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종의 신앙적인 의미는 종소리를 듣는 순간만이라도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데 있다. 따라서 종소리를 듣고 법문(法門)을 듣는 자는 오래도록 생사의 고해(苦海)를 넘어 불과(佛果)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범종은 불교적인 금속공예품 가운데 으뜸을 차지하는 특수한 종류이다. 여러 불교국가에서는 예로부터 크고 작은 종들이 숱하게 조성되어왔으며, 그 재료는 주로 구리를 사용하였다. 고대종(古代鐘)의 화학성분을 분석해보면, 대개 구리가 80 %에 주석이 13 % 정도의 조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종의 강도와 경도(硬度)의 최적 상태는 주석이 15 % 내외로 함유되었을 때이다.
한국의 범종은 학명(學名)으로까지 ‘한국종’이라고 불릴 만큼 독자적인 양식을 지니고 있다. 특히 신라종(新羅鐘)의 우수성은 국내외에서 널리 상찬되고 있을 만큼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존하는 한국 범종의 상당수는 일본으로 반출되어 그곳에서 국보로 지정된 것만 해도 20여 구를 헤아린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범종으로 밝혀진 것은 오대산(五臺山)의 상원사동종(上院寺銅鐘)이다. 그 명문(銘文)에 따르면, 통일신라 전기에 해당하는 725년(성덕왕 24)에 제작된 것으로 한국종의 전형적인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높이 167 cm의 이 범종은 원래 경북 안동(安東)의 문루(門樓)에 걸려 있다가 조선 초기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것이다.
또한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은 현존하는 고대의 종으로 최대의 것인데, 높이가 364 cm에 달한다. 명문에 구리 12만 근이 소요되었다고 명기되어 있는 큰 종으로서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부왕(父王) 성덕왕을 위하여 만든 것이며, 혜공왕(惠恭王) 때인 771년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그 밖에도 전북 남원(南原)의 실상사(實相寺)에서 출토되고, 동국대학 박물관에 소장된 파종(破鐘)이 있으며, 일본에 있는 신라종으로는 조성연대가 833년인 것(菁州蓮池寺鐘)과 904년 조성의 범종(松山村大寺鐘) 등 4구가 확인되고 있다.
한국종의 특징은 무엇보다 우아하고 안정된 외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며 그 소리도 매우 은은하고 맑다. 구체적인 예로는 첫째 종정부(鐘頂部)의 단두룡(單頭龍)과 원통(圓筒)을 들 수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범종양식이 쌍두룡(雙頭龍)임에 비해 한국의 경우는 한 마리의 용이 생동감 있는 자세로 허리를 구부리고 조각되어 있다. 이는 종을 매달기 위한 고리의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더욱 특이한 것은 대나무 형태의 원통이다. 이것은 신라종에서 확립된 독특한 양식으로서, 최근 학계에서는 신라 동해구(東海口)의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와 연관하여 신라의 국보였던 신적(神笛)의 형태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종 상하의 종견(鐘肩)과 종구(鐘口)에는 당초(唐草)무늬나 보상화(寶相華)무늬의 섬세한 무늬대[文樣帶]가 형성되어 있고, 종견의 무늬대에는 네 곳에 대칭으로 네모꼴의 유곽(乳廓)이 있으며, 유곽 안에는 9개씩 모두 36개의 유(乳)가 있다. 종신(鐘身)에는 종을 치기 위한 당좌(撞座)가 구획되어 있고 특히 비천상(飛天像)이 부조되어 있다. 이것은 신라종의 우수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한 요소이다.
이와 같은 신라의 범종양식이 고려시대로 내려오면 부분적으로 변화해 전체적인 형태에 담긴 긴장감이라든지 세련된 선은 오히려 둔화된 듯한 느낌을 준다. 세부적으로는 종견 위에 입화(立花)장식이 마련되며 종구가 넓어지는 경향을 띠고 있다. 고려시대의 범종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천흥사 동종(天興寺銅鐘)이 있으며, 이것은 1010년(현종 1)에 제작되었고, 고려시대의 종이 점차 작아지는 경향으로 보아 170 cm라는 이 종의 높이는 대종에 속하는 것이다. 신라종 양식을 충실히 따르려 하였으나 조각기법이 다소 이완된 느낌을 주는 이 종의 양식적 특징은 유곽 밑에 위패(位牌) 형식의 명문(銘文)을 넣은 위치를 설정한 점이다. 이는 고려시대 종의 시원적인 형식으로 꼽을 만한 것이다. 이 밖에 고려시대의 범종으로는 1058년의 청녕4년명 동종(淸寧四年銘銅鐘)과 1222년(고종 9)에 조성된 내소사 동종(來蘇寺銅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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