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환풍구 사진 한 장에

korman 2014. 10. 21. 13:45

 

 

 

환풍구 사진 한 장에

 

늘 버릇대로 새벽에 커피 한 잔을 옆에 놓고 신문을 펼친다. 오늘도 판교참사에 관한 기사가 1면과 3면을 채웠다. 이런 사고가 터지면 보도방법은 늘 같다. 우선 급한 내용을 전한 후에는 안전관리에 관한 규정과 정부쪽에 화살이 돌아간다. 그리고 전문가들과 문제점을 파헤치면서 며칠간을 버텨나가고 있다. 여기에 때로는 제대로 알고 이런 기사를 쓰나 생각될 정도로 자극적인 것을 캐내어 덧붙이기도 한다.

 

엊그제 판교 참사가 터진 다음날, 내가보는 신문에는 비교되는 두 장의 큰 사진이 1면 머리에 나란히 실렸다. 한 장은 참사 전 30여명의 사람들이 환풍구에 올라 있는 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사고가 난 후 뻥 뚫린 환풍구의 사진이었다. 참사 전 많은 사람들이 올라있는 사진에는 “대형 철제 덮개가 이들의 무게를 못 이겨 U자 형태로 내려앉은 모습이 보인다”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그 사진을 살펴보니 설명대로 콘크리트 구조물이 받쳐주지 못하는 환풍구 안쪽의 덮개들이 내려앉아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위험성이 보인다. 따라서 사진을 찍은 기자도 그 위험성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사회자로부터 방송이 몇 번 있었다 하니 더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난 이 사진을 보면서 왜 종군기자 생각이 났을까?

 

전쟁터에는 늘 종군기자라는 언론사 기자들이 따라다닌다. 예전에도 궁금하였고 지금도 궁금한 것은 만일 취재 중 홀로 아군의 위험성을 감지하였다면 기자는 아군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려줄까 아니면 그냥 벌어지는 결과를 취재만 할까, 부상당한 아군에게 종군기자 외에는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다면 기자는 취재를 보류하고 도움을 줄까 아니면 그 모습을 취재만 할까? 가끔 자연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위험에 처한 약한 동물의 모습에 제작진이 좀 도움을 주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자연다큐멘터리는 자연의 섭리를 기록하는 것이고 도움을 주면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니 그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종군기자들은 인명이 달린 절체절명의 순간을 대하게 된다면, 비록 그것이 자신만의 특종을 놓치게 되는 갈등을 초래한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특종을 포기하고 본능적으로 아군의 인명을 우선시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진을 보면서 종군기자에 대한 궁금증을 떠올린 것은 그 사진을 찍은 기자는 위험을 직감하였을 텐데, 그리고 기자이기 때문에 119나 주최 측에 위험을 알리기 더욱 쉬웠을 텐데 그냥 묵과하고 취재만 하였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또한 사고가 난 후 비교사진을 1면 톱으로 내면서 신문사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만일 사진을 찍은 기자가 본능을 발휘하여 관계자들에게 일말의 경고라도 하였더라면, 당국에 신고라도 하였더라면, 방송을 한 사회자에게 안전요원을 부르도록 강하게 어필이라도 하였더라면, 기자였기 때문에 관계되는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을 것이고 그리 되었다면 참사를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진을 누가 제공하였다는 설명이 없으니 신문사 기자가 직접 현장에서 찍은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었다.

 

이 신문이 오늘은 일본에서는 주차장 환풍구를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높이 세우고 지하철 환풍구도 높이 감싸서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는, 일본의 환풍구는 모두 안전하다고 오해할 만한 기사를 실었다. 어제 밤에 모 방송사에서도 신문의 사진과 같은 주차장 환풍구 그림을 보여주었지만 아울러 지하철 환풍구는 우리처럼 보도에 평면화 되었다는 그림도 보여 주었다. 그리고 하중에 대한 규정은 우리처럼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도 전하였다. 때문에 신문기사를 보면서 기사를 쓴 기자는 얼마나 많은 환풍구를 조사하고 이런 단편적인 기사를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다니다 보면 일본처럼 건물 지하 환풍구를 높이 감싸 놓은 곳도 있으며 지하철 환풍구도 아크릴로 높이 둘러싸인 곳도 있고 시멘트타일로 조금 높여놓은 곳도 있다. 물론 많은 곳이 보도와 평면화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위험에 노출되게 한 것은 아니며 TV에 비쳐지는 다른 나라 도시들의 길거리 환풍구들도, 물론 안전규정이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겠지만, 우리처럼 보도의 한쪽에 평면으로 만들어 놓은 곳도 많았고 사람들은 그 위로 지나다니고 있었다. 아무리 하중에 대한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누가 30여명의 사람들이 환풍구에 한꺼번에 올라갈 것을 생각하며 설계 및 시공을 할까?

 

어떤 사건이 터지면 신문, 방송, 그리고 초빙된 전문가들은 힘을 합쳐서 문제점을 캐고 “인재였다”, “예고된 참사였다” “안전 불감증이다”, “후진국형 사고다” 등등 온갖 형용사를 다 동원하여 자극성 기사를 쏟아 놓는다. 전문가들의 평이나 기사를 잘 살펴보면 이들은 “문제가 뭐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는 어떤 사고가 날 수 있다”라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사고가 날 때 까지 왜 가만히 있었을까? 전문가로써 규정이 없어 위험하다는 문제점을 알았다면, 혼자 힘으로 안 되면, 전문가 단체, 시민단체, 언론 등과 연대하여 규정이 제정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여야 하고 언론들은 사고가 난 후 그 문제점만을 제시하지 말고 사전에 이런 문제를 취재하여 계속적으로 관계당국과 국민을 계도하고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사건, 사고가 터진 후에 한 마디씩은 일반인도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 때에 국민들을 치유하는 문제는 뒤로하고 온갖 자극성 기사와 카더라 통신을 쏟아내는 기사를 보며 이제 신문을 끊을까 생각하다가 책도 별로 읽지 않는데 신문에 난 칼럼이나 산문 같은 것도 안 읽으면 머리가 더 빨리 노쇠해 지지 않을까 두려워 그리하지 못하였는데 환풍구 사고가 터진 후 오늘도 신문을 읽으며 또다시 끊을까 하는 생각에 커피 한 모금을 꿀꺽 넘기는데 갑자기 세월호 수색에 다이빙벨을 쓰지 않는다고 당국을 호통 치던 모 종편 케이블 앵커가 떠올라 아침 쓴 웃음을 지었다.

 

2014년 10월 20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