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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의 체코여인, 또다시 소주에 취하다

korman 2013. 10. 19. 18:10

 

 

 

밀라노의 체코여인, 또다시 소주에 취하다

 

매번 올 때마다 큰애의 집에서 머물곤 하던 그녀가 지난번 왔다간 이후 큰애 집에 어린아이가 둘이나 생기자 이번에는 근처 호텔에 머물겠다고 하였다. 내 집에 빈방이 있으니 그럼 내 집으로 오라고 하였으나 업무적으로도 호텔이 낫겠다고 하였다. 한국에 출장을 올 때마다 아무리 아버지 어머니 하고 내 집을 드나들었어도 큰 애네 집 보다는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라 하였더니 저녁에 도착하여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집으로 달려와서는 내가 급하게 보고 싶었던 게 아니고 불고기와 잡채와 소주가 그리 급하였다고 너스레를 떨며 그 볼 비비며 쪽 소리 나는 인사를 건네었다. 내가 출장을 다닐 때에도 가끔 경험을 하였고 이 여인이 올 때마다 양쪽 볼을 다 비비고도 다시 한쪽을 더 비비는 것 까지 해 오고는 있지만 늘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고 참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 이런 인사법이다.

 

지난번 왔을 때 “한국에서의 국은 밥을 다 먹을 때 까지 같이 먹는다”고 가르쳐 주었음에도 서양인이라 그런지, 그것을 자신들의 수프라 여겼는지, 소고기 무국을 먼저 한 그릇 다 비우고서야 소주잔을 들었다. 그리고 불고기와 잡채를 한입에 넣고는 눈을 감으며 집사람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린다. 2011년 12월에 왔었으니 채 2년도 안 돼 다시 왔지만 올 때마다 그녀의 불고기와 잡채와 구운 김에 대한 찬사는 그 강도를 더하였다. 그 음식들을 어찌 만드는 것인지 가르쳐 달라고 하여 집사람이 열심히 가르쳐주고 또 그 가르침과 재료를 번역하여 프린트까지 하여 주었지만 자기가 만드는 것은 역부족이었다며 늘 돌아가기가 무섭게 이 음식이 그리워진다고 하였다.

 

월요일 저녁에 온 그녀는 지방의 공장 몇 군데를 다니고 밀라노 시간 금요일 까지 돌아가야 한다고 하였다. 매번 그리 급하게 가지 말고 주말 하루쯤 쉬며 나와 같이 한국의 가을 고궁이나 박물관도 돌아보고 천천히 가라고 하였더니 자신도 그러고 싶지만 아이 때문에 안 된다고 하였다. 미혼모로 아직 초등학생인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는 그녀는 아이 때문에 매번 예정된 출장기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번 출장에는 옆집부부에게 부탁을 하고 왔지만 주말에는 그 부부의 주말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금요일 저녁까지는 아이에게 돌아가야 하므로 주말을 그리 여유롭게 한국에서 보낼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일이 있으면 대부분의 조부모가 아이를 맡아줄 수 있는 한국과 내 큰애의 환경이 부럽다고 하였다. 그녀도 물론 친어머니와 새아버지가 있지만 이태리 밀라노에 거주하는 그녀와는 달리 체코의 프라하에 거주하고 또 그녀의 부모도 늘 아이를 맡아줄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출장 때마다 아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제일 우선이라 하였다.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자니 더 힘들겠지만 우리도 조부모라 해서 모두가 아이를 맡아줄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고로 한국이나 서양이나 아이 키우는 문제가 제일 어려운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예정에 없던 일이 생겨 목요일 저녁 지방에서 늦게 올라온 그녀가 예약한 미용실에는 가지 못하더라도 나에게 소주는 한 잔 사고 가야 한다고 하여 늦은 저녁 호텔 옆의 돼지갈비집에서 다시 마주 앉았다. 소주 한잔을 단숨에 들이키고는 상추에 고기와 구운 마늘을 함께 싸 소주와 함께 우리네 그것과 다를 바 없이 볼이 터지게 한입 집어넣는 그녀의 모습에서 이제 우리 음식문화에 많이 적응이 된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나 김치에는 적응이 어려운지 애써 먹어보려다 곧 뱉어버리고는 아직 더 노력이 필요하다고 겸연쩍게 웃었다. 많은 곳에 출장을 다녔으면서도 출장지 음식에 적응력이 없어 고추장이며 라면이며 즉석밥 등을 늘 싸가지고 다닌 나로서는 그녀의 그런 노력이 나에 대한 예의에 더하여 우리 음식문화에 대한 진정한 예의를 표하는 것 같아 고마움을 느꼈다.

 

밤 12시에 문을 닫는다는 그 돼지갈비집에서 그 시간을 꼭 채워가며 아이의 교육문제를 비롯하여 별의별 이야기를 다 물어오던 그녀는 갑자기 큰 빈 가방을 가져왔다고 웃어젖혔다. 이유인즉, 한국에 간다고 하니 어머니로부터의 연락이 큰 박스에 든 ‘커피믹스’는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웃집에서는 돈까지 챙겨주며 ‘구운 김’을 주문하였고 그동안 그녀가 한국에서 가져다 맛을 보게 한 ‘배’며 ‘소주’까지 여기저기서 주문을 하는 통에 큰 가방을 가져와야 했다고 하였다. 처음 내 집을 찾았을 때는 아메리카나 커피를 즐기는 나에게, 에스프레소를 비롯하여 유럽식 커피를 염두에 둔 듯, 그건 커피가 아니라고 하였던 그녀가 이제는 한국식 ‘커피믹스’ 마니아가 되었고 더 나아가 체코의 어머니는 제쳐두더라도 밀라노의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한국식 커피는 물론이려니와 소주와 구운 김과 배로 한국을 심어가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다음번 출장은 여름에 잡고 아이가 방학하면 같이 오라고 하였더니 아이가 아직 영어를 하지 못하니 몇 년 후에는 꼭 그리하고 싶다고 하였다.

 

이번에는 ‘대장금’ DVD를 구하여 선물하고 싶었는데 영어, 이태리어 혹은 체코어판 어느 것도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어 홍삼차 한 세트를 귀국 선물로 들려주고는 행인들이 보던 말든 길거리에서 쪽 소리를 내며 볼 비비고, “언젠가는 어머니, 아버지가 프라하와 밀라노에서 불고기와 잡채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날을 기다리겠다”는 그녀의 소리침을 뒤로 하고, 다음에 오면 의미 있는 ‘구절판’을 맛보게 하면 좋겠다 생각하며 손을 흔들어 잘 가라 하였다. 미혼모 서양딸 덕분에 나도 이만하면 한류 보급의 한 귀퉁이에라도 설수 있을까?

 

2013년 10월 15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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