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라고 무조건 먹지 말자
새해 들어 2017년도 파일을 만들어야겠기로 컴퓨터의 묵은 파일들을 정리하여 백업하다가 잊고 있었던 리스트 하나를 발견하였다. 언젠가 여행을 같이할 때 사용하였던 절친한 친구 부부들의 생년월일이 담긴 파일이었다. 수시로 필요하여 사용했으면 최근 파일에 남겨져 있어야겠지만 예전 배 여행을 같이하기 위하여 예약용으로 받아두었던 것인데 언제 또 쓰겠지 하고 지우지는 않고 그저 잊고 있었던 파일이었다.
새해이니 이 친구들 중 누가 생일이 제일 빠르나 봤더니 나이가 제일 많은 친구의 부인이었다. 주민증 생월은 12월이었지만 나이를 많이 먹었으니 당연히 음력이겠지 하고 양력으로 환산하였더니 어제 날짜였다. 카톡에 촛불케이크를 올렸다. 오늘 또 한 친구 날짜가 적혀있었다. 그래서 또 카톡에 올렸다. 그런데 친구 왈 생일이 틀렸다 했다. 컴퓨터 입력에 그 친구 말 대로 점 하나가 잘못 찍힌 모양이었다. 그리고 자기 주민증 생일은 양력이라 했다. 이 나이에 생일 양력으로 한 친구도 있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증의 생년월일에 음력,양력 표기도 없고 매월 모여 소주는 마시지만 생일이라고 특별히 같이 한 잔 하는 것은 없으니 그저 나이 먹었으니 음력이겠지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또 어떤 친구가 양력일까? 날짜 따져 카톡에 올리면 반응이 있겠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이를 먹은 사람들의 생일은 대다수가 음력으로 되어 있다. 예전 내 부모세대에서는 농경사회에서 모든 농사일정이 음력에 준하였으니 생일도 음력에 맞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음력생일 숫자도 행정적으로는, 즉 주민등록에는 음력과 같은 날짜가 양력으로 기록되었고 모든 대국민 행정도 그 숫자에 맞추어 이루어지니 그냥 집안의 생일도 그 숫자에 맞추어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은 자식들의 생일을 음력으로 등록한 가정은 이제 별로 없을 테니 양력, 음력에 익숙지 않은 자식들도 좀 편하게 그리 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생일잔치는 생일보다 이른 것은 되지만 늦게는 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으니 양력보다 늦게 가는 음력이라 그리 하여도 무방할 것 같다고 하면 혀를 차는 어르신도 계시겠지만 그 어르신들도 전철공짜표 당신 생일보다 일찍 받아 드시고 좋다고 하지 않았을까?
새해가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나 무조건 한 살 더 먹는다. 우리만의 독특한 세는나이 때문이다. 심지어는 12월 31일에 태어난 아기도 1월이 되면 두 살이 된다. 태어난 지 이틀 되는 아기가 2살이 되는 것이다. 기록을 찾아보니 예전에는 중국, 일본, 월남에서도 이 세는 나이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러나 지금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나이문화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은 문화혁명 때 없어지고 일본은 1950년에 없앴다고 하고 월남은 프랑스 점령기에 없어졌다고 하니 시대 변화에도 나이 한 살을 더 세는 것은 세계에서 우리만의 유일한 나이문화인 모양이다.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집의 ‘전세제도’와 이 ‘세는나이제도’라고 한다. 나에게도 누군가 물어와 알려 주었더니 전세제도는 남의 집에 공짜로 사는 것 아니냐 되물으며 이해를 못하였고 세는나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극히 인간적이라 아기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생명체로 생각하여 나이를 부여한다“라 하였더니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도 그 휴머니즘이라는 말이 좀 먹히는지 되묻지는 않았다. 믿거나 말거나 뭐 설명은 하였으니......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 세는나이가 없어지지 않고 계속 존재하는 것일까? 나이 먹은 사람들은 자꾸 나이 먹는 것이 싫다고 하면서도 만나이로 이야기 하지 않고 한 살 더 많은 세는나이를 말한다. 어쩌면 이것도 하나의 위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허세일 수도 있겠고. 아마 불합리 하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그렇게 받아드릴 수도 있겠고. 어떤 이는 서양의 공항에서 나이를 물어 무심코 세는나이를 말 하였다가 여권나이와 다르다고 설명에 애를 먹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80 중반에 들어선 내 매형의 생일이 작년 말이었다. 물론 음력을 양력으로 계산하고 세는나이로 몇이라 했다. 그러나 뵈러 가서도 나는 생일축하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음력이던 양력이던 세는 나이던 만나이던 생일 인사를 건넨다고 80 중반의 노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는 매해 생일 돌아오는 게 무척 싫으실 텐데......그렇지 않아도 친구들이 자꾸만 떠나간다고 목소리에 힘이 없으신데.
2017년 1월 3일
하늘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