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의 그런 사람보다
운전을 하고 다니면서 언제부터인가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 혹은 사거리 및 특정지역 진입로 등의 도로면에 기본 차선과는 달리 초록, 분홍, 파랑 등 방향에 대한 별도의 선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이런 것은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늘 생각해왔다. 고속도로의 진입이나 시설물입구 등을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지 않고도 머뭇거리지 않고 방향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이기 때문이다. 오늘 인터넷 뉴스난에 이런 선을 생각한 사람이 ‘100명의 국회의원보다 더 낫다’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된 것을 보았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요새 국회의원들의 행태나 언행을 볼 때 크게 공감이 가는 기사 제목이었다.
지난봄이 한창 익어갈 때 구청장이 동네를 찾아와 구정보고를 하는 행사가 있어 그 자리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얼굴을 익혀야 하는 여러 사람들이 내빈으로 참석한다. 행사를 하면 그들은 늘 주민들과 어울리는 좌석 보다는 주민들과 마주보는 좌석이 배정된다. 일반인들이 귀빈석이라 부르는 좌석이다. 주민들이 그렇게 예우를 해 준다고 해도 될 것이다. 주민들과 마주보는 자리에 그들은 그렇게 구청장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회자가 예의를 갖추어 참석한 그들 모두를 소개하고 필요한 안내를 한 후에 구청장의 구정보고가 시작되었다. 구청장이 일어나 마이크를 잡고 우리 동네와 관련한 구정에 대하여 특별히 더 신경을 써 설명에 열중하고 있을 때 구청장 옆에 앉으신 분이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그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앉은 자리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가 전화를 받는 동안에도 구청장의 설명은 이어지고 그의 전화 받는 자세는 점점 옆으로 삐딱하게 기울어져 갔다. 대부분 일반인들은 그런 자리에 참석하면 전화를 진동으로 하고 전화가 걸려오면 자리를 이탈하여 행사와 여러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그에게서 그런 모습은 사치인 듯싶었다. 구청장이 구정보고를 하고 있고 주민들이 경청을 하고 있는데 그에게는 그가 받는 예우의 1/10 이라도 구청장과 주민에 대한 예우는 없는 것 같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가 전화를 받는 동안 다른 분들도 전화기를 들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모습은 참석한 주민들 모두가 보았다. 그들은 구청장이 주민들에게 열성을 다 하는 동안 주민들 앞에서 어떤 생각으로 전화기를 가지고 놀았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난 다음번에는 그들 모두를 외면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 후 다른 동네행사장에 예외 없이 또 그들이 나타났다. 75세 이상 노인들에게 동네에서 경로행사를 하는 자리였다. 봉사를 하시는 분들이 열심히 노인들을 부축하고 음식을 나르고 불편하신 분들에게는 손발이 되어 드리는 자리였다. 예우 차원에서 또 그들에게 마이크가 넘겨졌다. 그런데 지난 행사 때 구청장 옆에서 열심히 삐딱한 자세로 전화를 받던 그 분께서 단상에 올라 하시는 말씀이 노인들이 자신에게 바라는 게 있으면 전화를 하라고 하시면서 인터넷으로 자신이 속한 기관의 사이트에 들어가면 자신의 전화번호가 나와 있으니 그 번호로 전화를 하면 된다고 하였다. 예우를 받으며 단상에 올랐으니 자리가 자리인 만큼 “어르신들 늘 건강하세요”라는 한 마디가 더 좋지 않았을까. 사이트에 들어가서 전화번호를 확인하라고? 75세 이상된 노인들에게? “자녀분들게 이야기해서 전화번호를 확인해 달라고 하세요”라고 하였더라도 그런 자리에 어울리는 말은 아닌 듯싶은데 그는 그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차라리 봉사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 음식 몇 접시라도 날라다 드리는 게 더 나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이 지난 일들이었는데 “100명의 국회의원 보다 낫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잠재되어 있던 머릿속 기억을 되살려 놓았다. 100명이 아니라 1,000명의 그런 사람들 보다 선을 생각한 한 명이 더 낫다고 하여도 난 주저함 없이 그것에 동의하겠다.
2024년 7월 10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o6qMIJ2YHqk 링크
♣Rondo Veneziano(론도 베네치아노)~ Venezia Noturna(베네치아 야상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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