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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고구마, 그리운 할머니

군고구마, 그리운 할머니 아침 학교 가는 길 큰 산 아래 돌아 동네 우물 옆 간밤에 쌓인 눈 깊숙이 생고구마 한 개 묻어놓고 공부시간 내내 행여 눈 녹아 다람쥐 물어 갈라 안절부절 눈 쌓인 언덕길 엉덩이 미끄럼틀삼아 눈보라 일으키며 온몸으로 내려와 눈 속에 손 쑥 집어넣어  언 고구마 꺼내 들고는 혀로 껍질 녹이고 시린 이로 갈아 내며 집 마당까지 한 입도 베지 못하였네.   손자의 언 입술 보시던 할머니 따뜻한 두 손으로 얼굴 감싸주시며 “안방 화로 재아래 군고구마 넣었다.”  첫눈 수북이 내려 할머니 군고구마 그리운데 어찌 알았는지 속 깊은 팬에 고구마 넣어 가스불에 올리는 마누라 있네. 고구마 구워지는 냄새에 할머니 얼굴 떠오르는구나. 오늘 손녀들 온다하여 만든 거니 ‘한 개만 먹으라’는 마누라 성..

함박눈 내리면

함박눈 내리면 마른 잎 가득한 겨울 평원에 함박눈 내리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들판의 짐승도 하늘의 새도 속세의 인간도 짐짓 발자욱 남기기 망설여 설원엔 시간의 흔적이 없다. 너울 밀려오는 바닷가에 함박눈 내리면 세상의 모든 소리가 눈 속에 묻힌 듯하다. 파도 부딪는 바위의 울림도 포말 속 모래의 부딪침도 먹이를 찾는 갈매기 울음도 소리 없이 쌓이는 눈에 모두 덮여진 듯 바람조차도 숨을 죽인다. 세상이 잠든 눈밭에 달빛 내리면 달빛은 눈 위에 녹아들고 눈밭은 푸르스름 달빛으로 변한다. 달빛 스민 눈엔 번뇌마저 녹아들 듯하다. 도시엔 눈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시의 눈엔 세상의 온갖 잡티가 다 섞여 내리는 것 같다. 도시의 발에 마구 밟히고 소금에 절여지며 천덕꾸러기로 버려진다. 그래도 눈이 오면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