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홍합에 오디와인

korman 2020. 12. 21. 15:39

마리아치 이미지 출처 : 야후

홍합에 오디와인

오후 늦게 TV를 보다가 섬에서 소라며 홍합 같은 해산물을 출연자들이 직접 채취하여 그 자리에서 삶아 먹거나 요리를 하는 프로그램을 접하였다. 순간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오디와인(酒)’ 생각이 났다. 80을 넘어선 누님이 건네준 국산 오디와인은 병모양이나 빈티지가 2017년이로 쓰인 라벨이 프랑스 유명 샤또에서 만든 명품와인 못지않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소주 외에 와인이나 여타 과실주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 아들과 사위를 두다보니 이런 게 생기면 홀로 즐겨야 하는데 그 혼술은 내가 반기지 않으니 노란색 멋진 라벨을 가진 이 오디와인은 언제 병마개가 따질지 모른 채로 냉장고 한켠에 방치되어 있었다.

홍합과 소라를 삶는 TV를 보다 순간적으로 오래 전 출장길에 단지 삶은 홍합 한 냄비와 와인에 젖어 밤이 깊어가는 것을 잊었던 기억이 떠오르며 냉장고에 방치한 오디와인과 홍합이 그때처럼 감미로운 저녁시간을 만들어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어디 가냐는 집사람 물음에는 대답도 않고 동네 시장에서 홍합 1Kg을 샀다. 파리에 여러 날 머물 거면 한 번 가보라고 지인이 쥐어준 주소를 따라 찾아간 곳에는 이미 몇 팀이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였으면 가지도 않았을 테지만 같은 목적으로 출장 중인 다른 분과 일행이 되어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우리 한옥의 대문과 비슷한 모양의 큰 출입구가 있는 그곳에는 그저 대문만 있을 뿐 창문도 없어 닫아놓은 대문 안 쪽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로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대문이 열리고 직원 하나가 얼굴을 내밀더니 나에게 인원수를 확인하고는 들어오라고 했다. 밖에서 기다리면서 안에는 뭐 좀 ‘파리’ 다운 분위기가 있나 했더니만 우리나라 공원에 가도 흔히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붙어있는 6인용 테이블 4개가 전부였다. 별다른 장식은 없었지만 한 쪽에서는 멕시코에서 온 듯한 4인조 마리아치들이 감미로운 멕시코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고 테이블마다에는 모두가 같은 삶은 홍합냄비와 각자 기호에 맞는 와인병이 전부였다. 오로지 홍합에 와인이라는 특색도 있지만 보통 마리아치들은 사랑의 노래를 들려주는 멕시코의 명물로 인식되고 있는 이 마리아치의 분위기 때문에 더 유명세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두 명 뿐이라 다른 사람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고 소문을 듣고 찾아 왔다는 같은 테이블의 여행객들과 금방 친해져 이튿날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그 쪽이나 내 쪽이나 서로 주머니사정에 맞는 와인을 골라 주거니 받거니 밤이 늦도록 잔을 기울였다.

요새도 자식들과 술잔을 나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것은 와인 같은 과실주는 절대로 취하도록 마시지 말라는 것이다. 취하는 속도가 느리니 마시는 양도 많아지거니와 몸속에서 2차 발효가 일어나는지 취기에서 벗어나는 시간도 소주의 그것보다 오래 걸린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술 마시는 속도는 매우 빠르다. 그러니 서양 사람들과 어울리면 그들이 자꾸 권하지는 않지만 우리 자신이 제풀에 못 이기고 잔을 비우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특히 소주의 취기에 익숙한 몸으로 소주보다 알코올 도수가 좀 약한 와인을 대하게 되면 적절한 양의 측정 또한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 서양 사람들은 와인을 술로 마시지 않고 분위기로 마시는 음료로 생각한다는데 우리야 어디 그런가. 분위기 탓이었는지 술로 마신 탓이었는지 늦게까지 기울인 와인 잔이 이른 아침 비행에 어젯밤의 그 감미로운 기분을 지속시켜주지는 않았다. 자투리시간을 내어 제네바로 건너가 구한 젖소가 얹혀있는 얼룩무니 세라믹 종을 와인과 마리아치에 젖어 깨트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와인을 얼마나 마시겠다고 사다놓았던 와인병 오프너와 병마개 등이 어디에 방치되어 있는지도 몰라 싱크대 하단을 한참이나 뒤지는 나에게 핀잔 한 마디와 함께 집사람이 건네주는 병따개로 코르크 마개를 ‘뽕’소리 나게 뽑아 급하게 한 잔을 따랐다. 이미 삶아 놓은 홍합 냄비가 앞에 있으니 와인을 따서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하는 서양적 흉내는 생략하고 소주 마시듯 그리 혼술을 하였다. 마누라라고 앞에 앉아 있으면 마리아치는 못되더라도 분위기 좀 돋아 주면 안 되는지 잔을 받을 줄도 채워줄 줄도 모른 채 깐 홍합은 본인 입으로 직행시켰고 혼자서 한 병을 다 비우는 게 좀 부담스러운 나는 고무로 된 병마개를 남은 병에 꽂아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어디 지나다가도 홍합을 보면 늘 그 큰대문집이 생각난다. 남은 병 비우는 날은 유튜브로 마리아치 음악이라도 틀어야겠다. 약간 가벼우면서 단맛이 기분 나쁘지않게 들어간 그 맛 변하기 전에.

2020년 12월 18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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