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김치찌개

korman 2009. 9. 12. 15:45

 

 

 

 

 

 

 

김치찌개

 

아파트 승강기에 5,6살가량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탄 한 젊은 주부가 아이에게 저녁에는 무얼 먹고 싶으냐고 묻자 그 아이의 지체 없는 대답이 김치찌개란다. 그리고 돼지고기를 많이 넣으라고 토를 단다. 어린아이의 김치찌개 주문에 웃음이나와 나도 한말 거들었다. “김치찌개는 두 번 끓여야 더 맛이 있는 거 너 알아?” 하였더니 낮선 사람의 물음에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고 엄마는 웃음을 머금었다.

 

 

내 선배 한분이 공군 병 출신인데 그 분 말씀이 자기가 졸병 때 근무한 곳이 비행장 활주로 끝에 있는 막사였던 관계로 매번 배식 때에는 활주로를 돌아 한참을 가야 있는 본부 식당에서 배식을 받아 차에 싣고 막사로 가곤 하였는데 어느 날 점심에 김치찌개가 나오더란다. 그래서 뚜껑이 없는 통에 그걸 받아 짐차 뒤에 싣고 자신은 통 옆에 타고 천천히 막사로 향하는데 멁은 국물위로 허연 돼지비계가 둥둥 떠오르더라고. 지금부터 40년이 더 지난 이야기니 그때 군대에서 무슨 고기나 제대로 먹었을까. 그걸 먹고 싶어도 뜨거우니 손가락으로는 못 집고 또 선임병들에게 혼쭐날 생각에 참고 있는데 차가 버드나무 밑을 지나가더란다. 그래서 딱 한 점만 먹자하고 버드나무를 꺾어 한 점 두 점 건져먹기 시작 하였는데 막사에 도달하였을 때는 이미 위에 뜬 비계는 모두 없어진 후였고 고기 없이 비계만 넣고 끓이는 관계로 비계 빼면 김치와 국물만 남는다는 것을 선임병들은 아는지라 비계 몇 점에 밥도 못 먹고 무지하게 터졌다고 하였다.

 

 

요새 주말만 되면 각 TV 방송국들은 특별한 먹거리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내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의 상당수는 각종 김치와 관련된 요리 혹은 맛집을 소개하고 있다. 김치요리를 이야기 하는데 김치찌개가 빠질 수 있을까? 그래서 프로그램들은 특징 있는 김치찌개 전문점을 많이 소개한다. 지난겨울에는 뉴욕의 한 저명한 신문이 겨울철 보양식으로 김치찌개를 추천한 바도 있다. 사실 김치찌개는 김치를 기본 반찬으로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사시사철 빠질 수 없는 요리이고 빈부의 격차가 별로 나지 않는 그저 평범한 요리이며 만들기 가장 쉬운 요리 중의 하나 이기도 하다. 그냥 먹다 남은 김치라도 첨가물 없이 물만 부어 끓이기만 하여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맛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지만.

 

 

김치찌개의 맛은 물론 무엇을 첨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으나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김치 자체의 맛과 숙성도라 하겠다. 요새 TV에는 몇 년 묵었다는 묵은지 김치찌개가 많이 소개되는데 물론 사람에 따라 기호가 다르니 묵은지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이 있겠지만 내 경우는 새로 담가 신맛이 돌기 직전의 김치로 만든 것을 가장 선호한다. 그리고 만드는 사람에 따라 김치를 물에 씻어서 만들거나 매운 고춧가루를 더 첨가하기도 하지만 난 그저 잘 숙성된 김치 그대로의 맛을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나의 김치찌개에는 김치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도 가끔은 여럿이 어울릴 때 그들이 좋아하는 묵은지로 만든 것을 먹는다. 그러나 그에 대한 내 느낌은 크림과 설탕을 탄 커피를 마시고 물로 입안을 헹구지 않은 것 같은 후감이 있다. 요새는 고등어를 넣고 묵은지를 끊이는 곳도 많은데 이 경우는 생물 고등어 보다는 통조림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생물 고등어는 그 맛이 묵은지에 스며들지 않지만 통조림 고등어는 묵은지를 더 무르게 하면서 묵은지와 국물 속으로 풀어지기 때문에 맛이 잘 섞이는 것 같다. 젊은 층에서는 참치 통조림을 넣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참치는 그러나 김치찌개에 넣으면 살점들이 퍽퍽해진 느낌을 준다.

 

 

무엇을 첨가하느냐에 따라 김치찌개의 변신은 끝이 없지만 그러나 예로부터 김치찌개의 기본은 두 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비계와 껍질이 붙어있는 돼지고기나 머리와 배를 잘 다듬은 중간 크기의 멸치를 넣는 것이다. 기름이 몸에 안 좋다고 고기만을 넣는 곳도 있는데 비계가 안 들어간 돼지고기 김치찌개는 달지 않은 팥소를 넣은 찐빵이라 할 수 있을까. 한편 신선한 마른멸치를 넣은 것은 시원하면서 아주 깔끔한 맛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멸치 김치찌개의 특징은 뜨거울 때 보다는 절반정도 식었을 때가 더 맛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뜨거운 찌개에 찬밥을 말면 맛이 더해진다. 라면에 찬밥을 말아야 더 맛이 있듯이. 그러나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한번 끓여 식힌 후 다시 끓인 것이 훨씬 맛이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에서는 김치의 아삭한 질감이 느껴지지만 두 번 끓이면 일반 김치라도 묵은지처럼 무르게 된다. 그리고 맨 마지막 남은 고춧가루가 가라앉은 국물을 냄비채 그대로 마시는 것이 김치찌개를 먹는 행복이 아닌가 싶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처럼. 한 가지 더 산이나 들에서 먹는 김치찌개에는 라면조금과 라면 스프를 넣는 것이 더 맛이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김치찌개에 대한 내 개인의 기호이다. 따라서 나와 다른 기호를 가지고 있는 분일지라도 가시 돋친 댓글은 달지 말아주기 바란다. 오늘 한 냄비의 김치찌개와 대나무 잎사귀 네 개짜리 소주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 할까 한다.

 

2009년 9월 열 하룻날

 

 

이미지출처 :  구글이미지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