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우리 종 공부하기

한국의 종

korman 2006. 10. 11. 00:08
 

▣종의 기원 및 명칭 설명

1. 종이란?

2. 범종의 기원

3. 한국종의 기원

4. 한국종의 고난과 분포 및 형태분야

5. 한국종의 위치명칭과 용어설명

6. 용뉴와 그 전래

7. 음통(음관)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

▣신라시대의 종

1.신라 범종

2.신라 범종의 각부 문양의 특징

3.신라의 대표적 범종

▣고려시대의 종

1.시대적 배경

2.고려 범종의 특징

1)일반적 특징

2)시대별 특징

3)고려 범종의 각부 특징

▣조선시대의 종

1.시대적 배경

2.조선 범종의 특징

1)일반적 특징

2)시대별 특징

3)조선 범종의 형태와 양식

▣비천상과 불보살상 그리고 종의 주조와 음률

1. 각 시대별 특징

2. 변화 원인

< 종의 주조 >

1. 주조 방법

< 종의 음률 >

1. 종소리

놀이는 소리가 가장 적은 에너지로 가장 멀리 가게 하는 효과를 가진다.

3. 음통


▣종의 기원 및 명칭 설명

1. 종이란?

 소리는 내는 금속기구로서 옛날부터 각종 행사에 널리 사용되어 왔음. 종은 고대에는 종교의식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는 종이 중국고대의 제정일치시대에는 악기 및 예기로 사용되었으나, 그 후에는 확실하지 않으나 새로운 양식의 종이 불교사찰의 종으로 또는 서양에서는 교회종으로 쓰이면, 동양종과 서양종으로 크게 분리되었다.

 불교사찰에서 사용하는 종은 일종의 알기이며 불교를 의미하는 ‘梵’자를 붙여 범종이라 한다. 불교에서 예불에 사용하는 네 가지의 중요한 기물을 사물이라 하고, 이 사물 중에서 ‘종소리’는 인간을 백팔번뇌에서 벗어나게 하며, 부처님에 대한 신앙심을 가다듬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동양종을 대표하는 사찰의 종은 한국종, 중국종, 일본종 등이 있으나, 그 중에서 한국종이 은은한 종소리에 있어서나, 또한 아름다음 조형의 미에 있어 가장 우수하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특히 상부에 단용과 음통을 갖공 있는 종으로서 ‘코리안 벨’이라는 학술적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2. 범종의 기원 - 범종의 기원에 대하여 신뢰할 수 있는 자료는 찾기 어려운 실정임.

 ① 인도기원설 : 범종을 범어로 ‘칸다’라 부른다고 한다. ‘칸타’는 본래 소리를 발생하는 모든 것의 명칭이므로 이것을 따로 국어로 번역하였을 때 일정치 않게 쓰게 된다. 인동의 불교도가 ‘칸타’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것이 현재 우리가 말하는 범종의 조형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② 중국고동기기원설 : 중국 은대 이후의 고동기 중 예기에 속하는 악기의 일종인 박, 정, 종 중에서 종을 모방하여 조형이 비롯되었다.

 ③ 종과 탁 혼합 기원설 : 고대 중국의 종이나 탁을 혼합한 형태가 발전하여 극동 불교 사원에 있는 범종의 형태가 되었다.


3. 한국종의 기원

 ①한국종의 출현 : 동양 각국의 범종들은 어느 것이나 중국의 은 및 주시대의 중국 고동기 종을 조형으로 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 중 한반도에서 불교예술이 화려하게 전개된 신라시대에 아름답고 우수한 범종이 출현하였다.

 ②한국종의 기원설

  a. 용종기원설 - 한국종의 기원을 중국 고동기의 용종(주시대에 제작되어 성행하다가 주대 말기 전국시대 이후부터 다른 예기와 더불어 자취를 감춘 악기)이라고 보는 기원설.(용종의 무라고 불리는 천판상에 손잡이가 붙어 있다는 이유에서)

  b. 신라시대기원설 - 중국종에서 조형을 찾기보다는 신라에서 창조되어 출현한 것으로 봄.(신라시대의 사상 최고의 문화유산들과 범종의 특징 등을 생각해 볼 때 신라 자체 한국종의 기원을 둘 수 있다)

  c. 한국종북기원설 - 신라종이 북통을 모방하였고 우리나라에서 鐘자의 의미가 쇠북 종으로 한 것도 한국종의 기원이 북이라고 볼 수 있음.

 

4. 한국종의 고난과 분포 및 형태분야

 ①한국종의 수난 : 고려.조선시대에 걸쳐 왜구들의 약탈, 임진왜란 때에 많은 사찰이 불타고 많은 종들이 망실 및 약탈됨, 조선시대 억불정책과 더불어 일부 사찰이 폐사되고 불교도 쇠퇴하여 범종제작도 부진하였음, 범종의 청동을 수거하여 엽전 및 총포를 제작, 일본의 대동아전쟁 수행이라는 미명 아래 강제로 수많은 범종이 무기 제작 등의 이유로 공출되었음, 6.25 전쟁 때 많은 범종 및 사찰의 망실.

 ②한국종의 시대별 분포

 

구 내

재 일 본

기타

합 계

신라시대

6(3)

6(2)

-

12

고려시대

106

51

(재불1),(재북한1)

159

조선시대

128

4

(재북한11)

143

기타 및 근세

4

-

13

17

합 계

244

61

26

331

 

 ③문화재로 지정된 한국종 - 한국 내 국보 3구와 보물 8구. 한편 재일 신라종 및 고려종 중에서 일본국보 2구 및 일본문화재로 지정된 한국종이 한국 내에서 지정된 문화재보다 훨씬 많은 수를 나타내어 해외에서도 한국종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5. 한국종의 위치명칭과 용어설명

 

● 용뉴

용의 모양을 취한 범종의 가장 윗부분으로, 이곳에 쇠줄 등을 연거랗여 종을 매달게 된다.

즉 용뉴란 '용의 모습을 취한 고리'라는 뜻이다. 뱀의 몸매에 잉어 비늘, 시슴의 뿔, 토끼의 눈, 소의 귀, 뱀의 이마, 배 발톱, 범 발바닥을 취한, 하늘과 땅을 마음대로 날아 다닐 수 있는 용의 모양을 취한 이유는 고래(당목의 모양)를 무서워하는 '포뢰'라는 용이 울기를 좋아해거 선택했다 한다.

범종을 달리 '경종', '장경','화경'이라 하는 까닭도 포뢰용을 겁주어 더욱 훌륭한 종소리를 얻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 음관(音管)

용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음관은 용통, 음통이라고도 불리어지는 소리 대롱이다.

이 음관은 외국 종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우리 나라 범종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음관의 유래는 《삼국유사》<만파식적> 설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리고 천하를 화평하게 하며 모든 파도를 쉬게 하는 피리, 만파식적의 상징성이야 말로 범종의 참뜻과 같다 하겠다.

실제 음관은 대나무의 마디 모양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 이 소리대롱은 종을 쳤을 때 잡소리 하나 없이 한 가닥의 맑은 소리를 나게 하는 역할과 함께, 뒤울림이 명주실 같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게끔 하는, 비록 과학적 증명은 되지 않았더라도 이것이야 말로 우리 조상의 슬기요 만파식적 정신의 계승이라 하겠다.

● 종의 몸체부분

천판(天板)은 용뉴.음관과 접촉되어 있는 종머리 부분이다.

< 상대(上帶)와 하대(下帶) >

상대는 종의 어깨 부분에 둘려진 무늬띠이고 하대는 종의 아래 부분인 종구에 둘려진 무늬띠이다.

상.하대를 종의 양쪽에 둘러서 특별한 문양을 새긴데 비해서는 몇 가지 타탕성있는 주장이 있다.

첫째는 종이 큰 북을 세워놓은 것과 같은 형태로서, 북의 영쪽 가죽을 단단히 끌어당겨 양쪽 테두리 위에 고정시킬 때 만들어지는 북테 장식에서 ?겨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종의 아랫부분과 윗부분이 잘 터지지 않도록 단단히 하기 위해서 마련된 테두리라는 것, 세 번째는 두쪽을 두툼하게 마감하여 가볍고 퍼진 소리가 아닌 굵은 울림소리가 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 등이다.

< 유곽(乳廓)과 유두(乳頭) >

유곽은 상대 밑쪽의 네곳에 붙어 이 네모난 테이며, 이 유곽 속에서는 각각 9개씩 볼똑 솟아있는 도들꼭지가 있는데 이를 유두라 한다.

그 솟은 부분 주위에 꽃판이 있어 흡사 젖꼭지 모양과 같다고 하여 유두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유곽과 유두 또한 중국종과 일본종과 차이가 나는 것으로 한국종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이다.

< 비천(飛天)과 불보살상(佛菩薩像) >

비천상은 신라종에서 많이 나타나며 불보살상은 고려와 조선종에서 나타난다.

고려종은 꼬리 구름위에 놓인 연꽃 자리에 홀로 앉은 부처.보살의 모습이고, 조선종은 거의 대부분 연꽃위에 꼿꼿이 선채로 합장한 보살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비천상에서 불보살상으로 바뀐 이유는 부처님에 대한 강했던 신심이 옅어지면서 불상의 힘을 빌려야 했기에, 신심이 아닌 신앙의 힘을 빌어야 했기 때문이라 한다.

< 당좌(撞座)와 종의 몸매 >

당좌는 종을 치는 당목이 집적 접촉되는 부분이다.

당좌의 위치는 종의 소리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밑동에다 치면 소리는 크나 뒤섞여서 시끄럽고 깨어지기도 잘 하므로 가장 적절한 위치는 밑에서 1/3쯤이 좋다고 한다.

종의 몸매는 시대별로 차이가 있는데 신라종은 늘씬하게 길며, 밑으로 갈수록 천천히 배가 부르다.

2/3쯤에서 도로 안쪽으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고려종은 길이가 짧아져거 종의 밑인 종구의 지름과 키가 거의 1:1 에 가까워지며, 밑으로 갈수록 차츰 배가 부르다가 배부른모습이 거의 직선을 이루며 끝까지 나아간다.

조선종은 위에서부터 평퍼짐하게 선을 그리면서 내려오다가 끝에와서는 밖으로 벌어지는 꼴을 나타내고 있다.


6. 용뉴와 그 전래

 ①용뉴 - 한군종의 용뉴는 단용으로 형성되어 있으나 중국종 일본종은 쌍용으로 되어 있으므로 한국종과 외국종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한국종의 대부분은 용의 입 또는 발에 뚜렷한 여의주를 가지고 있다. 한국범종의 경우 각 종마다 용두형상이 다른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한국종의 용뉴형상을 5가지 형으로 나눌 수 있다.

 (제1형 - 용뉴가 역U자 형상을 함. 신로종에 사용된 용뉴의 형식임)

 (제2형 - 용뉴의 형상이 역U자 또는 때에 따라서 S자형에 근사한 형을 갖고 고려시대붙너 시작되어 제1형보다 훨씬 많다.)

 (제3형 - 용뉴는 역U자 또는 옆으로 된 S자형에 근사한 형식을 갖고 용의 앞발뿐만 아이라 뒷발도 갖고 있는 형식. 조선시대 대.중.소형 종에서만 볼 수 있다.)

 (제4형 - 용두가 저자세인 쌍용으로 용뉴가 구성된 형식. 조선시대 종에서 볼 수 있음.)

 (제5형 - 기타 형식으로 용뉴를 원형고리, 각형고리 또는 ‘ㄱ’형 등으로 만든 것. 고려시대 이후 소종에서 볼 수 있다.)

 ②용뉴의 유래 - 중국에서는 용뉴를 포뢰하고 하였다. 중국의 오랜 전설에 따르면 포뢰는 해변에 살고 있는 동물의 명칭으로 고래를 무서워하여 고래가 바다에서 접근하면 놀라서 큰 소리를 낸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연유로 종정에 포뢰를 붙여 이것에 고래형상의 타봉으로 타종하여 큰소리를 내게 한다는 것으로부터 유래한다.

 

7. 음통(음관)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

 ①중국의 고동기인 용종의 용을 모방한 것이다

 ②음률을 조절하는 음관의 역할을 한다.

 ③단순한 장식으로 붙여 둔 것이다.

 ④용뉴의 강도를 증가시키기 위한 역할을 한다.

 ⑤만파식적설.


▣신라시대의 종

1.신라 범종

 신라 범종은 한국 범종의 전형으로서 대표가 되고 기본양식을 갖춘 범종이다. 그러나 오늘날 남아있는 신라 시대의 범종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11구뿐이다. 국내에 남아있는 신라시대의 범종은 5구가 알려져 있는데 2구는 파손되어 완전한 것은 3구에 불과하고 일본에 건너간 신라시대의 범종은 6구가 알려져 있다.

  국내 소장 신라 범종

일본 소장 신라 범종

 725년 상원사 동종 소장 범종

 771년 봉덕사 성덕대왕 신종

 청주 박물관 소장 신라 범종(청주 출토)

 804년 선림원 범종(일명 월정사 범     종,6.25동란 때 소실되어 현재 파편 일부   국립중앙 박물관에 보관)

 실상사 파종 범종

 

 국부 팔번사 범종

 상궁신사 범종

 우좌팔번궁 범종

 주길신사 범종

 운수사 범종

 광명사 범종

 

 

2.신라 범종의 각부 문양의 특징

㉠ 종신

범종의 몸체는 한국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김칫독을 엎어 놓은 것과 같은 형태로 매우 안정감을 가지고 있으며, 종정에는 용뉴와 용통 , 즉 음관이 있다.

또 당좌 2개와 주악하는 비천상 2구를 상호 교대로 배치하였으며, 상대와 하대를 갖춘 것 외에 상대에 접하여 네 군데에 9유두를 구비한 유곽을 배치하고 있다. 종정의 천판은 연꽃잎을 둘러서 장식하고 있다. 이와 아울러 종신과 종구의 비례는 2:1 내지 1.5:1의 비율로 에 가깝게 이루어져 있다. 종신의 단명을 도면으로 작성하여 볼 때 신라 범종은 종구 쪽이 기차 레일처럼 얇아진다. 이것이 종정에 가까운 쪽으로 올라갈수록 다시  두껍게 되나 종구 쪽보다는 약간 덜 두꺼운 상태이다. 이와 같이 상하가 다른 주물법도 신라 범종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 용뉴와 용통(음관)

신라 범종의 종정에는 예외 없이 용뉴와 용통을 구비.

․용뉴- 용이 종정의 천판을 두 발로 힘차게 딛고 있는데 용두는 범종 전체를 물어서 들어 올리는 박진감이 있고 사실적이며 긴박감이 감도는 형태로 조각,  형태가 몸체를 역 U자형으로 솟구치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음 

․용통(음관)―몇 단으로 구분하여 화려한 당초나 보상화문 내지 연화문 등으로 외면을 장식해  화려함, 용통의 내부가 관통되어 천판과 통함 -일본의 화종과 다른 독특한 특징 중 하 나 중요한 점

㉢견대(상대)문양 

 ․ 주문양; 반원권 모양

 ․ 봉덕사 성덕대왕 신종, 일본 상국신사 소장 범종, 실상사 파종, 일본 운수사 소장 범종.일    본 광명사 소장 범종, 청주 박물관 소장 범종만이 다른 문양

 ․ 성덕대왕 신종-위의 다른 문양의 6구 중에 유일하게 보상 당초문으로만 주문양

               -같은 연대에 속한 다른 것에서 볼수 없는 특징

-고려 초기의 통화 28년명 천흥사 범종에서 찾아볼 수 있음

㉣유곽의 문양

 견대 문양과 동일하게 반원관 문양대를 주문양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고 통례이고

 그 중에는 보상 당초문, 천인상 ,천부상,화문 등으로 조식하는 이례적인 것도 있음

㉤하대 문양

 성덕대왕 신종 ,실상사 파종 ,일본 상궁신사 범종-보상 당초문과 파상문 조식

 다른범종 주문양-견대나 유곽대의 문양과 동일한 반원권 문양

 문양대 내부-주악상, 비천상, 연판문, 당초문, 유운문등을 사용하여 장식

 그러나 주류를 이루는 문양대-반원권 문양

㉥비천상의 형상

  상원사의 범종: 공후와 우(생)을 주악

  일본 국부 팔번사 범종: 횡적과 장고를 주악

  성덕대왕 신종:무릎을 꿇고 합장 공양

  선림원 출토 정원 20년명 범종: 횡적과 장고를 주악

  일본 상국신사 범종과 일본 우좌 팔번궁사 범종 :장고를 주악

  청주박물관 소장 범종: 비파 주악과 합장

  일본 광명사 소장 범종: 비파와 요고를 주악

  일본 운수사 소장 범종: 횡적과 요고를 주악

  일본 주길신사 소장 범종:*하늘에서 지상으로 하강 

  → 주길신사 소장 범종을 제외한 나머지 10구의 비천상-구름 위에 무릎을 꿇은 궤자상이

     거나 결가부좌한 상태로 천의를 날리며 악기를 들고 주악하는 비천상

    주악하는 비천상-종교적 교리와 배경 내지 사상적인 어떤 중요한 점 표현

㉦당좌

 종신에 비천상과 함께 대칭으로 2개의 당좌를 배치하고 있는 것 공식적인 수법이며 형태고 거의 같다. 형태는 당좌의 중심에 자방을 갖추고 주위에 여덟 잎의 연판을 배치하여 연판 외각에는 다시 당초문이나 보상화문을 두르고 외각선을 원형의 태선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신라 범종의 당좌 장식법의 통례이다.


∙전통적인 조형에 전형 양식을 갖춘 상원사 범종

∙특수 양식의 성덕대왕 신종

3.신라의 대표적 범종

 ㉠ 상원사 범종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상원사)

    국내에 현존하는 신라시대 최고, 최미의 범종으로 한국 범종의 조형인 동시에 규범이

    되는 종이다.  종정에는 용뉴를 구비하고 종신에는 견대와 하대, 유곽, 유두, 당좌, 비천

    등을 갖춘 한국 범종의 가장 뚜렷한 특징을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다.

    종신에는 견대와 구여대가 있어 상하가 긴박한 느낌을 준다. 또한 상하로 연주문대를

    둘린 다음 유려한 당초문으로 채우고 , 드문드문 1인 내지 4인의 낙천을 양각한 반원권      을 둘렀으며, 견대에 붙여서 당초문을 양각한 유곽 구를 두고, 그 안에 각각 연화무늬      를 새긴 유두가 9개씩 솟아 있다. 종신 공간에는 서로 마주 대하는 두 곳에 구름 위에      서 무릎을 세워 하늘을 날면서 공후와 생을 주악하는 비천상이 양주되어 있다. 정상에   는 용뉴와 원통음관에 붙어 있으며, 발은 위 꼭대기에 버티고 이다.

 용뉴 좌우에 종명이 음각되어 있어 주성 연대가 725년(신라 성덕왕24)임을 알 수 있다.

 이 종이 주성된 후 어느 절에 소속되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영가지에 의하면 경상북도

 안동누문에 걸려 있던 것을 1469년에 왕명에 의하여 현재의 상원사로 옮겨온 것으로 되어

 있다.

 ㉡ 봉덕사 성덕대왕 신종( 국립경주 박물관)

 현재 국내에 있는 종 중 최대의 신라 거종으로서 제작 연대, 주종 의도 그리고 불법을 포   교하게 된 내용 등을 명기하고 있다. 도한 각부 양식이 풍부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범종의   하나이며 상원사 범종과는 다른 특징이 있는 특수 양식의 범종이다.

 종의 입둘레는 팔능형이고 종머리에는 용머리와 음관이 있다. 특히 음관은 우리나라 종에서만 볼수 있는 구조로서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한다고 한다. 종 몸체 상하에는 견대와 구대가 있고 견대 밑 네곳에 유곽이 있고 유곽 안에 9개의 유두가 있다. 몸체의 좌우에는 신종의 내력을 적은 양주 명문이 있으며 앞 뒤에는 두 개의 당좌가 있고 , 유곽 밑 네곳에는 구름을 타고 연화좌에 앉아 향로를 받는 공양천인상이 천의 자락을 휘날리고 있다.


▣고려시대의 종

고려시대의 범종

1.시대적 배경: 고려시대에는 불교를 국교로 삼게 되면서 국가정책으로 불교를 사회의 밑바닥까지 침투시키고 왕조의 주류적 사상을 이루게 하였다. 불교 자체도 초기의 불교와는 달리 후기에 이르러서는 의식 불교화되고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불교로 변함에 따라 범종의 제작도 불사(佛寺)자체에서 행하게 되어 대량으로 공급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상의 변화로 범종의 공급이 확대되고 크기와 형태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한 절에 대종(大鐘)1구만 있던 신라시대와는 달리 각종 의식 때마다 대․소․전각이나 여러 승방에서 타종하기 위한 중 소종들이 많이 조성되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종의 반 이상이 고려 종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알려주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개인이나 국립 기관 내지 공공 기관에 소장되어 오는 고려 범종의 수는 대략 74점에 이르며 일본의 23점을 합해 총 97점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변화된 고려범종에 대하여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살펴보면 국내에 있는 74점중 11점은 전기에 속하는 것들이고 나머지 63점은 후기에 속하는 것들이다.  

2.고려 범종의 특징

1)일반적 특징

ㄱ.신라 종보다 종구가 더 벌어지고 종신이 작아져 전체적으로 신라 종처럼 늘씬하지 않고 안정감 있는 모양

ㄴ.종신의 상부인 어깨 부분에 신라 종에 없던 장식이 새로 첨가되는데, 이것을 연꽃잎이 세워져 있다 해서 입연대라 한다.

ㄷ.종의 몸체에는 비천대신 불보살상이 단독 또는 삼존 형태로 새겨지거나 신장상들이 새겨지기도 한다.

ㄹ.신라시대에는 당초문 일색이던 상하대의 무늬가 고려 때는 번개 무늬나 국화 무늬 같은 다양한 무늬들이 새겨지고 있다.

ㅁ.용뉴의 용입이 종상부에 붙던 신라식과는 달리 머리가 떨어져 있고 입에 물던 여의주는 발이나 음통위에 올려지기도 한다.

ㅂ.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는 신라 때 2개이던 것이 4개로 많아지고, 크기도 작아져 장식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2)시대별 특징

견대위에 입상화문대(입연대)가 나타나는 1150년대를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를 나누는 것이 보통.

전기

전기1기(918~1050년)

대체로 신라 종 양식이 강하게 남아 있으면서도 부분적으로 변모를 일으키고 있다. 종 어깨의 입연대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비천 대신 공양자상이 표현되고 명문을 위패형으로 구획하는 등 새로운 고려양식이 등장하는 것이다.

대표종: 천흥사 범종

전기2기(1050~1170년)

보다 고려적인 전통이 세워져 새로운 양식적 특징이 전개된다. 그 가운데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어깨에 장식된 입연대의 출현으로, 이전까지 어깨 위에 부조로 새겨져 있던 연꽃이 갑자기 세워지면서 서 있는 연꽃띠로 변형되고 있다.

후기

후기1기(1170~1270년)

고려 후기의 제1기 범종들은 앞 시기보다 더욱 화려해진다. 어깨의 입연대는 이제 뚜렷이 돌출되었고, 불․보살상과 당좌는 4구가 보편화되었으며 용의 여의주는 발 위나 음통 위에 올려지는 등 더욱더 장식화된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종: 내소사 범종

후기2기(1270~1392년)

고려 후기 제2기의 1세기 간은 앞 시기의 양식과 유사한 종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파격적인 종 형태와 결박형의 중국 종 형태도 몇 개  보이고 있어서 세 형식의 범종 특징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3)고려 범종의 각부 특징

종신(鐘身)

신라의 범종신은 종구와의 비율이 거의 2:1에 가깝고 고려 전기 범종은 이와 같은 비율을 답습하여 전통을 이어온다. 그러나 후기 범종에 이르러서는 왜소해지는 동시에 종구가 넓어져서 종신과 종구의 비율이 거의 1:1로 나타난다.

용뉴와 용통(음관)

고려 범종은 전후기를 막론하고 용체가 장식적인 면에 치우쳐 S자형으로 휘어지게 표현하였다. 또한 여의주는 한 발 또는 양발로 잡고 있는 형태이다. 용통 곧 음관은 신라 범종이 몇 개의 단으로 구분되고 표면이 화려한 당초나 보상화문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고려 전기 범종은 이와 유사한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후기로 내려올수록 용통 표면이 형식적이고 도식화된 문양으로 처리되거나, 용체에 나타난 화염문과 같은 장식법으로 처리되어 있다. 또한 용통의 정상부에는 소주나 여의주같은 것으로 주연 위를 두른 것이 고려시대의 모든 범종에 나타나고 있어 신라 범종과 구별되는 새로운 장식법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범종 정상의 연판(蓮瓣)

신라 범종과 고려 전기 범종에서는 정상인 천판 주연위에 화려한 연판이나 도식화된 연판을 두르고 있으나 고려후기 범종, 즉 1150년대인 12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한결같이 연판이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 입상의 화문대를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견대,하대,유곽

신라 범종의 견대, 하대, 유곽대는 반원권 문양을 주문양대로 하면서 당초문이나 보상화문을 장식한 것이 거의 통례로 되어 있다. 고려 범종은 전기에는 이와 같은 장식법을 그대로 전승하여 평범한 당초문 또는 보상화문 반원권 문양대를 혼용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던 것이 후기에 들어와서는 다양한 문양을 도입하여 서로 다르게 장식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유두와 명문

신라범종의 유두는 하나같이 연화좌에 돌기된 전형적인 화려한 돌기유이며 유두 자체도 화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고려 전기 범종도 이런 장식 수법을 유사하게 따르고 있으나 신라시대의 범종에서보다는 도식화된 수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이 후기 범종에 이르러서는 더욱 퇴화되어 거의 약식화되고 형식화된 화좌 유두로 배열되어 있다. 또한 범종 몸체의 명문이 신라는 주종 때 양주로 하여 나타내고 있으나 고려에 이르러서는 몇 개의 전기범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후기 범종은 각자 명문으로 음각하고 있다. 특히 전기 범종에서는 중국의 연호를 쓰고 있으나 후기에 들어와서는 점차 연호 대신 간지로만 표현하고, 그 내용도 개인의 기복적인 뜻이 담긴 명문이 상당수 발견되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당좌와 비천상

신라 범종과 고려 범종이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좌와 비천의 표현법에서이다. 고려 전기에 들어와서는 비천이 각 1구씩으로 되어 합장한 형태로 나타나고 또 보살상과 혼용하여 배치하고 있다. 고려 후기에는 당좌의 배치와 동일하게 4개소에 4구의 보살상이나 여래상을 배치하고 있는데 이것이 중요한 점이라 할 수 있다. 즉 신라범종이다 고려 전기 범종들에서는 비천상과 보살상이 각각 독립되거나 혼용으로 장식되었던 것이 후기 범종에 이르러서는 두광, 신광을 갖추고 연화좌에  결가부좌하거나 궤좌하고 합장한 보살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점은 신라에서 고려전기까지는 화엄사상을 표현하던 것이 후기에는 천태종의 밀교적 영향과 의식 불교에 따른 특징으로 생각된다.(무신난이 발발하면서 교종보다 선종 불교가 사회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시대가 전개)


▣조선시대의 종

조선시대의 범종

1.시대적 배경: 고려의 범종은 전기 양식과 후기양식으로 구분되었다. 그러나 고려말에 이르러 중국 종의 양식이 이 땅에 들어와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이런 양식과 형태가 조선조 범종 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조선왕조 특유의 범종 형태와 양식이 나타나게 된다. 조선시대의 범종에 대하여 일설에서는 고려범종의 형식을 계승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려왕조가 멸망하면서 전통적인 한국 범종의 수법을 답습 전승하는 외에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들여 개성 연복사 종처럼 중국 범종의 규범과 혼합된 형식의 범종이 출현하게 된다고 보는 일설도 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1592년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왕조 특유의 중국 범종을 모방한 범종이 출현하게 된다고도 한다. 이러한 설들 중에서 공통되는 점은 조선시대의 범종이 신라나 고려 범종의 기본 양식과 형태를 계승하면서도 전체적인 규범으로 볼 때 중국 범종의 형태를 전반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2.조선 범종의 특징

1)일반적 특징

ㄱ.단용 용뉴가 쌍용으로 변화되고 용통이 없어진 대신 종정의 천판 중앙에 단순한 (원공圓空)으로 변하였고 또 상대나 하대를 평범한 모란문, 국화문 등 초화문이나 범자대문(梵字帶文)으로 장식하고 있다.

ㄴ.상대에 붙어 있는 4개의 유곽을 독립되게 배치하고 유곽내의 9유도 역시 도식화된 화좌유(花座乳)로 처리하고 있다.

ㄷ.몸체에 표현한 비천상이나 좌상의 보살상 대신 두광과 보관을 갖추고 몸에 잡다한 장식을 하고 양손에 연꽃이나 다른 지물 등을 들고 있는 보살 입상을 2구 내지 4구씩 배치하거나 아니면 범자로 대신 장식하고 있다-전통계승

ㄹ.간결하게 양주(陽鑄) 또는 각자(刻字) 했던 명이 장문화하고 시주자의 이름까지 열거하는 잡다한 것으로 바뀌었다.

2)시대별 특징

 전기는 고려시대의 여운을 엿볼 수 있는 시기로 그 유래를 보이고 있다. 규모도 거대한데, 이것은 당시 불교를 보호한 왕실과의 관계서 주성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흥선사동종, 봉선사대종, 낙산사동종 등이다.

 후기에는 고려의 여운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전란으로 인하여 오랜 전통이 단절되고 조형미술은 전반에 걸쳐 새로운 방향을 찾게되었다고 한다. 후기의 범종은 100구가 넘게 남아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전시대를 통하여 가장 많은 수이다. 후기의 범종들은 대개가 주성연기가 있어 절대연대를 알 수 있는데 모두 청나라의 연호(강희.건륭)를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광사숭정 7년 명동종, 직지사순치 15년명동종, 통도사강희25년명동종, 범어서웅정 6년명동종, 영국사건륭26년명동종 등이 있다.

시대별로 보면,

14세기말경부터 16세기 중엽까지 : 신라나 고려 범종의 양식을 갖추면서도 약간의 변화를 보인것과, 중국 범종의 형태와 양식을 완연히 갖추고 나타나는 두 개의 큰줄기로 구분.

대표종: 천흥사 범종

16세기말이후 : 본래의 한국 범종 형태나 양식을 상실한 중국 범종의 모방 형식을 거의 따르고 있는 변질적인 형태.

대표종: 내소사 범종

 이로써 조선시대의 범종은 말기에 이를수록 본래의 양식과 형태 그리고 중국 범종의 형태와 양식 등을 상실한 이형(異形)의 형태와 양식으로 변질되어 본래 한국 범종의 아름다움을 완저히 상실하게 된다.

3)조선 범종의 형태와 양식

조선 전기 범종들의 형태와 양식 수법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종신의 단면은 견부의 곡선을 제외하면 거의 장방형으로, 정상에는 쌍두의 용뉴가 있어 이 동체로 종을 매달게 하였다. 그리고 원주형의 용통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는데, 해인사동종과 같이 용통대신 하나의 원공을 시공하고 있는 예도 있다. 견부에는 복련대가 돌려졌으며, 복련장식의 견대가 있을 때에는 그 밑에 범자열을 돌려서 상대를 표시하고 있다. 한편, 범자의 양주는 고려시대보다 더욱 성행하였다.

4개의 유곽은 윗변의 상대에서 떨어져서 완전하게 사다리꼴을 이루고 있으며, 유곽 사이 사이에는 1구씩의 보살상을 배치하고 있다. 종신의 중앙부에는 굵게 조각된 중대가 양주되고, 명문은 종신 전면에 새겨져 있는데 모두 해서로 양각되었다. 하대는 하단에서 약간 떨어진 윗부분에 마련되었고, 그 하대의 하선밑으로 하단에 이르기까지는 약간 두드러져 무문대를 이루고 있다. 당좌는 마련되지 않아서 종신 하대부의 무문대를 두드려 타종 하였기 때문에 그 흔적이 완연하다.

종의 구연부는 주물의 두께가 두툼하고 이 위의 종신부로 올라가면서 얇아지는 느낌을 주는데, 이것은 곧 한국 범종의 고유한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일면이라 하겠다.

조선 후기의 범종은 100구가 넘게 남아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전 시대를 통하여 가장 많은 수이다. 그런데 이들 후기의 범종들은 대개가 주성 연기가 있어 절대연대를 알 수 있는데 모두 청나라의 연호를 사용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보아 강희, 건륭 연간에 만들어진 동종이 많은데, 이것은 특히 '영,정조시대'라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아울러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후기의 범종은 전기와 같이 규모가 큰 작품이 없고 장식 문양에 있어서도 더욱 치졸하여졌음을 볼 수 있는데, 이 시기의 대표적인 범종으로는 보광사숭정7년명동종(1634,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영장리), 직지사순치15년명동종(1658, 경상북도 금릉군 대항면 운수리), 통도사강희25년명동종(1686, 경상남도 양산군 하북면 지산리), 범어사옹정6년명동종(1728, 부산직할시 동래구 청룡동), 영국사건륭26년명동종(1761,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등을 들 수 있다. 이 5구의 범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이 직지사 종으로 높이가 1.5m이고, 통도사종은 1.47m이며, 보광사종은 65cm이다. 역시 전기에 비하여 훨씬 규모가 작아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의 범종들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조형과 문양을 보이고 있다. 즉, 종신의 단면은 거의 장방형이거나 정상부에는 쌍룡두의 용뉴가 있으며 용통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견부에는 연화문이나 또는 범자가 돌려져 있으며, 상대에도 대체로 범자가 돌려져 있다. 사다리꼴 모양의 유곽이 4좌 배치 되었는데 그유곽의 사이사이에는 4구의 보살상이 배치 되어있다. 종신 중앙부의 굵게 조각된 중대는 생략되었으며, 명문은 양각 또는 음각되었거나 점선으로도 새겨져 있다.

하대는 대부분 구연부에 표시 되었거나 생략되었고, 당좌가 없으므로 하단부에 타종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종의 구연부의 형태나 촉감은 고려시대와 같은데, 두께가 두툼하고 종신부의 위로 올라가면서 얇아지는 느낌을 주는 우리나라 고유한 특성을 본받고 있다고 하겠다.


▣비천상과 불보살상 그리고 종의 주조와 음률

< 비천상과 불보살상 >

1. 각 시대별 특징

  1) 신라시대

주길신사 소장 범종(하늘에서 지상으로 하강하는 비천상)을 제외한 나머지 신라시대 10구의 범종에서 보이는 비천상들은 구름 위에 무릎을 꿇은 궤좌상이거나 결가부좌한 상태로 천의를 날리며 악기(공후, 생, 횡적, 장고, 요고, 비파 등 )를 들고 음악을 연주하는 비천상들이 나타난다. 2개가 서로 대칭으로 2개소에 배치되어 있다.

  2) 고려시대

 천흥사 범종을 제외한 고려범종들의 천인상 대부분은 구름 위에 연화좌에 1구 또는 삼존의 좌상으로서 천개를 구비한 보살상이거나 여래상들이다.

고려전기는 비천이 각 1구씩 되어 합장한 형태로 나타나고 또 보살상과 혼용하여 배치하고 있다.

고려후기에는 당좌의 배치와 동일하게 4개소에 4구의 보살상이나 여래상을 배치하고 있는데 이것이 다른 시대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즉 신라범종이나 고려전기범종들은 비천상과 보살상이 각각 독립되거나 혼용되어 장식되어져 있었는데 고려후기 범종에 이르러서는 두광, 신광을 갖추고 연화좌에 결가부좌하거나 궤좌하고 합장한 보살상으로 나타난다.

  3) 조선시대

두광과 보관을 갖추고 몸에 잡다한 장식을 하고 양손에 연꽃이나 다른 지물등을 들고 있는 보살 입상을 2구 내지 4구씩 배치하거나 아니면 범자로 대신 장식하고 있다.


2. 변화 원인

     비천상이 고려시대부터 변화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불교사상의 변화때문이다.

신라시대를 이끌어 나간 불교사상은 의상대사에 의한 화엄종이다. 화엄사상에는 지상설법과 천상 설법의 두가지가 있는데 화엄경에 의하면 천상 설법 표현 중의 하나가 바로 천인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범종에 표현한 주악 비천상들이 천상 설법의 하나인 천인상으로 표현된 것이다. 비천은 불교의 천국에서 허공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고, 춤추면서 꽃을 뿌려 부처님을 공양찬탄하는 천인의 일종인데, 비천의 모습에서  비천의 자유롭고 환희에 찬 행동과 울려 퍼지는 미묘한 음악 소리를 느끼며, 또한 비천이 비행하는 불국 정토의 정경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범종의 비천상도 부처님과 불국정토에 대한 공경심과 환희심의 구상적인 표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고려시대로 넘어가면서 시대를 풍미한 불교는 의천에 의한 천태종으로 변화하게 된다. 고려 불교는 후기에 들어서 점차 대중화되고 의식 불교로 변모되면서 의례를 중요시하는 밀교적 영향을 띄게 된다. 밀교에서는 천인과 보살을 동일하게 보는데 이와 같은 영향이 고려범종 중 후기에 속하는 범종에서 한결같이 비천상 대신에 염불행자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연화좌위의 두광, 신광을 갖추고 합장한 보살상으로 표현된 것이다.


< 종의 주조 >

1. 주조 방법

- 정확한 기록의 전래나 전수가 전혀 없어 연구자들의 막연한 추측으로 판단되어진다.

  1) 종의 설계

     기술과 경험을 쌓은 장인이 종의 규모에 따라 구체적인 형상과 단면치수를 작성한다. 예를 들면 중량에 따라 구경치수, 종신고 높이, 음관(용통) 높이, 두께, 상대, 하대, 당좌크기와 위치, 비천상의 형상, 용두 조각 및 기타치수를 결정한다. 또한 구상된 각부위의 문양을 도면화한다. 이와 더불어 종제작에 필요한 모형 조각, 주형제작법 및 합금 용해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과 전체 종제작을 관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2) 모형 및 문양 조각

종을 만들기 위한 모형에는 종내부 코어 (알, 또는 알심) 형상을 만드는 모형, 외부 형상을 만드는 모형, 그리고 용두 및 종의 문양을 찍어서 만드는 지문판 모형 등이 필요하다. 이들 모형의 종류에는 종의 기본이 되는 모체부의 내외 형상에 사용되는 회전모형, 종의 문양형상 표현에 필요한 지문판, 유두부를 위한 분할형, 음관이나 섬세한 문양을 위한 밀랍형 등이 쓰였다.

3) 주형 제작

주형이란 쇳물을 용해시켜 주입할 거푸집을 일컫는 것이다. 주형은 내면을 만들 내형과 외면을 만들 외형으로 크게 나뉘고 외형은 다시 상형과 하형으로 구분하여 만든다.

- 종 내형

불을 지펴 건조할 수 있게 한 구멍위에 내형을 만들 평평한 하대위에 내형을 만든다. 알인 내형은 대나무 또는 싸리나무를 새끼로 단단히 엮어 골격을 만들든가 또는 철봉으로 골조를 만들고 그 내부는 텅비게 만든다. 그리고 그위에 볏집을 혼합한 진흑으로 벽체를 바르고 반건조상태에서 그림과 같이 내형인 회전모형을 돌려 알틀을 만든다.

- 종 외형

외형은 상형,하형의 2개 또는 중형까지 3개의 주물상자를 조립한다.

주물상자 내부는 대나무나 싸리나무 또는 가는 철봉으로 골조를 만들고, 여기에 벽체용의 흙또는 주물사를 발라 굳기전에 회전판을 돌려 윤곽을 잡는다. 종 외형인 하형 내측에는 만들어진 지문판을 사용하여 상대, 하대, 유곽, 당좌, 비천상 등의 지문의 양각을 압입하거나 매설한다.

종의 상형은 평평한 면으로 흙을 다지고 그 위에 상부 주형상자를 놓고, 주물상자내의 골격에 진흙을 발라 만든다. 중심 위치를 정한 후, 천판용 모형을 놓고 그 위에 용두와 음통을 놓고, 밀랍형의 용뉴과 음통에 내화점토를 바르고, 쇳물아궁이봉, 덧쇳물봉을 세운 다음 주물사로 다져 상형을 만든다.

3) 주형의 조립

 이미 만들어진 주형들의 표면 도표 작업 후 구멍(움)을 하고 온돌과 같이 연도를 만들어 이 우선 내형 알 하부 주위를 다듬고 외형 조립 맞춤위치 표시선을 그은 후 하형과 상형의 조립하고 견고하게 고정한다. 그 후 청동쇳물을 주입한 후 3~5일이 지나면 구멍에서 종을 들어내고 빼내어 완성된 종으로 다듬질한다.

그림의 g가 쇳물 투입구이다.

-> 이것은 신라의 주조방식이고, 고려는 용뉴와 을통 별도로 주조하였다고 한다. 즉 본체를 만든다음 쇳물이 어느 정도 식어할 때 용뉴의 음통을 끼워서 만들었다고 한다.


< 종의 음률 >

1. 종소리

보통 종소리는 시간에 따라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는 종을 친 후 약 1초 동안 나는 소리로 '타음'인데 이 음에는 수많은 부분음이 포함된다. 두번째 부분은 종을 친 후 10초 동안 지속되는 비교적 높은 소리로 매우 멀리에서도 들리는 '원음'이다. 다음 셋째 부분이 소리의 여운으로 약 1분 이상 계속된다. 이 중 여운은 종소리를 특징짓는 대표적 소리다. 여운은 맥놀이 현상때문에 생긴다. 맥놀이는 서로 근접한 주파수, 다른 말로 하면 비슷한 진동수 2개가 조화 진동해 합성된 진동의 진폭이 주기적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이 때 합성진동의 최대 진폭은 당연히 두 성분 진동의 진폭의 합과 같고 최소값은 두 차와 같아진다. 맥놀이는 소리가 가장 적은 에너지로 가장 멀리 가게 하는 효과를 가진다.

2. 종소리를 결정짓는 요인들

종소리가 좋다는 것은 타음의 음색과 음량, 원음, 맥놀이, 여운 등을 총괄하는 말이다. 종의 음질은 종의 재료, 주조 방법, 열처리 조건, 당좌의 위치, 음통, 명동, 종을 치는 당목의 재질과 질량, 치는 방법에도 관계된다.

3. 음통

한국범종의 가장 큰 특징이며, 어떤 목적으로 존재하는지 명확한 결론이 없어서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명칭도 음관, 용통, 원통, 음통, 만파식적 등 다양하다.

 아직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여러 학자들의 추측과 연구, 조사에 의한 추측이다.

    1) 만파식적에서 유래

신라시대의 국보인 만파식적을 범종의 종정에 도입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만파식적은 본래 대나무로 만든 피리인데 , 이 피리에 장식화된 문양을 만들어 종정에 도입한 것이 신라 범종의 원통의 유래한다는 학설이다.

   2) 음관의 역할

한국종의 음통길이를 변화시키면서 실험해본결과 신라종의 음통의 길이는 범종의 음향 확대보다는 오히려 음향 필터의 역할이 중요한 기능이라는 주장이 있다. 즉, 음통이 종내의 소음과 잡음을 감소시키는 음관의 역할을 한 것이라는 학설이다.

  3) 종의 지주역할

음통은 용두와 더불어 범종을 지지하는 지주역할에 쓰였다는 학설이다. 실제 신라종의 천판상에서 용두는 종정에 극히 일부분이 약간 접촉되어 있으므로 용두하부측에서는 종의 하중을 지탱할 수 없으므로, 종의 무게를 지탱하는 것은 원통이 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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