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해가 뜨기 전에 부정하리라

korman 2020. 10. 13. 17:29

해가 뜨기 전에 부정하리라

 

계절이 가을이라고 한다. 10월 중순에 들어서고 있고 TV에 비쳐지는 산야의 모습이 많이 변하고 있으니 가을이 깊어가고 있는 것은 알겠으나 내가 사는 도심에서는 아직 그걸 느끼지 못하겠다. 아침⦁저녁으로 가을의 한기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아직 가로수 잎도 변하지 않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낮 시간에는 짧고 얇은 옷차림이 많으니 아직 여름의 끝자락인가 싶을 정도로 제대로 된 계절을 이야기 하는 게 어색하기도 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름을 보냈으니 지난여름이라 해야겠다. 그 지난여름엔 많은 비가 내렸다. “코로나 때문에 여름을 즐기지 못했다.”가 아니라 여름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하늘이 늘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도시는 좀 덜했지만 농어촌에 큰 피해를 준 태풍도 두 개나 나라 전역을 훑고 지나갔다. 그 덕에, 원인이 그것만은 아니겠지만, 농수산물 값이 많이 올라 서민들은 올해의 남은 계절을 장바구니 걱정으로 보내야 한다고도 한다.

 

과거의 태풍보다 많이 강한 태풍이 온다고 하니 각 방송사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출연시켜 태풍에 대비해야할 일들을 경쟁적으로 내 보냈다. 그 중에서도 도시의 고층건물에 사는 가정에서는 베란다 창문을 어찌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많았다. 태풍이 온다고 하면 어느 방송사건 늘 단골로 내 보내던 방송이니 뭐 새로울 게 있나 싶었지만 올해는 좀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통상적으로 지금까지 어느 방송사건 간에 태풍에 대비하여 베란다 창문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창문을 흔들리지 않게 문틀을 고정시키고 유리에 젖은 신문지를 붙이거나 테이프를 X자 형태로 붙이라는 내용이 가장 많았었다. 이 정보는 매해 다른 전문가들이 출연하였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수년간 태풍이 올 때마다 반복되던 내용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그렇지가 않았다.

 

올해 태풍에 대비해 방송국들이 이야기 한 것은 문틀을 고정시키라는 것은 다른 때와 같았지만 한목소리로 “젖은 신문지를 붙이거나 X자 형태로 테이프를 붙이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고 유리를 끼운 창문의 틈을 따라 테이프를 네모나게 붙이는 것이 효과적이다.”라는 것이었다. 전문가와 방송에서는 실험까지 해 가며 예전에 자기들이 시청자들에게 전달해 준 정보를 부정하고 있었다.

 

시청자 입장에서 그들이 준 정보를 믿고 매번 테이프를 X자 형태로 붙이고 띠기를 반복해온 난 그저 웃음만 나왔다. 신문지나 X자 정보를 제공한 때가 조선시대도 아니고 실험을 할 수 없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수 없었던 깜깜이 시대도 아니었다. 불과 1,2년전 까지도 그랬었다. 그 때도 전문가의 말을 빌렸었다. 그런데 올해는 전문가가 달라서 그랬는지 기존의 정보는 모두 실없는 정보였다며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였다.

 

난 지금은 6층에 살고 있다. 예전엔 13층에 살았기 때문에 뭔가 태풍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키는 대로 했었지만, 또 아무 일 없었던 게 그렇게 하라는 대로 한 것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었지만. 그러나 지금은 저층이라 그런 정보에 그렇게 민감하지는 않다. 단지 그 때 내가 따라했던 것이 한 해 사이에 뒤집어 지니 그저 허탈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우스운 일을 성인의 말씀에 비교해 송구한 일이지만 예전 예수가 절대 충성 제자 베드로에게 “해가 뜨기 전에 너는 나를 3번 부정할 것이다.”라고 하였다는데 해가 바뀌고 나니 이거야 말로 예수와 베드로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후에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쳤다고 하지만 우리의 방송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잘못 전달한 정보에 대하여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한 것뿐이니 자신들의 잘못은 없다고 생각하는지 오랫동안 매해 잘못 전달해온 것에 대한 해명은 없었다.

테이프를 네모로 발라야 한다는 정보가 또 언제 베드로의 입장이 될지 궁금한 일이다.

 

2020년 10월 11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