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누가 이 여인을

korman 2010. 5. 3. 19:06

 

  

 

 

 

 

 

누가 이 여인을

 

천안함 사건으로 국민들 모두가 무거운 마음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을 즈음 40대의 한 당찬 여자가 나라 전체를 덮고 있는 먹구름 한 켠을 밀어내고, 국민 각자에 따라 누구에게는 아주 조금 또 누구에게는 아주 시원하게 느껴졌겠지만, 파란 하늘이 내보이는 소식을 전해왔다. 세계 여성 산악인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4좌 완등!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한 여성에 의하여 다시 국제적 뉴스로 대두되는 순간이었다. 이 여성의 14좌 성공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히말라야의 설산에서 빛나는 만년설만큼이나 나라의 이름을 빛내는 게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성공을 축하하는 국민들의 마음과는 달리 그녀 자신의 가슴 한 켠에는 아직 시원히 풀리지 않은 응어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국내의 한 신문기자가 최초로 이의를 제기하였다는 “칸첸중가” 때문이다.

 

작년 연말쯤인가 소주 몇 잔으로 늦은 귀가에 뉴스를 보겠다고 소파에 몸을 누이고는 게슴츠레 바라보던 TV에 어떤 여자 산악인이라는 분이 외국 사람을 대동하고 기자회견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바라보다 잠이 든 기억이 있는데 그 후 그녀가 누구였는지 왜 무엇 때문에 기자회견을 하였는지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가 이 무식한 사람이 14좌의 마지막 봉우리를 오른 여인이 그때 그녀였음을 안 것은 TV에서 그녀의 등정을 생중계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부터였다. 멈춰질 것 같은 호흡을 간신히 가다듬으며 그녀가 몸을 가누기도 힘든 정상에서 들어 올린 태극기를 화면을 통하여 바라보며 참 대단한 여인이다 생각하였는데 또 한편 카메라 앵글 각도상 그녀 머리 쪽에 있는 날카로운 꼭짓점에 발을 올려놓지 않았다고 그 기자가 또다시 딴죽을 걸면 어찌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기자가 (그것도 세계 최초인가? 하여간 최초라는데) 문제 삼아 시비를 건 것은 그녀가 힘들게 올라 찍었다는 “칸첸중가” 정상에서의 사진이 불분명하여 실지로 그곳의 정상에 올랐는지 여부가 불명확하다는 것이었다. 정상정복의 인정은 정복자를 포함하여 사진 속에 나오는 주위의 풍경 분석과 셀파들의 증언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그녀의 칸첸중가 사진이 이를 뒷받침 하는데 미흡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칸첸중가에 올랐다는 것은 기자가 문제를 삼기 이전에 이미 국제산악연맹의 주요 회원이며 네팔관광성 산하기관인 네팔산악연맹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라는데 그 기자는 무엇 때문에 뒤늦게 문제를 들고 나왔을까.

 

세계의 모든 전문 산악인들이 히말라야에 오를 때는 그곳 셀파들의 도움을 받아 산에 오르고 사진을 찍는데 히말라야 고봉정상들에서의 사진은 그날의 기상 상황에 따라 몰라보게 달라진다고 한다. 외국의 어떤 산악인은 날씨 관계로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자 정상에 아들의 장난감을 묻어두고 내려왔는데 다음에 올라간 우리나라 허영호씨가 그것을 가지고 내려와 그의 주장을 입증하여 주었다고 한다. 그날 그녀가 오른 칸첸중가 정상의 날씨는 1분도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그녀와 같이 오른 셀파들이 정상임을 확인하고 그녀의 사진을 찍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그 산이 품고 있는 네팔 산악연맹에서 인정하였다고 한다. 그녀가 고봉 하나를 남겨두고 그녀와 같이 등반한 셀파를 대동하고 눈물로 기자회견을 한 것은 그 기자의 시비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셀파는 그 회견에서 그녀가 정상을 밟았음을 다시 중언하였다고 한다.

 

아무리 사진을 잘 찍고 셀파의 증언이 있고 네팔산악연맹의 인정이 있어도 정상에 오른 것을 도장을 꽝 찍어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공인확인서를 발부하는 기관은 없다고 한다. 다만 가장 역사가 오래된 “엘리자베스 홀리”라는 80이 넘은 할머니가 정상을 밟은 산악인과 인터뷰를 하고 그녀가 발간하는 기록지에 실리는 것이 그나마 인정을 받는 관례라 하는데 우리의 당찬 여장부도 “칸첸중가”에 대한 그녀와의 인터뷰를 남겨놓고 있다고 한다. 그래야만이 14좌에 대한 국제적 인정을 받는다는 것인데 이의를 제기한 우리나라의 기자나 그 할머니도 “칸첸중가”에 오른 경험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할머니의 인터뷰가 유색인종을 차별한다는 외국 산악인들의 소문에 관한 기사도 나와 있다. 그러나 비록 홀리라는 할머니가 그녀의 14좌 등정을 인정하든 아니든 간에 나를 포함하여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든 그녀의 용기와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나라를 빛낸 한 사람으로 기억할 것임에는 틀림이 없겠지만 이왕이면 그런 훌륭한 업적이 국내외적으로 아무런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라며 시비가 있다 하더라도 그녀가 발아래 14좌를 딛고 서 있는 기상으로 당당하게 대처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스페인의 한 여성 산악인도 그녀의 뒤를 이어 이제 봉우리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세계 최초가 되기 위하여 우리의 여장부 기록에 흠집을 내며 “칸첸중가”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스페인 여성의 시비인즉 자신도 우리의 그녀가 칸첸중가에 오를 때 그곳 아래에 있었는데 시야확보가 어려운 날씨 때문 칸첸중가에 오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지 못하였으며 나중에 자신이 올랐을 때 우리의 그녀가 잡았던 자일의 매인 위치가 정상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는 게 정복을 인정 안하는 이유라는데 이것도 참 납득하기 힘든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대하여 그 홀리라는 할머니는 자신이 우리나라 여성의 세계 최초 14좌 등정을 인정하고 안하고를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편에서 이에 이의를 제기하여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표기할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 14좌 마지막 봉우리에 등정하려는 스페인 여성의 주장도 함께 기록한다는 것이다.

 

스페인에서는 자신들의 안나푸르나 원정대원의 사고에 우리나라 그녀의 하산 길에 도움을 청하였으나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터무니없는 비난을 하고 있다. 자신들의 대원이 사고를 당하였는데 자신들도 구하지 못한 것을 정상을 정복하고 그저 본능적인 기력으로 하산하던 그녀가 무슨 여력이 있었을까. 그러나 그녀는 하산을 늦추면서 도우려 하였다. 내가 섭섭한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자기나라의 여성 산악인에게 세계최초의 영광을 돌리고자 이런 말도 안 되는 시비도 걸고 있는데 네팔 산악연맹에서도 인정한 사실을 가지고 또한 그녀에게 반론을 제기할 만한 확실한 증거자료를 가지고 있지도 않으면서 그녀의 14좌 마지막 등정을 앞두고 힘을 싫어주지는 못할망정 자국 내에서 시비를 만들었어야 했을까 하는 것이다. 비록 다른 나라에서 그런 시비가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힘이 되어 주었어야 했을 것을. 한국발 이 문제는 우리의 그녀와 인터뷰를 남겨놓고 있는 홀리 할머니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공연한 기우가 앞선다. 우리나라는 국가를 빛내는 인물을 영웅으로 만드는데 이렇게 인색한 것인지.

 

이글을 읽은 어떤 분이 나에게 빗나간 애국심이라고 비난하는 댓글을 단다 하더라도 난 그녀를 옹호하고 싶다. 그녀는 대한민국을 빛내는 또 한사람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2010년 5월 초이튿날

 

 

* 이 글을 쓴 다음날 (3일) 오은선씨는 홀리여사와 인터뷰를 하였고 이 자리에서 스페인 여성의 주장

   을 조목조목 반박 하였으며 홀리여사는 14좌 등정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논란이 있다는 표기는

   14좌 등정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고 스페인 쪽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만일

   스페인에서 이의를 철회한다면 언제든지 논란이 있다라는 표현은 삭제된다고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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