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천 출토 태안2년명 범종(全南 麗川 出土 泰安2年銘 梵鍾)
1086년 고려 선종 3년 태안 2년
1969년 7월 30일 전남 여천군 쌍봉면 여천리에서 출토
국립광주박물관 소장으로 나타나 있으나 2015년 8월 17일 현재 박물관 사이트에 소개되지 않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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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全南) 여천(麗川) 출토(出土) 태안이년명(泰安二年銘) 범종(梵鍾)
소재지(所在地) : 충청북도(忠淸北道) 부여군(夫餘郡) 국립부여박물관(國立夫餘博物館)
연 대(年 代) : 1086년(年) (선종(宣宗) 3년(年), 태안(太安) 2년(年))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측치(實測値) : 총고(總高); 50.7cm 종신고(鍾身高); 35cm 용뉴고(龍鈕高); 13cm 용통경(甬筒
徑); 3.4cm 상대폭(上帶幅); 4.5cm 유곽폭(乳廓幅); 4.8cm 유곽장(乳廓長); 8×
10.7cm 당좌경(撞座徑); 10.5cm 하대폭(下帶幅); 5.5cm 종구경(鍾口徑);
30cm 종구후(鍾口厚); 1.8cm
1969年 7月 30日 전남(全南) 여천군(麗川郡) 쌍봉면(雙峰面) 여산리(麗山里) 山21번지(番
地) 일명사지(逸名寺址)에서 출토(出土)된 종(鍾)으로 이를 이영락씨(李永樂氏)의 보고(報
告)23)에 의한 것을 약하여 소개하면, 용뉴(龍鈕)는 U자형(字形)을 이룬 것으로 양족(兩足)
을 전후(前後)로 뻗고 함주(含珠)하였으며 용통(甬筒)은 죽절형(竹節形)인데 연화문(蓮華紋)
을 새겼다. 정부(頂部) 주연(周緣)을 돌아서 연화복판문(蓮華複辦紋)이 있는 것도 후대(後
代)의 삼각(三角) 입화문(立花紋)과는 차이를 보이는 고식(古式)이라 하였다. 상하대(上下
帶)는 연주문(連珠紋)을 두르고 상대(上帶)에는 당초문(唐草紋)을 하대(下帶)에는 옆으로 넓
게 퍼진 중판(重辦)의 화문(花紋)을 새겼다고 하였으며 유곽(乳廓)은 4곳에 배치되고 비교
적 큰데 내외(內外)로 연주문(連珠紋)을 두른 세판연화문(細瓣蓮華紋)으로 장식(裝飾)되어
있는 유(乳)의 돌기(突起)는 없다고 한다. 당좌(撞座)는 원형(圓型)의 중판화문(重瓣花紋)을
안에 두고 연주문(連珠紋)으로 돌려 있는데 2좌(座)로서 이 종(鍾)의 전후(前後) 양면(兩面)
에 배치되어 있다. 용두(龍頭)가 향(향)하는 정면(正面)은 당좌(撞座) 상부(上部)이며 유곽
(乳廓) 간(間)에는 양각(陽刻)으로 「성수천장(聖壽天長)」의 4字가 세로로 새겨져 있는데,
이 양각(陽刻) 문자(文字) 상하(上下)로 화문(花紋)이 장식(裝飾)되어 있어 목패(木牌)를 이
루고 있는 것도 이 종(鍾)의 정면(正面)임을 가리키고 있다고 하였다. 비천상(飛天像)은 당
좌(撞座)와 교대하였는바 양측면(兩側面)의 유곽간(乳廓間) 하부(下部)에 당좌(撞座)와 거의
같은 위치에 합장(合掌) 궤좌(跪坐)한 천인(天人) 2구(軀)가 양각(陽刻)되어 있고, 높이 나
는 천의(天衣)와 운문(雲紋)이 상하(上下)에 새겨져 있는데 이 좌상(坐像) 또한 선명하여 장
신구나 천의(天衣)의 나부끼는 유려한 선(線)이 잘 나타나고 있다. 명문(銘文)은 종(鍾)의
정면(正面) 옆 유곽(乳廓) 직하(直下)에 장방형(長方形)의 양각(陽刻)된 명문(銘文)구획을
마련하고 34行 字의 글씨를 음각(陰刻)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長生寺金鍾重五十斤(장생사금종중오십근)
棟梁寺主重□倡渼(동량사주중□창미)
京戊□正春元絶納(경무□정춘원절납)
十六斤太安二年十二月日(십육근태안이년십이월일)
태안(太安)은 요(遼) 도종(道宗)의 연호(年號)로 그 2年은 고려(高麗) 선종(宣宗) 3年
(1086)에 해당하며 1967年 여주(驪州)에서 출토(出土)된 청녕(淸寧) 4년명(年銘) 대종(大鍾)
에 이어 해방후(解放後) 발견(發見)된 연대(年代)가 고고(高古)한 작품(作品) 중의 하나이
다. 장생사(長生寺)는 혹시 출토지(出土地)에 있었던 사명(寺名)으로 보이나 확실(確實)하지
는 않고 문헌(文獻) 또한 찾을 수가 없다고 하였으며 금종(金鍾)이라 하였는데 타예(他例)
에서도 볼 수 있으며 동량(棟樑)은 이 장생사주(長生寺主)이고 16근(斤)을 시납(施納)한 인
명(人名)이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종(鍾)의 동량(棟樑)은 50근(斤)이라 하였다. 문자(文字)
는 다소 치졸하나 크며 각선이 깊어서 판독할 수 있으나 2字가 불명(不明)함이 유감이다.
또한 종(鍾)의 형태(形態)는 동부(胴部)가 다소 부르나 다시 하대(下帶)에서 약간 위축되고
있어 나대말(羅代末)의 유형(類型)을 지니고 있으나 각부(各部)의 조식(彫飾)은 나말종(羅末
鍾)의 그것과 같이 유려 섬약하지는 않다. 일견(一見) 거치른 방법(方法)을 보이나 용뉴(龍
鈕)와 어울려 상하(上下)의 균형(均衡)을 얻어 고려초(高麗初)의 가작(佳作)이라 하겠다고
보고문(報告文)에서 밝히고 있는 바, 이를 다시 검토하여 볼 때 종신(鍾身)의 운문상(雲紋
上) 합장(合掌) 궤좌(跪坐)한 비천상(飛天像)은 선각(線刻)으로서 두광(頭光)을 갖추고 있는
형상(形像)으로 종신(鍾身)에 비(比)하여 비천(飛天)의 비례가 몹시 크게 조식(彫飾)된 특수
형이다.
하대(下帶)의 문양(紋樣)은 연결된 당초문(唐草紋)으로 보이는 바이며 또한 상대(上帶) 문
양(紋樣)도 당초문(唐草紋)으로 설명(說明)한 것에 대(對)하여 동의(同義)를 표(表)하나 중
간중간(中間中間)에 3엽(葉)의 화판을 조식(彫飾)한 것은 본종(本鍾)의 특징(特徵)이라 하겠
다.
출처 :
1996년. 12월.
국립문화재연구 소장(國立文化財硏究所長) 김동현金 東 鉉)간
한국의 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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