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날, 세월의 술타령
살다가 하루정도는
한적한 시골 버스정류장 그늘막 의자에 앉아
무료함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하루에 한두 번 읍내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자
촌로들은 이른 시각부터 정류소에 모여들고
진한 사투리로 온 동네 이야기를 건네면
나도 잠시 초여름 그 시간의 사투리 속에 묻혀
막걸리 사발에 섞인 촌로들의 세월 이야기를 듣게 되겠지.
살다가 하루정도는
도시의 야경이 바라보이는 산 어귀 한밤의 벤치에 앉아
새우깡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여럿친구가 같이하는 술잔은 도시의 불빛 아래에 접어두고
소주를 흘리지 않을 만큼의 밤빛에 기대어
어젯밤 TV드라마 주인공들이 그러하였듯이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또 살아갈 시간을 기다리며
투박한 그러나 애잔한 인생의 시나리오를 쓰게 되겠지.
살다가 하루 정도는
하얀 포말을 이루는 바닷가 갯바위에 앉아
파도가 부딪고 자갈이 구르는 갯가의 소리를 안주삼아
깡통맥주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시선의 끝에 드리워진 낚싯줄을 타고 흐르는 파도가
갯가로 밀려와 부서진 채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세월에 부딪치며 지나온 내 삶의 이야기에
남아있는 시간을 위한 꿈을 그리게 되겠지.
살다가 하루정도는
주위가 모두 잠든 한 밤중 집안 식탁에 앉아
유리판에 반사되는 촉수 낮은 식탁불빛을 안주삼아
몇 알 얼음 밑으로 스며든
진갈색 켄터키 위스키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나이를 모르고 늘 한결같이 힘차게 돌고 있는
아파트 앞동 옥상의 양철 바람개비를 응시하며
수수깡 바람개비를 들고 뛰놀던 어릴 적 생각을 하겠지.
아직도 돌고 있는
남은 세월의 바람개비를 생각하며
빨간 색종이를 잘라봐야겠다.
아직 기억하고 있으려나?
그런데 손잡이 수수깡은 어디서 구해야 하나?
그러다 또 한잔의 추억으로 돌리겠지.
2012년 5월 아흐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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