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수도꼭지 때문에
비밀번호를 아는 아이들이야 부모집 초인종 누를 일 없고 문 열어달라고 하는 방문객도 별로 없으니 어쩌다 집안 인터폰에 벨이 울리면 건물 1층 출입구에서 누르는 것인지 내 집 현관문 앞에서 누르는 것인지 모니터에 그림이 같이 나오고 벨소리도 다른데 늘 구별에 미숙하여 엉뚱한 단추를 누를 때가 있다. 나보다는 집사람이 더 그렇다.
토요일 오전, 카페와 블로그속에서 컴퓨터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벨 소리가 났다. 집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하고 무심하게 있는데 인터폰 패널에서 무얼 만져야 할지 순간적으로 잊은 듯 좀 와보라는 집사람의 호출이다. 모니터에 비쳐진 모습이 내 집 현관인데 중학생쯤 됨직한 어떤 여자아이가 강아지를 안고 문 앞에서 울고 있었다. 모르는 여자 아이의 이 모습이 집사람을 당황하게 한 모양이었다.
인터폰에다 대고 누구냐고 물어도 아무 대답도 없이 그저 울기만 하고 있었다. 문을 열었다. 그제야 그 아이는 ***호에 사는데 보일러와 세탁기가 놓인 자신의 방 쪽 베란다에서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방 쪽으로 물이 마구 쏟아져 외출한 아빠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내 집 호수를 대 주고는 빨리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하였다 한다. 그게 겁이 나 내 집 초인종을 누르고는 울고 있었던 것이었다. 집을 오가며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고 가끔 주차장에서 만나면 그저 목인사 정도는 하고 있지만 그 애 아빠가 급한 김에 이웃 중에서 내가 제일 먼저 생각났던 모양이었다. 이웃이 그리 알아주니 그것도 고마운 일이다.
4층에 있는 그 아이네 집으로 급히 내려갔다. 베란다 쪽 방문을 열자 강한 물줄기가 사방으로 분수처럼 솟구치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미처 하수구 쪽으로 빠져 나가지 못한 물은 방의 문턱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지체하였으면 문턱을 넘을 기세였다. 물줄기를 피하여 살펴본즉 세탁기의 물 주입호스와 수도꼭지를 연결한 연결구가 파손되어 그 틈으로 분수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다행이 냉수 쪽이 그리 되어 시원하게 물 좀 맞고 우선 수도꼭지를 잠갔다. 더운 물 쪽이 그리 되었다면 보일러도 계속 돌아갔을 것이고 뜨거운 물이라 더 곤란하였겠다 생각하며 그 아이 아빠와 통화를 하여 상황을 설명하여 주었다.
이곳으로 이사 와서 1년 사이에 같은 일을 두 번 겼었다. 지난겨울에도 위층에 사는 집에서 같은 일이 일어나 모르는 사이에 방안에 까지 물이 들어와 장판을 뜯어내고 젖은 바닥을 말리느라 보일러를 한없이 돌리고 야단법석을 피웠는데 아마도 그 원인이 이사를 오느라 세탁기 호스를 수도에서 분리하고 또 새로 설치하는 과정에서 오래된 연결구에 문제가 생겨 일어난 일로 보인다. 그러나 한 편 생각하면 사용자의 잘못된 버릇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여도 무관 할 것이다.
세탁기는 집사람이 사용하는 것이니 난 그 작동법에 대하여 늘 무심하다. 나보다는 집사람이 더 오래 살 것 같아 혼자 사는 연습도 안 한다. 그러나 세탁기와 관련하여 가끔 집사람에게 주문하는 것이 사용하지 않을 때는 수도꼭지를 잠그라는 것과 사용 할 때도 연결구에서 물이 새지 않는지 늘 살피라는 것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연결구는 오래 사용하다 보면 경화되어 깨어지는 경우도 있고 파킹에 틈이 생겨 물이 샐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웃의 이 일을 겪으면서 세탁기는 늘 사용하지만 사용하지 않을 때 수도를 잠그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으며 연결구가 파손 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사용자의 잘못된 버릇인 것이다. 이 사항은 세탁기 매뉴얼에도 기록되어 있다. 제품을 사고 매뉴얼을 잘 읽지 않는 습성과도 관련이 있다.
그런 일이 있었던 내 이웃이야 마침 사람이 있었고 또 내가 도와줄 수도 있었기 때문에 더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집이 비어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자신의 집은 물론이려니와 이웃에도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미사용시 세탁기와 연결된 수도꼭지는 늘 잠그고 사용시에도 연결구에 신경을 쓰는 버릇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내일은 모두가 볼 수 있는 1층 현관에 이웃들에게 주의를 요하는 사진을 붙여 놓을까 생각중이다.
이 글 읽으시는 분들도 지금 살펴보시고 수도꼭지 잠그시기 바라며.......
2018년 8월 23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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