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조선의 종

전남 해남군 대흥사 소장 만력15년명 범종(萬歷十五年銘梵鐘)(대흥사 침계루 건륭삼십칠년명 범종)

korman 2016. 12. 29. 16:55

[대흥사 침계루 건륭삼십칠년명 동종]

대흥사 침계루에 있는 건륭삼십칠년명 동종은 단용의 용뉴와 음통을, 상대에는 범자 2자를 사다리꼴 안에 38판 배치하였다. 상대에서 조금 떨어진 부분에 4개의 유곽을 배치하고 유곽 안에는 9개의 유두가 솟아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상 4구를 입상으로 배치하였다. 당좌는 없으며, 중앙에 2조의 융기선을 돌렸으며, 하대는 꽃과 줄기의 덩굴무늬를 치장하였다. 종의 주조와 관련된 명문이 융기선과 하대 사이에 ‘만력십오년신조 강희오십육년정해삼월일개조 건륭삼십칠□□진십월일개조(萬曆十五年新造 康熙五十六年丁亥三月日改造 乾隆三十七□□辰十月日改造)’라고 새겨져 있는데 분석하면 건륭삼십칠년명동종은 만력(萬曆) 15년인 1587년 조성된 종을 강희(康熙) 56년 개조하고, 다시 건륭(乾隆) 37년인 1772년 재개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시기는 조선 후기이나 종의 형식이 조선 중기를 따르고 있어, 건륭삼십칠년명 동종은 원래 처음 주조 당시의 종을 모본으로 하여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디지털해남문화대전 2022년 5월 12일 현재

http://haenam.grandculture.net/haenam/toc/GC073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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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군 대흥사 소장 만력15년명 범종(萬歷十五年銘梵鐘)

(국립문화재연구소 호칭 : 대흥사 침계루 건륭삼십칠년명 범종)

 

 

출처 : 이무지엄 2016년 12월 29일 현재

http://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4015001000098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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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침계루 건륭삼십칠년명 범종

 

범종(梵鍾)의 정상(頂上) 용뉴(龍)는 단룡(單龍)이며 용통(甬筒)을 갖추고 있다. 종정(鍾頂)의 천판(天板)은 수평(水平)이 아니고 반구형(半球形)이며 이 위에 서있는 용뉴(龍)에 있어서도 용통(甬筒)이 독립(獨立)되게 설치된 것이 아니고 용체(龍體)에 붙어서 되어 있는 것이 부자연(不自然)스러운 형상이다.

 

용통(甬筒) 정상부(頂上部)도 개화(開花)가 되는 듯한 화판(花瓣)으로 장식하였고 입을 벌린 용두(龍頭)와 용(龍)의 몸체 비늘 등이 형식적이고 도식적(圖式的)인 수법(手法)으로 처리한 치졸한 용뉴이다. 천판(天板)과 상대가 접하는 계선상(界線上)에는 단판(單瓣)의 연판문양(蓮瓣紋樣)이 변형(變形)된 것 같은 입상문대(立狀紋帶)를 돌리고 있고 그 밑으로 상대(上帶)를 설정(設定)하고 있다.

 

상대(上帶) 역시 일정(一定)한 구획(區劃)을 정한 속에 범자(梵字) 2자식(字式)을 배치하여 38판(瓣)의 구획(區劃)으로 구분 배치하고 있다. 유곽(乳廓)은 상대(上帶)와 접하여 있지 않고 독립되게 떨어져 4곳에 배치하고 있는데 유곽의 문양은 외주(外周)를 연주문대(連珠紋帶)로 돌리고 사격문을 비켜 장식한 문양대(紋樣帶)로 장식하고 있다. 유곽 내의 9유두(乳頭)도 화좌(花座)에 자방(子房)이 돌출되어 있으며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원형 두광과 보관을 갖춘 보살입상 4구(軀)를 선조(線彫)로 장식하여 배치하고 있다. 종신복(鍾身腹)에는 융기된 3조(條)의 태선(太線)을 돌려 종신(鍾身)을 상하(上下)로 구분(區分)하여 처리하였으며 하대(下帶)와 태선(太線) 사이의 개지(開地)에는 양주(陽鑄)된 명문(銘文)이 있는데 명문(銘文) 내용(內容)에 의하여 이 범종(梵鍾)은 여러 번 개조하였던 것 같다.

 

하대(下帶) 종구(鍾口)에서 8.5㎝ 떨어진 위쪽으로 10㎝ 정도의 폭으로 하대(下帶)를 설정 장식하였는데 그 형태는 상하 연주문대로 장식하고 그 내부에 보상당초문으로 조식된 하대(下帶)를 갖추고 있다. 종복(鍾腹) 하부(下部)에 명기(銘記)된 내용(內容)을 보면 萬曆十五年丁亥新造 康熙五十六年丁酉三月日改造 乾隆三十七年壬辰十月改造 으로 되어 있는데 만력(萬曆) 15년(1587)에 처음 만들고 강희(康熙) 56년(1717)에 다시 만들었고 건륭(乾隆) 37년(1772), 영조(英祖) 48년(年)에 또 다시 만들어진 조선(朝鮮) 중기(中期)의 범종(梵鍾)임을 알 수 있다. 그 형태와 양식 등은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범종의 형태를 충실히 갖추고 있다.

 

출처 : 문광부 문화데이터광장 2016년 12월 29일 현재

       http://www.culture.go.kr/data/data/view.do?url=http%3A%2F%2Fportal.nricp.go.kr%2Fkr%2Fdat          a%2Fresearch%2Fart%2Fview.jsp%3FpageNum%3D2%26id%3D19198&contextName=http%3A%2        F%2F221.145.178.212%3A8983%2Fopenapi%2Frdf%2FartCulture.r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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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침계누(大興寺 枕溪樓) 건륭삼십칠년명(乾隆三十七年銘) 범종(梵鍾)(2-111)

 

 

 

 소재지(所在地) : 경상남도(慶尙南道) 해남군(海南郡) 삼산면(三山面) 구림리(九林里) 산(山)9 

 연 대(年 代) : 1772年(영조(英祖) 48年, 건륭(乾隆) 37年)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측치(實測値) : 총고(總高); 127.5cm, 용통고(甬筒高); cm, 상대폭(上帶幅); 8cm, 

 유곽장(乳廓長); 20.5×21cm, 구경(口徑); 80cm, 종신고(鍾身高); 95.5cm, 

 용통경(甬筒徑); cm, 하대폭(下帶幅); 10cm 종구후(鍾口厚); 5.5cm, 

 용뉴고(龍鈕高); 28cm, 천판경(天板徑); 52cm, 유곽폭(乳廓幅); 3.5cm, 

 당좌경(撞座徑); cm

 

 범종(梵鍾)의 정상(頂上) 용뉴(龍鈕)는 단룡(單龍)이며 용통(甬筒)을 갖추고 있다.

 

 종정(鍾頂)의 천판(天板)은 수평(水平)이 아니고 반구형(半球形)이며 이 위에 서 있는 용뉴(龍鈕)에 있어서도 용통(甬筒)이 독립(獨立)되게 설치된 것이 아니고 용체(龍體)에 붙어서 되어 있는 것이 부자연(不自然)스러운 형상이다. 용통(甬筒) 정상부(頂上部)도 개화(開花)가 되는 듯한 화판(花瓣)으로 장식하였고 입을 벌린 용두(龍頭)와 용(龍)의 몸체 비늘 등이 형식적이고 도식적(圖式的)인 수법(手法)으로 처리한 치졸한 용뉴이다. 천판(天板)와 상대가 접하는 계선상(界線上)에는 단판(單瓣)의 연판문양(蓮瓣紋樣)이 변형(變形)된 것 같은 입상문대(立狀文帶)를 돌리고 있고 그 밑으로 상대(上帶)를 설정(設定)하고 있다. 상대(上帶) 역시 일정(一定)한 구획(區劃)을 정한 속에 범자(梵字) 2자식(字式)을 배치하여 38판(瓣)의 구획(區劃)으로 구분 배치하고 있다.

 

 유곽(乳廓)은 상대(上帶)와 접하여 있지 않고 독립되게 떨어져 4곳에 배치하고 있는데 유곽의 문양은 외주(外周)를 연주문대(連珠紋帶)로 돌리고 사격문을 엇비켜 장식한 문양대(紋樣帶)로 장식하고 있다. 유곽 내의 9유두(乳頭)도 화좌(花座)에 자방(子房)이 돌출되어 있으며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원형 두광과 보관을 갖춘 보살입상 4구(軀)를 선조(線彫)로 장식하여 배치하고 있다.

 

 종신복(鍾身腹)에는 융기된 3조(條)의 태선(太線)을 돌려 종신(鍾身)을 상하(上下)로 구분(區分)하여 처리하였으며 하대(下帶)와 태선(太線)사이의 개지(開地)에는 양주(陽鑄)된 명문(銘文)이 있는데 명문내용(銘文內容)에 의하여 이 범종(梵鍾)은 여러번 개조하였던 것 같다.

 

 하대(下帶) 종구(鍾口)에서 8.5cm 떨어진 위쪽으로 10cm 정도의 폭으로 하대(下帶)를 설정 장식하였는데 그 형태는 상하 연주문대로 장식하고 그 내부에 보상당초문으로 조식된 하대(下帶)를 갖추고 있다.

 

종복하부(鍾腹下部)에 명기(銘記)된 내용(內容)을 보면

 

 萬曆十五年丁亥新造(만력십오년정해신조)

 康熙五十六年丁酉三月日改造(강희오십육년정유삼월일개조)

 乾隆三十七年壬辰十月改造(건륭삼십칠년임진십월개조)

 

으로 되어 있는데 만력(萬曆) 15年(1587)에 처음 만들고 강희(康熙) 56年(1717)에 다시 만

들었고 건륭(乾隆) 37年(1772), 영조(英祖) 48年에 또 다시 만들어진 조선(朝鮮) 중기(中期)

의 범종(梵鍾)임을 알 수 있다. 그 형태와 양식등은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범종의 형태를 

충실히 갖추고 있다.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1996년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