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잡다한 이야기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korman 2022. 6. 24. 11:07

220528-220622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올해는 어떤 책을 읽을 때 마다 그것을 읽었다는 기록을 남기고자 무언가를 적어놓곤 한다. 거창 하게 독후감이라고까지 이야기할 것은 못되겠지만 그런대로 몇 줄 적어놓으니 올해 무엇을 해야 겠다고 생각한 것 중에 책 읽는데 대한 계획에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누구나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책 내용에 대하여 느끼는 게 있다. 그리고 잘 쓰나 못 쓰나 독후감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느낀 점을 기술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내 경우도 독후감이라 할 수는 없을지라도 기억이 가물가물해 지니 기록을 남기고는 있지만, 그러나 이 책에 대한 것은 그저 느꼈다고 해서 그대로 적을 수가 있는 책이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또한 그런 걸 생각하고 골라 든 책도 아니었다.

 

우선 ‘이어령’이라는 분을 어찌 칭하여야 될지 모르겠다. 책 속에 펼쳐지는 그 방대한 분야의 지식 때문이다. 문학인? 철학자? 사상가? PD? 과학자? 종교인? 예술인? 언론인? 심지어 어떤 곳에는 법조인이라고 소개하기도 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나이를 좀 먹으면 머리가 녹슬었다고 표현하는데 그가 책 속에 열거한 그 모든 분야의 지식들이 그가 떠나기 직전까지도 그의 머릿속에 건재하였다니 나는 어떤 단어로 그 경이로움을 표현해야 할지 적절한 문구를 찾지 못하겠다. 그의 지난 세월 속에서 그가 취득한 명함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지만 어찌 블러야 할지 모르겠으니 난 그저 ‘교수’라 불러 드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선생’이라는 단어 그 자체의 뜻으로 따지면 당연히 모든 것을 떠나 만인의 ‘선생’이 우선이겠지만 현 우리사회에서 툭하고 던지는 ‘선생’이라는 의미가 존경심보다는 비하심이 더 들어가는 것 같아 ‘교수’가 낫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떤 분야에서 인기가 있다거나 이름이 좀 알려지면 툭하니 국민00, 레전드, 마스터 등등으로 불리는 사회에서 이 분에 대한 적절한 호칭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본인이 직접 집필하지는 않았으니 유작이라는 말을 써도 될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유능한 인터뷰 전문기자가 마지막으로 남기시는 그 분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빠트림 없이 기록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이 책은 한 번을 읽는데 다른 책보다 많은 날짜를 보냈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 프롤로그를 세 번이나 읽은 책이다. 그리고 본문을 읽을 때도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가 책 속에 설명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첫 페이지부터 ‘이 대목은 꼭 기억해야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대에서 미래로, 한국에서 세계로, 지구에서 우주로, 인문에서 과학으로, 일반적 삶에서 전문 철학까지, 평범한 사물의 관찰에서 비범한 전문가적 분석까지.... 어떤 분야에서건 전혀 막힘이 없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는 그냥 무심코 읽어도 될 대목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그는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자신이 기술한 책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적인 독서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루해서 앍기 싫은 내용은 건너뛰라고 하였다. 나도 가끔은 책에 따라 펼쳐놓은 페이지를 아주 안 읽지는 못하고 그저 건성으로 읽는 경우가 있다. 기억되는 게 없으니 안 읽는 거나 다름이 없다. 이 책에도 내가 개인적으로 재미가 없었던 내용은 있다. ‘영성’이라는 종교적 이야기였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종교도 없지만 종교적인 이야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이해도 어렵거니와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으니 다른 페이지처럼 정성들여 읽을 수는 없었다. 그의 말대로 아주 건너뛰지는 못하였지만 다른 페이지보다 읽어 내려가는 속도는 빨랐다. 위에서 아래로 휙 훑었다고나 할까.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 경우 보통 책을 읽으면 좋은 이야기가 나오는 페이지에 가름종이를 끼워둔다. 나중에 기억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독후감 같은 글을 쓸 때 인용하기 위함이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그 종이를 끼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몇 개 끼우다 이내 그만 두었다. 그러려면 모든 페이지에 끼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을 대할 때 ‘이 책은 언젠가 다시 읽어야겠다.’라고 단정 짓고 읽는 책은 없다. 그러나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책을 대하며 다 읽자마자 ‘지금부터 다시 읽어야겠다.’라고 생각한 몇 안 되는 책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에필로그를 읽은 후에도 몇 장이 계속된다. 나처럼 가름종이를 끼우는 독자들을 배려함인지 본문내용 중에서 특별히 선택된 그의 중요한 말들이 다시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책 맨 뒷장에는 “저자와 출판사의 서면 허락 없이 내용의 일부를 무단 사용하거나 발췌하는 것은 금합니다.‘라고 적혀있다. 상업적이라면 모를까 SNS같은 곳에 올리는 독후감 같은 것에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인지 별도 언급은 없다. ”저자와 출판사의....”라고 경고한 이 대목도 포함이 되는 것인지.

 

이 책이 이어령교수가 직접적으로 관련된 마지막 책이라 생각하였는데 같은 출판사에서 4월에 또 다른 책이 출판되었다. 아마 이교수에게서 받아놓은 원고를 그의 사후에 유작이라고 출판하였는지는 모르겠다. 또 다른 책도 출판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그래도 새로 출판되는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의 ‘마지막 수업’을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이 책의 되읽기를 시작하려한다. 수업을 들었으면 복습도 해야 하니까.

 

2022년 6월 22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p-vGnQ93yDs 링크

 

Schubert - Ständchen D.957 [Eun-Sun hong] │ 오르페오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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