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부여박물관 소장 금산군 월봉사지출토 고려범종
출처 : 이뮤지엄 2016년 12월 28일 현재
http://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100300100006400000#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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梵鍾 [범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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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64 / 000 | |
금속(금속)동합금(동합금) | |
종교신앙 불교 의식 범종 | |
식물문(植物文) 연화문(蓮花文) | |
국립1(國立1) 부여(扶餘) 부여(扶餘) |
통형(筒形)의 고려범종으로 종(鐘)의 정상부에는 단뉴형식(單紐形式)의 용뉴(龍紐)와 음통(音筒)이 서로 부착되어 있다. 용뉴의 용은 여의주를 물고 있고, 음통의 테두리에는 연주돌기문(連珠突起文)이 돌려졌다. 종견상연(鐘肩上緣)에는 입상연화문(立狀蓮花文)을 중첩시켜 장식하였는데 파손된 부분이 있고 보수한 흔적도 보인다. 상대(上帶)에는 당초문(唐草文)을, 하대(下帶)에는 연당초문(蓮唐草文)을 각각 시문하였고 같은 간격으로 배치된 유곽(乳廓)의 가장자리도 당초문(唐草文)으로 장식하였다. 그안에는 원형(圓形)받침의 돌출된 9개(3×3)의 유두(乳頭)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종복(鐘腹)에는 각각 2개씩 연화문(蓮花文)의 당좌(撞座)와 주악비천상(奏樂飛天像)을 교호(交互)로 배치하였는데 조각스타일이 매우 평면적이다. 당좌는 세엽(細葉)의 연화문으로 이루어졌고, 날으는듯한 비천상은 천의자락이 매우 생동감있게 시문되어 있어 많은 정성을 기울여 종을 주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종은 앞시대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용뉴가 빈약해지고, 용의 몸통이 구부러지는등 장식적인 면이 강조되는 등 고려시대의 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출처 : 부여박물관 홈페이지 2016년 4월 16일 현재
http://rms-se.museum.go.kr/data/code/homeSearchRelicDetailView.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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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금산 출토 범종(忠南 錦山 出土 梵鍾)
충남 금산 출토 범종(忠南 錦山 出土 梵鍾)(2-30, 3-26)
소 재 지(所 在 地) : 충청남도(忠淸南道) 부안군(扶安郡) 국립부안박물관(國立扶安博物館) (?)
연 대(年 代) : 13세기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 측 치(實 測 値) : 총고(總高); 42cm 종신고(鍾身高); 32cm 용통고(甬筒高); 9.3cm
용통경(甬筒徑); 3cm 상대폭(上帶幅); 3cm 유곽폭(乳廓幅); 2.8cm
유곽장(乳廓長); 9×11.8cm 당좌경(撞座徑); 7.8cm 하대폭(下帶幅); 5cm
종구경(鍾口徑); 30cm 종구후(鍾口厚); 2.5cm
1960年 12月 『고고미술(考古美術)』 1卷5號75)와 『연제고고논집(然齋考古論集)』76)에 이
미 소개(紹介) 발표(發表)되었다. 1952年 4月 15日 금산군(錦山郡) 금성면(錦城面) 화림리
(花林里) 산록(山麓)의 월봉사지(月峰寺址)에서 초등학교생(初等學校生) 이창운군(李昌云君)
이 발견(發見)하여 현재(現在) 국립부여박물관(國立扶餘博物館)에 분관(分館)64號로 등록 보
존(保存)하고 있는 종(鍾)이다.
종(鍾)의 형태(形態)와 각부(各部) 양식(樣式)을 살펴보면 고려종(高麗鍾)의 일반양식(一般
樣式)으로서 종정(鍾頂)에는 용통(甬筒) 용뉴(龍鈕)를 갖추고 있다. 용통(甬筒) 정상(頂上)에
는 4개(個)의 소주(小珠)가 동일(同一)한 간격(間隔)으로 부착되어 있으며, 또한 용통(甬筒)
표면(表面)에는 2단(段)으로 구획(區劃)을 정(定)하여 문양(紋樣)을 조식(彫飾)하고 있는데
상단면(上段面)에는 국화문양(菊花紋樣)과 유사한 화문(花紋) 1개(個)씩을 양측에 배치하고
있다. 용두(龍頭)는 종정(鍾頂)을 물어서 들어 올리는 형상으로 용통(용통)과 더불어 주조(鑄
造) 당시(當時)부터 상당한 피해를 입어 모든 면이 뚜렷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종정(鍾頂)
의 천판(天板)과 상대(上帶)가 접(接)하는 천판(天板) 주연상(周緣上)에는 연판입상대(蓮瓣立
狀帶)를 돌렸고, 상대(上帶)는 고려(高麗) 자기(磁器) 등에서 보이는 굵고 화려한 당초문대
(唐草紋帶)로 처리(處理)하였다. 상대(上帶)와 접(接)한 유곽대(乳廓帶)는 역시 당초문대(唐
草紋대)로 주문대(主紋帶)를 이루었으며 유곽(乳廓) 내(內)의 9유(乳)는 화좌(花座)로서 유두
(乳頭)를 대신(代身)하였다.
하대(下帶)는 상대(上帶)의 당초문(唐草紋)과는 다른 형식의 당초문대(唐草紋帶)로서 주문
대(主紋帶)를 이루고 있으나 그 수법(手法)은 상대(上帶)와 판이하게 다르다. 종신복(鍾身腹)
에 배치한 당좌(撞座) 2개(個)와 비천상(飛天像) 2구(軀)의 조식(彫飾) 형태를 보면 비천(飛
天)은 유곽(乳廓)과 유곽간(乳廓間)에 속(屬)하는 종복(鍾腹)의 운문(雲紋)위에 천의(天衣)를
날리며 궤좌(跪坐)하여 합장(合掌)한 보살상(菩薩像)을 배치(配置)하고 있고 당좌(撞座)는 자
방(子房)을 중심(中心)하여 단엽연판(單葉蓮瓣)을 배치한 원형(圓形) 당좌(撞座)로 되어있다.
특히 종(鍾)의 상부면(上部面)이 주조(鑄造) 당시(當時)부터 상당한 피해를 입어 견대(肩帶)
와 정상부분(頂上部分)이 결락(缺落)되어 종(鍾)의 화려한 수법(手法)을 흠지게 하고 있다.
이와같은 수법(手法)으로 보아 본(本) 종(鍾)은 그 주조년대(鑄造年代)가 13세기경으로 추정 (推定)된다. 한편 상대(上帶)에 나타나는 당초문양(唐草紋樣)을 전라남도(全羅南道) 강진군
(康津郡) 대구면(大口面) 사당리(沙堂里)에서 출토(出土)된 청자와(靑瓷瓦)의 당초문(唐草紋)
등(等)과 비교하여 혹시 12세기 초엽(初葉)으로 보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77) 견해도 있
으나, 12세기 초엽(初葉)에 속하는 기명(記銘) 및 무기명종(無記銘鍾)들과 비교할 때 수법
(手法) 양식(樣式)이 상당한 거리와 퇴화감(退化感)을 주고 있다.
출처 :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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