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조선의 종

전라남도 곡성군 태안사 동종 (谷城 泰安寺 銅鍾) (보물 제1349호)

korman 2014. 2. 8. 14:43

[최응천 교수의 한국범종 순례] <35> 태안사종과 갑사종

 

16세기 사찰 범종의 대표적인 작품이 태안사 소장 만력9년명 범종과 갑사동종이다. 이 두 범종은 임진왜란 직전인 1581년과 1584년에 만들어졌다. 조선 전기의 마지막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전기 양식과 후기 양식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두 점 모두 전통형을 주로 따른 작품이지만 부분적으로 너무 과장된 듯 장식화된 특징을 보여준다. 즉 여의두 형태의 입상연판문대(立狀蓮瓣文帶)와 지나치게 크게 묘사된 용뉴(龍), 그리고 왜소한 음통이 아직까지 본격적인 전통형 종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유려한 연당초문 부조 돋보여

과학적이고 과장된 용뉴장식

보살입상 생략된 점도 특이

곡성 태안사 만력9년명 범종

   보물 1349호 곡성 태안사 만력9년명 범종은 조선 1581년에 조성     됐다. 총고 101cm, 지름 66cm 크기며, 부자연스러운 자세와 과장     된 얼굴 등 해학적인 모습의 용뉴(아래사진)가 인상적이다.

 

태안사종은 용뉴가 머리를 앞으로 쳐든 한 마리의 단룡(單龍)이며 굴곡진 가는 목 뒤로 붙은 굵은 음통은 상부가 약간 절단된 모습이다. 용뉴는 양발을 천판에 올려놓고 4개의 발톱으로 천판을 누르고 있으며 천판 외연에는 여의두형의 입상연판문대가 돌출되었다. 이와 연결되는 상대에는 방형의 중판(重瓣) 연화문을 연속 시문하고 각 연판마다 빗살문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다시 상대 아래로 원권 안에 ‘옴’자 범자문을 연속으로 시문한 범자문대(梵字文帶)를 주회시켰다.

 

그 아래로는 방형의 연곽대를 두어 당초문을 시문하고 중앙에 원형 무늬를 첨가한 국화 모양의 화문 위에 약간 솟아오른 연꽃 봉우리를 9개씩 장식하였다. 특히 종신 중단쯤에는 연주문대의 원형 테두리로 두른 당좌를 4곳에 배치하였는데, 작은 자방 주위에 연꽃을 두르고 그 주위에 잎맥이 표시된 넓은 잎으로 장식되어 조선시대 범종의 당좌 중에서도 섬세함이 단연 뛰어나다. 당좌 바로 아래로 종구(鐘口)에서 한참 위로 올라온 부분에 넓은 폭을 지닌 굵은 줄로 구획을 둔 하대를 두르고 있다. 이 하대에는 연꽃과 줄기가 이어진 유려한 형태의 연당초문(蓮唐草文)을 도드라지게 부조하였다. 이러한 하대는 갑사 동종(1584년)에까지 그대로 계승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종신에 새겨진 명문을 다음과 같다.

 

“천순원년육월일대종주위파(天順元年六月日大鍾鑄爲破) 우만력구년사월일대종개주차(又萬歷九年四月日大鍾改鑄次) 금사백여근입주(金四百余斤入鑄) 공양주 인헌(供養主 印軒) 화사 혜은(化士 惠) 시주 성곡비구(施主 性谷比丘) 시주 ▨기보체(施主 乘車記保) 대종대시주수찬비구(大鍾大施主守撰比丘) 공양대시 위황범(恭養大施 黃凡) 양주각각결원수희시주(兩主各各結願修喜施主) 동성정각(同成正覺)”

명문에는 제작일시와 중량, 당시의 공양주, 화주 및 시주자 인명을 간략하게 기록하였다. 특히 마지막에 기록된 정각(正覺)이란 인명은 제작자로 보이는데, 속성 없이 이름만 기록한 것이나 법명에 가까운 구성으로 볼 때 17세기에 본격적인 활약을 하게 되는 승려 장인으로 추정된다. 한편 명문의 첫머리에 보이는 천순원년(天順元年, 1457)에 깨진 대종을 만력9년(萬曆九年)인 1581년에 400여 근의 중량을 들여 개주(改鑄)하였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어 종의 제작시기를 1457년으로 볼 소지도 있지만 종의 양식적 특징으로 미루어 개주 당시인 1581년에 제작된 범종으로 판단된다. 태안사종은 용뉴의 모습이 지금까지의 조선 전기 범종과 달리 약간 부자연스러운 자세와 과장된 얼굴 등 해학적인 모습까지 느껴진다.

 

이러한 용뉴이 과장된 표현은 이후 조선 후기 범종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어 그러한 시작을 알려주는 시발점이 된다. 그리고 이 종에는 종신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되는 보살입상이 생략된 점도 특이하다. 승려 장인으로 보이는 제작자는 전통형을 따른 범종을 제작하면서도 다양한 양식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흥미를 준다. 2002년에 보물 1349호로 지정되었다.

 

[불교신문3411호/2018년7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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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7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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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 동종

 

• 코드: cp0501b06201 

 

• 명칭 : 태안사동종 

 

• 지정 : 보물 제 1349호 

 

• 조성연대 : 조선 선조 14년(1581) 

 

• 제원 : 전체높이 96.5㎝, 종신 76.8㎝, 입지름 65.7㎝, 입두께 5.5㎝, 무게 240kg 

 

• 소재지 : 태안사 

 

• 관리자 : 태안사 

 

• 설명 

 

신라에서 고려시대로 이어지는 한국종의 독창적인 조형양식을 계승하고 있는 이 동종은 조선 전기 동종양식의 과도기적 상황 속에서, 전통양식의 계승과 새로운 양식의 접목을 보여준다. 태안사 대웅전 안에 놓인 이 동종은 지금도 맑은 소리를 울리며 조석예불을 알리고 있으며 조선 전기 억불정책으로 불교가 많은 탄압을 받던 시기에 왕실의 도움 없이 사찰 불사의 일환으로 조성된 범종이다. 재질은 청동이다. 

 

천판에는 음통과 한 마리 용을 새긴 용뉴가 있으며 입상대를 갖춘 고려 후기 종 형식에 조선 종 특유의 문양들로 표면을 장식하였다. Ω모양으로 구부러진 용은 사실적이면서 활기찬 모습이며 두발에 서린 염익(焰翼)은 보상화무늬로 꾸며진 음통을 감싸고 있다. 연꽃잎무늬로 감싼 상대 아래에는 새로이 옴 자로 된 원형범자가 덧붙여 있고, 연곽은 상대에서 떨어져 종복 위에 자리하고 있다. 연곽은 당초무늬로 장식하고 안에는 연꽃받침에 연꽃봉오리가 맺혀 볼록하게 솟아 있다. 보살상이 없고 대신 하단에 4좌의 작은 당좌가 있다. 저부조의 당좌는 가운데에 8엽의 연꽃무늬를 살짝 도드라지게 하고, 주변에 파도무늬를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게 처리한 다음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마무리하였다. 하대는 종구에서 13㎝정도 올라온 부분에 돌출한 횡대를 두고 그 사이로 꽃잎에 살짝 빗금을 친 보상화당초무늬로 장식하였다. 

 

종 몸체 3곳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조선 세조 3년(天順元年, 1457)에 이 종을 처음 주조했으나 파손되어 선조 14년(萬曆9年, 1581)에 다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자료참조 : 문화재청, 직지성보박물관, 사찰 홈페이지>

 

 

출처 : 한국컨텐츠진흥원 2017년 11월 27일 현재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7&cp_code=cp0501&index_id=cp05010073&content_id=cp050100730001&search_left_menu=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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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8일 발췌

 

곡성 태안사 동종 (谷城 泰安寺 銅鍾)

 

 

 

 

종 목 보물  제1349호
명 칭 곡성 태안사 동종 (谷城 泰安寺 銅鍾)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2002.10.19
소 재 지 전남 곡성군  죽곡면 태안로 622-215, 태안사 (원달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태안사
관리자(관리단체) 태안사

 

태안사 대웅전 안에 놓인 이 동종은 조선시대 전기 억불정책으로 불교가 많은 탄압을 받던 시기에 왕실의 도움없이 사찰 불사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부드럽게 한다는 음통과 종의 고리 역할을 하는 용을 새긴 용뉴가 있다. 그리고 어깨에는 1단의 연꽃무늬가 돌려 있고, 그 밑에 넓은 띠에는 방형 속에 연꽃무늬를, 아래에는 작은 원 속에 범자를 새겨 넣었다. 넓은 몸체에는 네군데에 사각형의 유곽이 있는데 그 주위는 당초문으로 장식을 하고 그 안에 9개의 유두를 연꽃속에 넣었다. 밑부분에도 어깨띠와 비슷한 넓은 띠가 있는데 연꽃무늬와 당초문을 새겨 넣었다.

종 몸체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조선 세조 3년(1457)에 이 종을 처음 주조했으나 파손되어 선조 14년(1581)에 다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신라에서 고려시대로 이어지는 한국종의 독창적인 조형양식을 계승하고 있는 이 종은 조선전기 동종양식의 과도기적 상황 속에서, 전통양식의 계승과 새로운 양식의 접목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제작과 관련된 명문이 뚜렷하게 양각되어 있으며, 주조기술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출처 : 문화재청사이트 2014년 2월 8일 현재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2&VdkVgwKey=12,134900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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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7일 발췌

 

萬曆 9年(1581), 청동, 전체높이 96.5cm, 종높이 76.8cm, 입지름 65.7cm, 전남 곡성 태안사, 보물 제1349호
태안사 대웅전 종가에는 걸려있는 이 종은 지금도 맑은 소리를 울리며 조석예불을 알리고 있다. 종신 명문을 살펴보면, 천순 원년(1457)에 만든 종이 파손되어 만력9년(1581)에 다시 주성하였다고 한다. 종의 형태는 단룡과 음통으로 된 용뉴에 입상대를 갖춘 고려 후기 종 형식에 조선 종 특유의 문양들로 표면을 장식하였다. Ω모양으로 구부러진 용은 사실적이면서 활기찬 모습이며 두발에 서린 염익焰翼은 보상화무늬로 꾸며진 음통을 감싸고 있다. 연꽃잎무늬로 감싼 상대 아래에는 새로이 옴자로 된 원형범자가 덧붙여 있고, 연곽은 상대에서 떨어져 종복 위에 자리하고 있다. 연곽은 당초무늬로 장식하고 안에는 연꽃받침에 연꽃봉오리가 맺혀 볼록하게 솟아 있다. 태안사종 역시 보살

 

상이 없고 대신 하단에 4좌의 작은 원형당좌가 있다. 저부조의 당좌는 가운데에 8엽의 연꽃무늬를 살짝 도드라지게 하고, 주변에 파도무늬를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게 처리한 다음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마무리하였다. 하대는 종구에서 13cm정도 올라온 부분에 돌출한 횡대를 두고 그 사이로 꽃잎에 살짝 빗금을 친 보상화당초무늬로 장식하였다.

 

 2007년 3월 27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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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泰安寺) 천순원년명(天順元年銘) 범종(梵鍾)(2-55)

 

소재지(所在地) : 전라남도(全羅南道) 곡성군(谷城郡) 죽곡면(竹谷面) 원달리(元達里)

연 대(年 代) : 1457年(세조(世祖) 3年, 천순(天順) 원년(元年))

지정번호(指定番號) : 전라남도(全羅南道)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 제(第)24호(號) (* 2002년 10월 15일 해제, 보물 1349호로 승격)

실측치(實測値) : 총고(總高); 94.5cm, 용통고(甬筒高); 6.5cm, 상대폭(上帶幅); 7.5cm, 유곽장(乳廓長); ×cm, 

구경(口徑); 63.5cm, 종신고(鍾身高); 78cm, 용통경(甬筒徑); 6cm, 하대폭(下帶 幅); 10cm, 종구후(鍾口厚); 5.5cm, 

용뉴고(龍鈕高); cm, 천판경(天板徑); 41.5cm, 유 곽폭(遊廓幅); cm, 당좌경(撞座徑); 10cm 

 

종정(鍾頂)에는 용통(甬筒)과 단용(單龍)을 구비한 용뉴(龍鈕)를 갖추고 있는데 양족(兩足)은 종정상(鍾頂上)을 누루고 있는 형상이나 박력있게 표현(表現)하지 못하고 있다. 종정(鍾頂)의 형상(形狀)도 거의 수평(水平)에 가깝도록 처리하였다.

 

상대(上帶)와 접하는 계선상(界線上)에는 여의두문(如意頭紋)과 같은 입상문(立狀紋) 34개(個)를 배치 장식하고 있으며, 따로 그 밑으로 17판(瓣)의 복연판(覆蓮瓣)을 돌려 상대를 장식하였다. 또한 이 상대 밑으로 2조(條)의 세선대(細線帶)을 주회시켜 그 간지(間地)에 원좌내 범자(梵字)를 장식한 문양대를 돌렸다. 이런 문양대 밑으로 있으므로 독립한 4개의 유곽을 설치하였는데 유곽 문양은 당초문이고 유두는 화좌를 갖춘 돌기된 유두 9개를 구비하고 있다. 종신복에는 연주문(連珠紋)과 화좌(花座)를 갖춘 4개의 당좌(撞座)를 갖추고 있고 하대(下帶) 역시 상하(上下)로 융기된 태선대(太線帶)를 돌리고 그 간지(間地) 내에 작양꽃형과 같은 연화(蓮華) 23개(個)를 장식․배치한 것이 화려하다. 

 

주목되는 것은 범종(梵鍾)의 일부분이 경기도(京畿道) 양주군(楊州郡) 석면(石面) 소재(所在) 보광사(普光寺) 범종(梵鍾)과 유사한 장식법 등이 나타나고 있어 좀더 면밀히 고찰(考察)하여야 할 범종(梵鍾)이다.

 

명문(銘文)은 유곽과 유곽 사이의 간지에 양각으로 명기(銘記)되어 있는데 천순원년(天順元年)은 세조(世祖) 3年 정축(丁丑)이며 1457年에 해당되며 이 때 주조된 범종이며 후에 다시 주조되었다.

 

종신(鍾身)의 명문(銘文)을 보면 天順元年三月日 大鍾鑄焉破 又萬歷九年四月日大鍾改鑄次 金四百餘斤入鑄 (천순원년삼월일 대종주언파 우만역구년사월일대종개주차 금사백여근입주) 大鍾大施主□□比丘 供養大施主□□□□ 兩主□□ 納願修□施主 同成正覺 (대종대시주□□비구 공양대시주□□□□ 양주□□ 납원수□시주 동성정각)으로 되어 있어 초기에는 천순(天順) 원년(元年)에 주조(鑄造)되었으나 만력구년(萬曆九年) 선조(宣祖) 14年 신사(辛巳)(1581)에 다시 주조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초기의 문양 장식법을 따른 듯하다. 

 

출처 :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