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링이나 삼겹살이나
초등학교 1학년 손자녀석의 온라인 수업을 챙겨주다가 갑자기 ‘이율배반(二律背反)’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인터넷백과를 찾아보니 독일의 철학자 칸트에 의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게 돤 철학용어라는데 간단한 뜻은 ‘서로 모순되어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명제’라고 한다. 그 다음 설명은 철학적인 설명이라 읽으면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그냥 우리가 사회통념적 뜻으로 생각하면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을 의미하는 단어인 것 같은데 아무튼 철학은 그 단어부터가 어지럽다.
1학년의 경우 교육방송분을 제외하고는 담임선생님이 관련 교육사이트에 올려놓은 과제물이나 링크되는 사이트를 보고 스스로 공부하고 보호자가 확인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어제 올라온 동영상 교육은 ‘스마트폰 중독 예방교육’이었다. 문제는 설명 자체도 초등학교 1학년에게는 이해하는 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스마트폰 중독 예방교육에 스마트폰이 쓰인다는 것이다. TV교육이 끝난 후 선생님이 사이트에 올려놓은 프로그램을 스마트폰 어플을 통하여 확인하고 스마트폰으로 자동 링크하여 동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으니 이게 통석적인 이율배반과 일맥 통하는 것이 아닐는지. 물론 태블릿이나 데스크탑을 통해서도 링크가 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보호자들이 간단히 앉은자리에서 한 번에 다 해결되는 스마트폰을 마다하고 다른 기기를 사용할지는 미지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고기에 마블링이 좋아야 최상품으로 인정한다. 또한 돼지고기는 삼겹살을 제일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부위에 붙어있는 기름은 모두 제거한다. 실상 마블링이라는 것도 소기름이며 삼겹살의 절반은 돼지기름이다. 삼겹살의 기름이나 여타 돼지고기의 기름 보다는 소고기의 마블링이 더 나쁘다고 하는데 서양에서는 별로 알아주지 않는다는 그 마블링에 우리는 찬사를 보낸다. 육류에 붙어있는 기름이 몸에 나쁘다고 떼어버리면서도 같은 기름류인 마블링과 삼겹비계살에서는 기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 또한 이율배반이라는 게 아닐까?
한글날이 가까워서 그런지 TV프로그램 막간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언어순화 계몽방송을 하고 있다. 진작 따져보면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언어를 전달하는 것은 방송국 그 자신들이다. 아마 청소년들이 TV에서 가장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대부분이 15세 이상 관람가로 표기되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프로그램에서 사용되는 언어, 자막, 내용들이 과연 청소년들의 건전한 언어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인지 자신들은 살펴보지 않는 모양이다. 카메라를 부부생활하는 안방에까지 걸어놓고 관음증을 심어주는가 하면 아직 미성년자인지 아니면 미성년자를 갓 벗어났을 것 같은 아이돌의 술판 벌린 이야기, 자막의 마구잡이 약자와 대중적이지 못한 은어, 왜곡된 외국어, 심지어는 맞춤법까지 틀린 자막 등등. 자신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치부는 모르쇠하고 청소년들의 잘못만 거론하고 있다.
청소년이 되어 트로트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한 ‘리틀싸이’가 어린 시절 강남스타일로 귀여움을 받고 있을 때 어찌 알았는지 베트남인 어머니에게 악플이 많이 올라와 어머니가 무척 힘들어했다는 이야기를 눈물을 글썽이며 털어놓았다. 그리고 어머니를 위해서 좋은 결과를 이루도록 노력하겠다는 효도성 발언도 하였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베트남인 어머니가 무슨 이유로 악플에 시달려야 할까? 단순이 베트남인이라는 이유로? 영국에 있는 손흥민이가 관중들로부터 인종차별성 같은 행위를 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고, 많은 것들이 단순 욕이지만, 애국적인 댓글을 단다. 그런데 한 인기 있는 아이의 베트남인 어머니에게 마구잡이 악플을 다는 것은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머니가 서양 백인이었으면 어땠을까? 이런 행위야 말로 이율배반이 아니고 무엇이라 해야 할까?
요새 돌아가는 정치마당은 이울배반을 떠나 내로남불이라는 커다란 두 명제가 같이 붙어 다닌다. 이야기 하자면 지면이 너무 넓어야 하니 접어두고, “너는 이율배반 없냐?”라고 댓글이 달릴테니 대답 먼저 해야겠다.
“나도 이율배반도 있고 내로남불도 있다.” “너는?” “마블링이나 삼겹살이나 다 몸에 좋은 기름은 아닐세.”
2020년 9월 19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