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여행은 느낌이다.

korman 2017. 11. 13. 17:00




여행은 느낌이다


단풍이 내리막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비가 내린 후 날씨조차도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가을에만 만날 수 있는, 자연이 주는 총천연색 서라운드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들로 나서고 있다. 여행이라는 것이 어느 계절에 어디를 가도 다 좋은 것이지만 4계절의 각기 다른 풍광을 즐길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도 일종의 행운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여행의 의미는 다양하겠지만 여행이 품고 있는 의미는 갖가지 주제로 다가온다. 여행이란 일이나 구경을 목적으로 집을 떠나 객지를 두루두루 돌아다니는 것이라 한다. 한자어 풀이가 나그네旅다닐行이라니 그저 나그네가 되어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면서 정해진 곳 없이 발길 닫는 대로 돌아다니는 것이 여행일성 싶지만 실은 잘 짜인 계획에 의하여 다니는 것이 여행이라는 선입견이 든다. 그리고 모든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들을 다 내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행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나들이’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다. 내가 우리말 어휘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그 단어밖에 없는 것이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나들이’ 하면 그저 멀리는 가지 않고 하루 집에서 가까운 곳에 꽃구경이나 단풍구경 가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여행과 관련된 여러 한자어들 보다는 ‘나들이’에서 풍기는 느낌은 어쩐지 고고한 여인이 한복을 멋지게, 그러나 화려하지 않게 차려입고 버선코를 높이며 길을 나서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유람(遊覽)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여행이라는 단어에 버금가는 말이기는 하지만 왠지 여행 보다는 좀 느슨하고 그저 유유자적하게 별 계획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기웃기웃하는 한량들의 즐거움이라는 느낌이 든다. 관광(觀光)이라는 말도 타지를 구경하고 다닌다는 뜻을 가졌다니 여행이 주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고 하겠으나 이 단어의 첫 느낌은 여행사로의 단체 혹은 깃발부대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단어가 연계된 모습으로 다가온다. 행락(行樂) 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나들이의 의미를 지닌 모든 단어들 중에서 이 단어가 가장 부정적인 인식을 심는 단어가 아닌가 생각된다. 관광지를 망가트리거나 산불 같은 안 좋은 소식을 전할 때는 그 원인제공자가 대부분 행락객이었다고 각종 매체가 전해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들이를 뜻하는 한자 유사어가 많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이는 각각의 단어들이 주는 사회적 선입견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다른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보다는 여행이라는 단어에서 풍겨 나오는, 다른 단어들 보다는 좀 더 품위적인 느낌으로 하여 다른 것에 앞서 이 단어를 즐겨 쓰는 언어적 습성과도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행이던 행락이던 간에 어디론가 떠나기 위하여 문밖을 나선다는 건 늘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어디로 향하던 간에 목적지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떠나는 것은 금물이다. 여행을 뜻하는 단어들에 선입견을 가지면 늘 그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하듯 목적지에 대한 선입견은 좋은 일에서나 나쁜 일에서나 그곳에서의 생각과 행동과 시간을 늘 그대로 지배하기 때문이다.


여행에는 설레임과 즐거움이 따른다. 사실 문밖을 나설 때의 즐거움 보다는 여행계획을 세울 때의 설레임이 더 좋다. 그러나 그 또한 여행지에 대한 아무런 선입견이 없어야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고 설레임이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다. 여행에는 또한 아쉬움과 피곤함이 동반 할 때도 있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 요인 중의 절반 이상은 아마도 여행 떠나기 전의 선입견이 가져다주는 하나의 부산물일수도 있다. 여행은 내가 가는 곳의 사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려야만 즐기는 여행을 할 수 있다. 물론 편한 여행이 즐거움을 더해주기도 하지만 ‘올려다보는 여행’ 보다는 ‘내려다보는 여행’이라야 아쉬움과 피곤함에서 벗어나 더욱 값진 나들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분수에 맞는 여행이 행복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여행은 각자의 주관이다. 모두가 다른 테마를 가지고 간다는 이야기다. 자연, 문화, 역사, 예술, 식음, 스포츠, 쇼핑 등등. 나의 테마는 대부분 자연과 문화 및 역사 쪽이다. 그래서 한 장소에 머무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 다른 테마를 가진 동행이 있거나 관광회사를 통한 여행에서는 정해진 시간을 맞추느라 내 테마를 소홀이 해야 할 때도 있다. 특히 문화와 역사 쪽이 그렇다. 박물관이나 뒷골목을 들락거려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난 늘 여행은 어떤 테마를 갖고 가던 간에 그저 보는 즐거움 보다는 느끼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늘 ‘여행은 느낌이다’라고 강조한다. 일본 도쿄를 여행하고 온 사람들 중에서 ‘도쿄는 서울과 같다’라고 하는 분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보이는 것은 겉이지만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내는 느낌은 전혀 다를 것이다. 선입견 없이 보고, 생각하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느끼는 여행이 아쉬움과 피곤함이 없는 여행이 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가로수의 이파리들이 다 떨어지기 전에 문밖을 나서고 싶다. 길~~게.


2017년 11월 13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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