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응답기계와 전화요금

korman 2019. 9. 25. 12:11




        그림 : 2017년 9월 쌍계사 꽃무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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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기계와 전화요금


집 화재보험을 모 보험사에 가입한 이래로 보험료를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있었는데 늘 결제하던 카드가 이달에 갱신되어 카드번호가 달라진 고로 해당 카드사에 전화를 걸었다. 인터넷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홈페이지에 회원가입하고 어쩌고 하는 절차가 싫고 그저 카드 새 번호만 알려주면 되는지라 상담전화라고 팝업창에 떠있는 080 수신자 부담 번호로 전화를 하였다. 전화를 받은 여직원은 신규가입할 거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하자 회사 대표전호를 알려주고는 그리로 걸라 하였다. 보통 다른 회사들의 홈페이지에는 하단에 대표번호를 적어 놓고 또 고객센터라는 데도 번호가 나와 있는데 내 검색실력이 부족하였음인지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서는 상담전화번호 외에 다른 번호를 찾을 수 없었다.


가르쳐준 번호로 전화를 하였다. 사람과 통화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바, 늘 들어야 하는 예의 뭐는 몇 번 누르고 뭐는 또 몇 번 누르고 한참을 기계가 홀로 독백을 늘어놓더니 상담사를 원하면 0번을 누르라 하였다. 이제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하였는데 신호가 가더니만 또 기계음이 나왔다. 무슨 상담사는 1번 또 무슨 상담사는 2번.....그리고 끝에 가서는 또 0번을 누르라 하였다. 혈압이 조금씩 오르는 것을 참고 사람이 받을 때 까지 기다렸다. 이때까지 걸린 시간이 대충 5분여는 될 것 같이 느껴졌다. 드디어 사람이 받는구나 느끼며 “여보세요” 하는 찰라 다시 기계음이 들렸다. “모든 상담사가 통화중입니다. 잠시 후 다시 걸어주십시오.”하고는 전화가 일방적으로 뚝 끊어져 버렸다. “아! 이 무슨 이런 X같은 경우가 있나?”하고 한마디 뱉고는 다시 걸었다. 또 같은 순서를 반복하며 기다렸다. 이번에도 뚝. 또 걸었다. 세 번민에 맨 끝에 가서야 사람이 나타났다. 내가 오르는 혈압을 눌러가며 (실제 혈압이 높다고 의사가 약 먹으라고 하여 현재 약으로 누르고 있기는 하지만) 바뀐 커드번호를 알려주려고 한 것은 카드회사에서도 그리 권고를 하였고 기존 번호로 승인을 받다가 승인이 안 떨어지면 이 까탈스러운 회사에서는 즉시 보험료 납부하라고 연락이 올 것이고 신용이 있네 없네 뭐 그런 뒷말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이를 미리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사람이 반가운지라 얼른 전화한 이유를 설명하였다. 상담사는 여러 질문을 하여 본인을 확인하더니만 이미 내가 설명한 사항을 복습하고 있었다. “카드 말씀이십니까? XXXX번 카드 말씀이십니까? 이 카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복습된 사항만 물었다. 또 올라오는 혈압을 억누르며 ”그렇다니까 왜 자꾸 같은 걸 물어봅니까? 내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 말은 안 듣고 왜 자꾸 그 쪽 이야기만 하는거요? 카드가 갱신되어 알려드리려 한다고 이미 이야기 하였는데 그럼 새 카드에 대해서 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 목소리가 좀 톤이 커지고 거칠어짐을 느꼈음인지 그제야 ”불편을 드렸으면 죄송합니다. 새 카드 번호와 유효기간 말씀해 주시겠어요?“하였다. 요새 어디에나 상담전화를 하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일반인은 쓰지도 않는 말투와 불필요한 인사로 시간을 축내는 곳이 많다. 상담사에게 폭언을 하지 말라는 내용의 멘트까지 더해져 본론에 들어가기도 전에 고객은 불쾌하고 기다리다 지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어짐이 반복되고 쓸데없는 인사나 대화가 이어지고 하는 동안 30여분은 흘러간 듯하다.


같은 이유로 인터넷회사에 전화를 하였다. 여기에서도 역시 기계의 독백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전자의 그 상담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그녀도 역시 친절히 인사는 하였지만 쓸데없이 구구절절이 늘어놓는 말은 없었으며 전화를 건 이유를 재빨리 알아듣고 본인확인에 이어 복습 없이 새 카드번호 등 필요한 것만 묻고 서로 확인하고 대화는 끝을 맺었다. 그 때까지의 걸린 시간이 5분여 되었을까? 고객과 할 일은 다 하면서도 전혀 불친절하게 느껴지거나 불쾌감을 주는 일은 없었다. 회사마다 만들어진 상담사 매뉴얼은 회사의 특성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매뉴얼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담 내용에 따라 상담사의 융통성은 허락하여야 하지 않을까?. 이런 간단한 사안을 가지고 고객을 대하는 두 상담사의 다른 면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대한 융통성을 가르쳐 주는 듯 느껴졌다.


문득 이렇게 기계음이 길게 이어지면 전화요금이 어찌되는지. 궁금하여 통신사에 문의를 하였다. 전화요금은 신호가 가고 기계가 전화를 받아 어쩌구저쩌구 할 때부터 부과된다고 하였다. 그러니 기계가 전달하는 쓸데없이 친절한 듯 길게 이어지는 인사는 고객의 전화요금만 갉아 먹는 꼴이 되는 것이다 고객의 전화요금을 아껴 주는 것도 고객을 생각하는 마음이고 친절이다. 따라서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친절은 하되 간단명료하게 인사와 요점만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대화법을 개발하고 상담사들을 교육시킨다면 고객과 회사가 서로 좋은 일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고객들도 과대포장 선물세트 같은 인사를 좋아할 것이 아니라 간결한 대화에서도 친절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렇게 과도한 인사법의 친절을 찾다 보니 돈을 존대하는 “만원이십니다”, 기계에 존대하는 “이 TV는 잘 나오십니다” 등등 이상한 존댓말이 생겨나는 것이다. 과함이 모자람만 못하다 하였거늘...


2019년 9월 23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