프로니까.
2008년 1월 말일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