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진회색의 순천만, 그 탐방로를 따라

korman 2009. 5. 28. 00:36

 

 

 

진회색의 순천만, 그 탐방로를 따라

 

  

비구름은 모두 산골짜기를 타고 모이는지

산자락을 돌때마다 진한 운무에 섞여 빗줄기가 굵어지고

고속으로 달리는 트럭은 도로의 빗물을 혼자 치우려는 듯

내리는 비를 모두 쓸어 작은 차들을 물보라 속으로 가두어 버린다.

드라이브의 참맛은 고속도로보다는 국도나 지방도에 있지만

내비게이션에 길을 물으면 우선 고속도로를 위주로 안내한다.

언젠가는 자연을 탐하며 제주의 올레를 걷듯이

그렇게 느린 여행을 해야겠다 생각하면서

트럭의 물보라를 피하기 위하여 액셀을 더 밟았다.

 

 

 

          이제는 그 유명세만큼 누구에게나 친숙하게 들리는 순천만,

딸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던 7년 전 여름에 처음 와본 곳이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의 대표연안습지로 동북아 두루미 도래지로,

또한 국제습지총회인 람사르 총회에도 등록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는 습지로서의 학술적 가치보다는

그저 석양이 아름다운 갈대밭으로 더 알려진 곳이다.

주차장에 진입하자 역시 부지런한 사람들을 태우고

전국에서 달려온 각종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들어온다.

그들도 나와 같은 코스를 돌고 있는 것인지

개중에는 내소사에서 눈에 익은 차량도 보인다.

그 차량들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각자가 입은 옷의 색깔만큼이나 다양한 사투리를 뱉어놓는다.

촌로들 끼리 오가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다

이 작은 나라에도 통역이 필요함을 느꼈다.

 

                     

 

마른 갈대를 모아 발처럼 엮어 만든 정겨운 담장을 지나자

지난 가을을 거쳐 온 늙은 갈대의 빛바랜 모습과

초여름의 비를 맞아 더욱 싱그러워진 진녹색의 새 생명이

시간을 뛰어넘어 갯벌이라는 하나의 화폭에 선으로 이어지고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하여 설치한 목책과 탐방로는

갈대와 갈대사이를 지나 갯골을 건너 산자락 밑을 돌고 있다.

줄기차게 쏟아지던 굵은 빗줄기는 이곳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지

그 회색빛 그림자를 바다와 갯벌과 갈대의 저쪽 끝에 내리고

갯골에 떠 있는 조그마한 돛단배의 이물에 고고하게 앉은

이름 모를 새의 자태를 바라보는 이방인의 눈에

가느다란 빗줄기가 스치고 지나간다.

 

 

 

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살펴본 갈대숲 갯벌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생명체가

갈대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듯 보였다.

오랜만에 흠뻑 내리는 비가 반가워서였을까

아니면 청개구리와 같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갯벌에 구멍을 파고 살아가는 많은 게들이

목책의 높이만큼이나 자라난 갈대의 잎 위에 올라앉았다.

우리가 그들을 구경하듯 그들도 우리를 구경을 하는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순천만의 사진 가운데 가장 많이 소개되는 광경이 보고 싶어서

내친김에 전망대가 있는 야산 정상으로 향하였지만

우산이 평소보다 더 무겁다고 느끼며 올라온 그곳에는

굵은 빗줄기가 다시 이어지며

갈대와 갯벌을 진회색으로 덮어버렸다.

 

                            

 

갈대숲 입구의 매점 외벽에는 탐방객들의 편의를 위하여

근처의 식당들을 거리별로 소개하는 커다란 안내판 붙어있다.

그러나 그 앞에 앉아계시던 동네 토박이인 듯싶은 할아버지 한분이

안내판에 나와 있는 곳들은 간판이 붙어있으니 식당일뿐이라며

이동할거면 가는 길에 다른 곳을 찾으라고 말을 거신다.

전망대까지 오르느라 점심이 늦어져 배가 고프기는 하였지만

할아버지의 조언이 건성은 아닌 듯싶어 무작정 시내로 향하였다.

자신이 기거하는 동네에도 어떤 집에 뭘 잘하는지 모르는 내가

시내로 나간들 이방인인주제에 어디를 찾아갈까마는

법원 근처가 좋지 않겠느냐는 큰애의 의견을 따라 들어선 골목

순천의 먹자골목인 듯한 그곳에 차를 세우기 잘했다고 느끼며

두툼한 바닷장어와 무한정 보충해주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로

남도의 미각을 즐기고 식당에서 제공하는 공짜커피 한잔을 들고는

다음 행선지인 남해로 마음을 앞세웠다.

 

 

 

2009년 5월 열 엿새 날의 순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