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신라의 종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실상사 파종

korman 2007. 3. 25. 14:14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실상사 파종

 

 

 

 

 

출처 : 동국대학교 박물관 유물검색페이지 2017년 3월 1일 현재

       http://210.94.204.227/kor/tlsch/showdetail.jsp?vcode1=PS01005011002&vcode2=000068&vcode        3=000&chgname=%C1%BE&curPageNo=1

 

==========================================================================

 

2007년 3월 25일 발췌

 

 

 

 

실상사 파종

 

통일신라, 청동, 전체높이 99.0cm, 입지름 98.0cm, 동국대박물관


1969년 3월 지리산 실상사에서 출토되었다. 발굴 당시부터 상반부는 망실된 채 하대, 비천상, 당좌 등 하부만 남아있으나 연곽의 일부도 조금 남아있어서 종 전체의 크기와 연곽의 문양을 추정하고 있다. 종 전면은 부식으로 녹청색을 띠고 있다.
비천상은 구름 위의 연화좌에 결가부좌하고 있는데 오른쪽은 피리, 왼쪽은 생황을 받들고 있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상반신에는 천의를 걸치지 않은 채로 목걸이 등의 장신구를 하고 있다. 당좌는 종의 앞뒤로 각 1좌씩이 있으며 내부에 자방이 14과果가 있고 8잎의 연꽃무늬와 보상화무늬로 구성하였다. 하대는 당초무늬로 장식하였는데 당좌와 비천 아래쪽의 하대 내부에는 당좌와 동일한 2중의 연꽃당초무늬 원좌圓座를 높게 부조하였다.

 

2007년 3월 25일 현재2014년 3월 2일 수정보완http://www.jikjimuseum.org/Gallery_200407/product/UnifiedSilla/04.asp

 

통일신라시대의 범종. 높이 28∼99㎝, 입지름 96∼99.5㎝.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1967년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실상사에서 발견되었는데, 발견 당시 이미 상반부를 잃어서 파종(破鐘)으로 남아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유곽(乳廓)·비천상(飛天像)·당좌(撞座) 등이지만 우수한 수법을 볼 수 있다. 하대(下帶)는 아래위에 가는 연주문대(連珠文帶)를 둘러 장식하고 그 안에는 당초문대(唐草文帶)를 정교하게 조각하였는데, 당초문 속에는 비천상과 당좌 바로 아래에 원형문(圓形文)이 있어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의 양식과 비슷하다.

 

종신(鐘身)에는 서로 마주보고 있는 2구의 주악비천(奏樂飛天)과 당좌가 배치되어 있다. 당좌는 중앙에서부터 연꽃·인동화문(忍冬花文)·연주(連珠)의 순으로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또, 주악상은 구름 위에서 천의(天衣)와 영락(瓔珞)을 위로 날리고 있는 형식이 성덕대왕신종과 상원사동종(上院寺銅鐘)을 연상하게 한다.

 

생황(笙簧)과 피리를 불고 있는 비천의 풍만한 모습은 신라불상의 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 종은 남아 있는 부분의 입지름으로 보아 상원사동종보다 약간 큰 규모였으리라 추정되는데, 실상사의 창건때인 828년(헌덕왕 3) 함께 주조되었다고 생각된다.

 

출처 : 엠파스백과 2007년 3월 25일 현재

 

===================================================================================

 

2006년 4월 13일 발췌

 

 

 

실상사파종

1. 소재지   서울 동국대학교 박물관
2. 형식과 규격  현존  높이 28~99cm, 입지름 96~99.5cm.   일반형동종
3. 연  대   통일신라 9세기 경
4. 세부구조

종정부(鐘頂部)
용뉴(龍紐) 및 용통(甬筒)은 제작에 실패한 종이라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없다.  

종신부(鐘身部)

문양대(文樣帶)  상대는 없어지고, 유곽대  의 극소 부분이 남아 있는데, 이음구슬무늬(연주문:連珠文)를 두르고 안에는 보상화문(寶相華文)을 조각한 것을 알수 있다. 하대는 상하에 이음구슬무늬를 두르고 그 사이에 당초문을 돋을새김하였고, 당좌와 비천상 바로 아래 위치에는 성덕대왕신종처럼 당좌와 비슷한 둥근문양을 두었다.   

종신(鐘身)에는 2구의 비천주악상이 횡적(橫笛)과 생(笙)을 연주하며 구름 위 연화좌에 앉아 있는데, 천의(天衣)와 영락(瓔珞)을 위로 날리고 있는 비천의 풍만한 모습은 상원사동종?성덕대왕신종과 같은 신라 비천상의 분위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당좌는 중앙에 무늬없는 8엽의 연꽃무늬를 두고 그 주위에 인동당초문(忍冬唐草文)이 있고 다시 이음구슬무늬가 차례로 표현되어 있다.

5. 종합이해
  
1967년 전북 남원의 실상사(實相寺)에서 발견된 파종(破鐘)으로, 주조(鑄造)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유곽?비천상?당좌 등이 현재 남아 있는데, 입지름으로 보아 상원사동종 보다 조금 큰 것으로 짐작된다. 신라 범종의 양식을 착실히 다르고 있는 우수한 기법이 보이는 작품이다.
출처 : 한국역사문화기행회
 |  글쓴이 : 박진사 원글보기
  2006년 4월 13일 현재

============================================================================

 

실상사(實相寺) 파종(破鍾) (2-3)

 

소재지(所在地) : 서울특별시(特別市) 중구(中區) 필동(筆洞) 동국대학교(東國大學校) 박물관(博物館)
연 대(年 代) : 9세기경
지정번호(指定番號) :
크 기 : 높이 현고(現高) 99cm 현구경(現口徑) 101×99.5cm


이 파종(破鍾)은 1967年 3月 29日 전북(全北) 남원군(南原郡) 산내면(山內面) 소재(所在) 실상사(實相寺) 경내(境內)에서 발굴(發掘)된 것으로 1967年 『고고미술(考古美術)』 8∼4號에 황수영박사(黃壽永博士)가 소개(紹介)한 바 있다. 불행(不幸)하게도 이 파종(破鍾)은 상면(上面)이 파손(破損)되어 전체(全體)의 형태와 견대(肩帶)․용뉴(龍鈕)․유곽(乳廓)․유두(乳頭) 등의 각부(各部) 양식(樣式)을 알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종(鍾)의 하부(下部)만이 잔존(殘存)하고 있어 이를 근거삼아 살펴
보더라도 명문(銘文)은 발견할 수 없다. 종신(鍾身)에는 2구(軀)의 비천상(飛天像)이 운상(雲上)의 연화좌(蓮華座)에 結跏趺坐하여 천의(天衣)를 날리며 승천(昇天)하는 상(像)으로서 1구(軀)는 횡황(橫笛)을, 또 1구(軀)은 생(笙)을 주악(奏樂)하는 상(像)으로 되어 있다. 당좌(撞座)는 상원사종(上院寺鍾)과 유사(類似)한 것으로 중앙(中央)에 팔판소문(八瓣素紋)의 연화문(蓮華紋)을 두고 그 주위에 인동당초문(忍冬唐草紋)을 돌렸고, 바깥부분에는 섬세한 연주문대(連珠紋帶)를 주회(周廻)시킨 원형(圓形) 당좌(撞座)이다. 하대(下帶)인 구연대(口緣帶)에는 상하단(上下段)에 연주문대(連珠紋帶)를 조식(彫飾)하고 주문양(主紋樣)은 당초문(唐草紋)으로 양각(陽刻) 조식(彫飾)하였다. 특히 주목(注目)되는 점은 각(各) 당좌(撞座)와 비천상(飛天像)들의 직하부(直下部)에 4個의 당좌(撞座)와 동일한 원형문(圓形紋)을 주문양대(主紋樣帶) 속에 첨가․배치(配置)하고 있는 것이 봉덕사종(奉德寺鍾)의 하대(下帶) 문양대(紋樣帶)에서 보이는 것과 유사하다. 범종(梵鍾)의 전체적(全體的)인 양식(樣式)과 수법(手法)이 선림원지(禪林院址) 출토(出土) 정원입년명(貞元卄年銘) 범종(梵鍾)과 흡사한 점을 많이 발견(發見)할 수 있어대략 9세기경에 속하는 작품(作品)이 아닌가 한다.

 

출처

 

1996년 12월

국립문화재연구소장(國立文化財硏究所長) 김 동 현(金 東 鉉)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